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by 소도

병원에서 엄마가 의식이 없은지 이틀쯤 되었다. 신체적인 죽음은 어떻게 오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여러 가지 글을 읽어보면서 공부를 했는데도 저마다의 케이스가 달라서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떤 징후를 눈여겨봐야 하는지의 말도 다들 달라서 혼란스러워하는 중에 엄마의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 날 엄마는 갑자기 열이 많이 났고 신음소리가 조금 더 힘들어 보였기에 우리 가족은 밤새 번갈아가면서 엄마의 옆을 지키던 참이었다. 그 날 새벽 6시에 엄마의 심박수는 그렇게 몇 분의 찰나의 순간, 빠른 속도로 떨어지더니 엄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에 엄마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던 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모두들 엄마 곁을 둘러싸고서 엄마를 껴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의식을 점점 잃어가던 며칠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는데도 엄마의 마지막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의식은 없었지만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우리와 함께 있었던 엄마는 심장이 멈춤과 동시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는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찰나의 상황의 대조가 너무도 선명하고, 또 동시에 너무도 가혹해서 코미컬하기까지 했다. 출장 일정이 꼬여서 미처 한국에 도착하지 못한 해외에 있는 남편에게 엄마가 지금 돌아가셨다고 문자를 보내려는데, 내가 쓰는 문장이 너무 낯설어서 한참 동안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보고만 있었다. 마치 내가 말을 해버리면 엄마가 곁을 떠났다는 게 사실이 될 것 같았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은 채로, 그리고 혼란스러운 채로 간호사로부터 지금부터 해야 할 행정적인 일들을 사무적으로 전달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절차 중의 가장 중요한 건 정산이라고 거듭 말했다. 정산을 하고 보험금 지급 등의 이유로 사망진단서가 많이 필요할 것이니 넉넉하게 열 부쯤 떼라고 조언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떠밀리듯이 조금씩 현실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지금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수많은 해야 하는 일의 더미를 마주해야 했다. 병원 행정 업무를 시작으로, 장례식장 정하는 일부터, 주변 분들께 연락도 드려야 했고, 영정사진도 정해야 하고. 슬퍼하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은 게 너무 슬펐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해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삼일을 보냈다. 엄마 친구분들이 정말 많이 오셨고, 제일 많이 슬퍼하면서 우셨다.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나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분들과 그렇게 처음 만나 인사를 했다. 엄마가 본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그래서 엄마를 잃은 게 얼마나 애석한지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우시면서 한참을 이야기해주셨다. 진심이 가득 담긴 그런 이야기에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남긴 온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내 상황 상 나는 한국에 친구가 많이 없는데,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서울에서 대구까지 많이 와주었다. 우리 삼 남매의 손님들을 생각하면 서울에 장례식을 하는 게 좋았겠지만, 우리는 결국 본가가 있는 대구에서 장례식을 하기로 했다. 엄마와 친분이 있는 친구분들이나 친척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편하게 오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계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연락을 드렸는데 예상외로 손님들이 많이 와서 우리는 좀 놀랬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 앞에서 나는 울컥했지만, 울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엄마가 그걸 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늘 긍정적이고 씩씩했던 엄마가 마지막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내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까지도 숨소리를 듣고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현실감 없는 사실과 갑자기 쏟아지는 장례식 절차를 행하기 위해 해야 할 사무적인 일 사이에서 뭔가 내가 취해야 할 태도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손님들을 치르는 삼 일 동안 알게 모르게 정말 많이 위로를 받았다. 엄마를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이, 내 슬픔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모두 나에게 닿아서 내 안의 슬픔의 크기만큼이나 차곡차곡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엄마가 이제 없다는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엄마랑 함께한 지난날을 추억하고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계기로 의식과 절차에 일관적으로 무관심으로 대해왔던 내가 처음으로 장례식이라는 의식의 의미를 조금은 깨닫게 됐다. 스스로도 가늠되지 않는 크기의 슬픔이 사람들의 다정함으로 덮어지는 시간. 이렇게 어둡고 작아지는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꼭 필요한 위로를 받는 시간.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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