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은 날이 있다

우리 모두에겐 가족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고 싶은 날이 있다

by 소도

우리 가족은 지난 15개월 모두 각자의 삶을 멈추거나 삶의 궤도를 대폭 수정해서 엄마를 삶에 중심에 두고 살았다. 드라마적인 전개처럼 힘든 경험을 함께하며 가족 간에 더 돈독해지고 사랑으로 힘든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사실 우리는 더 많이 부딪히고, 원래의 관계가 갖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서 서로에게 상처 주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아프고 나서부터의 엄마는 이제까지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긍정적이고 씩씩한 성격인 엄마이기에 ‘좋은 인생이었고, 잘 놀다 간다’는 시각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쓸 때도 많았지만, 어두운 마음이 찾아오는 시간이 오면 엄마는 다 부질없다고 생각을 하거나, 한스럽고, 어떤 관계들은 왜 그랬을까 책망하기도 했다.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서글픔이 제일 컸던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장녀로서 남동생들에게 희생하고 살아왔던 삶,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삶에 대해서, 그게 맞는 삶이었을까 의문을 갖고 회의적으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엄마는 우리 자식들에게 서운한 점을 토해내곤 했다. 원래 서운한 게 있어도 겉으로 표현을 잘 안 했던 엄마이기에 적응이 잘 안됐지만 그래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노력하려 해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엄마는 피곤해하는 나에게 ‘니가 한 게 뭐가 있다고 힘드냐'라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나 아팠다. 나는 매일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 최선이 엄마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고, 별 거 아닌 무엇이라고 느껴졌다고 생각하니 서러웠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간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엄마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는 건가 스스로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에,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미션을 실패했다는 좌절감마저 느꼈다.


아빠는 나에게 늘 화가 나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아빠에게 순종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례하진 않았지만, 가부장적인 아빠가 생각하는 ‘무릇 자식이 아버지에게 가져야 할 태도'에는 영 못 미쳤기에 어려서부터 아빠는 늘 나를 못마땅해하고 괘씸해했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고, 역정을 내고, 집안의 결정에 있어서 민주적인 절차가 아닌 아빠 의견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나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아주 많았다. 공항에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셨는데, 엄마에게만 상냥하게 안부를 묻고 아빠 안부를 묻지 않았던 것, 엄마에게만 전화를 하고 아빠에게는 전화를 먼저 하지 않는 것, 아빠의 의견에 그냥 한번 ‘네, 알겠습니다' 하지 않고 반기를 들거나 의문을 제시하는 것.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를 아빠는 내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온전히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렇기에 내가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든 만큼, 아빠도 내가 일상에 존재하는 것을 머리 아파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크고 작은 갈등이 줄어들지 않아서, 엄마는 중간에서 늘 마음 아파했다. 엄마는 아빠의 입장도 이해하고, 나의 입장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갈등이 엄마를 늘 슬프게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엄마의 곁에 있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다 버겁고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어느 날, 언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울고 불며 힘든 마음을 토해내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때가 오면 나는 이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겠다고 했다. 그때는 진심이었던, 하지만 마음 깊이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만. 나중에 장례식이 끝나고 언니랑 커피숍에 마주 앉았을 때, 언니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혼자 힘들게 내버려 둬서 마음을 못 헤아려줘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너 없이는 못 사니까 도망은 안된다고. 너무 우습게도 그때 언니의 그 한 마디에 속상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때 알았다. 나는 외로웠던 게 아닐까.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가 고팠던 거였을까.


각자의 이유로 벅차 하는 언니와 동생을 배려한다며 나는 괜히 큰 사람인 척하면서 내 힘듦을 혼자 감당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더 솔직히는 나조차도 내 상처와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내가 힘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것 같았다. 특히 같이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 없는 그 힘듦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마지막에 다다르는 길이 내리막 길일 수밖에 없는 투병기간이기에

잘하려고 하는 마음과 다르게 엄마 아빠와의 부딪히는 이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

내 내면에서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보호자라는 출퇴근 없이 24시간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드는 삶의 방식,

덧붙여 나에게 익숙한 삶, 그리고 익숙한 관계를 떠나와서 일상의 유희가 결여된 삶을 사는 것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를 조금씩 무너지게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면 남편에게 제일 많이 기댔다. 매일 밤 울먹이며 전화하는 나에게 늘 다정하고 지혜로운 위로를 해주었다. 많은 주말 한국에 와서 나를 보고 갔다. 시간이 여의치 않았던 한 주말엔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날 늦은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남편은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고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었지만, 그 외에는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스스로 벽을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곤 누군가가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기를, 그리고 위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상황을 마주하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Everything can be taken from a man but one thing: the last of the human freedoms - to choose one’s attitude in any given set of circumstances, to choose one’s own way.
삶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삶에 수반되는 고통에도 의미가 있다. 고통은 삶에서 분리 될 수 없고, 고통과 죽음이 없는 인간의 삶은 완전하지 못하다.

If there is a meaning in life at all, then there must be a meaning in suffering. Suffering is an ineradicable part of life, even as fate and death. Without suffering and death human life cannot be complete.

― Viktor E. Frankl, Man's Search for Meaning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내 노력과는 다르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지금 이 상황과 나의 노력에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만큼 지쳐있었던 이 때, 이 책을 만났다. 빅터 프랭클은 절망과 고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데, 작가가 경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삶처럼 어떤 의미나 희망을 찾기 힘든 극단적인 절망도 존재한다고, 그 때 우리가 살아서 그 상황을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묘한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 더 힘내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힘듦을 마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위로 해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엄마를 잃어가는 각자의 아픔이 너무 크고 버거워 옆에 있는 사람의 슬픔을 배려해 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있어도 각자의 버블 안에서 사는 것 같았던 우리들. 그래서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외롭게 이 슬픔을 경험했다. 버겁더라도 우리 셋이서 서로 좀 더 부대끼며 서로의 마음을 터 놓았다면 우리는 좀 덜 외로웠을까.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쌓이고 쌓여서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손을 내밀 것이다.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아픔이고, 설명하기 힘든 상처일지라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졌을 것 같다. 혼자 울던 그 많은 날 가운데 하루 정도는 언니나 동생 품에 안겨 울었더라면, 그리고 나도 언니와 동생의 혼자 우는 마음을 들어주었더라면 우리는 덜 외로웠을 것 같고, 좀 더 견딜 힘이 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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