- 낭쉐
미얀마 중부에 있는 낭쉐(Nyaung Shwe)는 조그맣고 평범한 마을이다. 그럼에도 여행자들이 많은 것은 인레 호수로 가기 위한 관문이자 껄로 트레킹의 도착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낭쉐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인레 호수 보트투어를 다녀왔다. 그리고 어제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거렸다. 조식을 챙겨주면 먹고 나서 동네 산책 갔다 오고, 점심은 망고나 옥수수로 때운 후 오후 4~5시쯤 어슬렁어슬렁 저녁 먹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전부다. 그래서 아침 산책은 어제와 다르게 조금 더 멀리 탐색한다는 느낌으로 신중하게 코스를 정한다. 오늘 아침에는 미뤄뒀던 낭쉐의 대표 사원 야다나 만 아웅 파야, 일요일임에도 ‘열공’중인 초등학교, 일요일이면 큰 장이 열리는 밍갈라 마켓을 구경하고 망고를 사서 돌아왔다. 그래도 숙소 도착하면 10시다.
방갈로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미얀마 가이드북이나 소설책을 읽다가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다 보면 불경 외우는 소리, 숙소를 찾아가는 여행자들의 발소리, 점심거리 사러 가는 오토바이 소리, 구름이 넘어가는 소리가 지나가고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사실 오늘은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 낭쉐의 몇 안 되는 관광지 레드마운틴 와이너리에서 일몰을 감상하려 했다. 이틀 째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오후 들어 세찬 비가 몰아치길래 ‘아이구, 잘 됐다. 푹 쉬어야지’ 했다. 계속 쉬었으면서. 그 비가 그칠 때쯤 저녁을 먹기 위해 마을의 핫플레이스로 향했다. 그 길에서 무지개를 봤다. 우베인 다리나 바간에서도 볼 때는 유명 관광지니까 으레 무지개도 있어야지 싶었는지 별 감흥이 없었는데, 우연히 본 무지개는 꽤 감동이었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쁜 여행자들에게는 무지개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감탄하고 있는 내 옆을 무심코 지나갔다. 아마 저녁에 양곤으로 떠나는 jj익스프레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일 아침 인레 보트 투어를 예약하러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북에는 낭쉐를 인레 호수 투어를 위해 잠시 스쳐가는 마을로 소개하고 있다. 누구에게는 1박2일이면 충분한 마을인 것이다. 그래서 3박 4일간 머무르는 나에게 시간이 아깝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여행의 이유와 방법은 다르다. 그래도 일상에서 타인과 속도를 맞추느라 숨 가쁘게 달려온 만큼 여행지에서는 천천히, 쉬엄쉬엄 가도 되지 않을까? 낭쉐 마을의 무지개는 쉬어가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요즘은 제일 부러운 게 자기 페이스가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제어장치를 두고 적절히 사용할 아는 사람이다.
천천히 쉬어 가는 여행을 하고 나면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속도가 상쇄되면서 평균 속도를 유지하게 되고
결국 자신만의 속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