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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air Nov 17. 2019

먼저 다가가면 댄스의 수첩처럼
풍요로워진다!

-껄로

“나는 댄스야! 네 이름은 뭐니?”

우리는 도로 가운데의 분리대 겸 화단에서 두 번째 만났을 때야 비로소 통성명을 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나를 그가 불러 세웠던 것이다. 그는 꼼꼼히 나의 행적을 체크했다. 두 시간 전에 만났을 때 자신이 알려준 코스를 성실히 수행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응. 점심 먹고 네가 알려준 사원에 갔다가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야.”

그가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스페셜 마켓도 갔어?” 

“응. 아침에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우리 만났었잖아.” 

“그랬지.”


트레킹을 하기 위해 껄로(Kalaw)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 숙소에 짐을 풀고 느지막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처음 댄스를 만났다. 잠깐 동안의 탐색에 의하면 산악지대의 관문이어서인지 매서운 눈빛과 다부진 체격의 고산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댄스는 정 반대로 부리부리한 눈에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다. 그래도 목적을 알 수 없는 접근은 언제나 긴장되는 법.  

“트레킹은 내일 출발이지?” 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던 댄스가 다시 물었다. “응.” 

나는 그가 뭔가 나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계속 이야기를 하나 싶어 좀 단호하게 전방을 주시하기로 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더 가볼 만한 데가 없을 텐데.” “네?” “껄로는 그게 다야.” 

그러고는 내가 들고 있던 지도를 가져다가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더니 동그라미를 쳤다.  

“맞다! 기차역에서 좀 더 내려가면 공원이랑 수영장이 있어…. 수영할 줄은 알지?” 

그때야 알았다. 그는 이방인에게 자신이 평생 살아온 마을을 성심성의껏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새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날씨, 계절 얘기부터 한국인에 대한 인상, 내가 묶고 있는 곳의 투숙객 정보까지 대화는 들쑥날쑥 계속 이어졌다. 가끔 픽업트럭이 먼지를 폴폴 날리며 느릿하게 지나갔다. 댄스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고는 내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낡은 수첩에는 지금껏 그가 만난 전 세계 여행자들의 이름과 국가가 적혀 있었다. 댄스는 평생 이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향을 안내하고 그들과 친구가 돼 온 것이다. 댄스라는 영어 닉네임도 이 친구들 중 한 명이 지어줬으리라. 나도 이름과 함께 'South Korea'라고 썼다. 이 수첩은 그의 삶이고 자부심이다. 댄스가 수첩에 빼곡히 적힌 이름들을 읽을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민 적이 언제였더라. 

먼저 웃어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누가 먼저 나를 봐주기만을 바란 나에게, 

이기적이기만 한 나에게

댄스는, 댄스의 수첩은 말한다.

여행이, 그리고 삶이 풍요로워지고 싶다면 

먼저 다가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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