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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육휴중 Nov 17. 2020

퇴사에 대한 글을 쓰다가
갑자기, 퇴사를 실행했다(1)

14년 경력의 디자인 기획자, 백수의 길을 걷다 

#1 

브런치를 통해 지혜롭게 이직하기, 똑똑한 퇴사 준비 등의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뒤, 몇 편의 글을 써 놨고, 몇 편의 글은 브런치에 업로드를 했었다. 디자인 기획자라 실무보다는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업로드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많았고, 결정은 빨랐다. 다행히 몇 달간 버틸 여력은 있어서 퇴사를 결정할 당시 걱정은 덜했다.  물론, 그때는 그랬다. 그때가 지난 2020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적어두었던 글을 지워버렸다. 


#2 

디자인 기획자로서 14년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해오며, 이제는 나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었다는 것이 대의명분이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월급쟁이로 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컸다.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포화상태나 다름없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실제로 내가 있는 지역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디자인 기획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나이 많은 기획자는 그 효용성이 다하면 단순 관리자로서 남아 회사에 화석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기업가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기는 싫었다. 보다 가슴 뛰는 일, 보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것도 이유였다. 



나, 회사 그만 둬도 될까?



#3 

소심한 터라 아내에게 제일 먼저 상의했다. 아내도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번 도전해보자는 대답이 선뜻 나왔다. 내심 "꾹 참고 더 다녀..."라는 말을 기대했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모범답 답안과는 전혀 다른 답변이 나와 조금은 의아해했다. 다행히 회사에 다니면서 부산디자인진흥원을 통해 창업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의 컨설팅 사업을 수행해본 경험이 있어서, 초기 스타트업 기업들이 해야 하는 일들의 목록들은 머릿속에서 금방 정리가 되었다. 아내에게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리스트를 정리해 보여주었다. 간단한 사업계획서도 만들었고 아내의 최종 오케이가 떨어진 날 사표를 냈다. 후임자가 빨리 구해져 생각보다 빨리 퇴사를 할 수 있었다. 


#4 

직장인이 퇴사를 결정하는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단순한 이유로 그만두는 일은 절대로 없다. 불만족스러운 급여와 복지, 어느 직장에나 하나쯤 있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 어느 직장에나 하나쯤 있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 불안한 미래와 회사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퇴사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급여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약할 수 없는 퇴근시간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일관성 없는 대표의 업무지시와 결정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망쳐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건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건 14년 직장생활 중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일하는 것을 즐기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직장생활 14년 중 가장 괴로운 한 달이었다. 


#5 

퇴사를 하고 당분간은 쉬기로 마음먹었다. 14년 직장생활 중 대여섯 번의 이직은 했지만 일주일 이상 쉰 적이 없었다. 일과 프로젝트의 연속이었다. 그런 삶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어서 며칠간은 너무 좋았다. 다섯 살의 딸의 등원과 하원을 맡았고, 하원을 하고 난 후에는 함께 놀이터에서 한두 시간 놀다가, 아내의 퇴근을 함께 기다렸다. 저녁을 준비하고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하는 소소하지만 직장인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시간들이 금방 지나갔다.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이 문득 부러워졌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게 먹었다 '자발적 무급 육아 휴직'이라 생각하자.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밝아진 아이를 보며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나는 어릴 때부터 외가 쪽 친척동생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육 남매라 명절이면 가족들로 북적였다. 친척동생들과는 터울이 있었던 터라 돌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남들보다는 잘하는 편이다.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간다. 딸을 데리고 재미나게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다른 아이들이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고, 같이 놀아주다 보면 딸아이와 어느새 친구가 된다. 함께 술래잡기도 하고, 달리기 시합도 하고,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다. 그렇게 놀아주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백수 아빠 덕분에 딸은 놀이터에서 '인싸'가 되었다. 저 멀리에서 딸아이가 오는 모습을 보고 다섯 살 친구들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뛰어온다. 목적은 함께 놀아주는 '백수 아저씨'였겠지만. 어느덧 나는 놀이터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으며, 아이들 엄마들로부터 아이들과 놀아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종종 들었다. 


#7

백수로서 내 인생 처음 주어진 '여유 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불안이 일상을 잠식해왔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뭐라도 배워야 하는 걸까, 빠르게 창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가 계속되어 경기가 더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은행 잔고가 바닥나는 시점은 언제인가... 이 불안들은 백수생활을 시작한 뒤 6개월이 지난 지금에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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