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치앙마이로 가기로 했다

by 소도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일 때문에 두 달간 유럽에 가 있게 되었다. 영국의 배쓰 Bath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렀다.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잠깐씩 여기저기 돌아다니긴 했다. 영국 내에서는 런던, 캠브리지와 브리스톨에 갔고, 웨일스의 카디프도 다녀왔다. 시누이네가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가서 써머 하우스에서 쉬다가 오기도 했다. 영국은 추워서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몸을 덥히고, 내가 사랑하는 데이비드 그롤의 그룹인 푸 파이터스 Foo Fighters 공연을 보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머물렀다. 남편이 내 기분 전환을 위해서 좋은 숙소와 재밌는 여정을 다 계획해주었지만, 미안하게도 훨씬 많은 시간 나는 숙소의 내 침대 위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슬픔이라거나 충격 같은 기분이 장악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어떤 기분이든 느낄 수 없을 만큼 비어있었던 것 같다. 어떤 기분도 존재하지 않아서 멍하고 무감각했다.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건 죄책감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투병기간 나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실제로 그 이상 어떻게 더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엄마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은 죄책감이 가장 강하게 나를 괴롭혔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마지막 시간들을 머릿속으로 한없이 되돌려 보면서 그 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게 최선이었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좀 더 다정할걸, 엄마 손을 한번 더 잡을 걸, 마지막에 퉁퉁 부어있던 엄마 다리를 한번 더 마사지해드릴걸. 지나갔던 모든 여정에서의 내 모습이 부족했다 느껴졌다. 깨어있는 많은 시간 문득문득 엄마의 마지막 아파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엄마는 마지막에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겁 많은 엄마가 두렵고 외로웠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몇 번인가 엄마가 꿈에 나왔다. 깨어있는 시간에 내가 떠올리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닌, 엄마는 편안하고 아프지 않은 모습이었다. 꿈의 상황은 매번 달랐지만, 엄마는 살아서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를 안았던 그 촉감까지도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 깨고 나면 늘 그게 꿈이었다는 안타까움에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홍콩으로 돌아와서 원래 다니던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감사하게도 내 보스는 나만 준비가 되었다면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며 계속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다. 일에 대한 의욕보다도 그저 생각의 빈 공간 없이 바쁘게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스와 미팅이 있던 날, 오랜만에 플립플랍이 아닌 구두를 신고서 회사 근처의 커피숍으로 가는 길,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발이 퉁퉁 부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강한 느낌이 나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혹은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의 홍콩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유례없이 거국적인 규모의 데모 중이었고,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이제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처로 폭력적인 충돌로 변해 그 수위는 하루하루 더 거세지는 중이었다. 결국 일터로 돌아가지 않기로 하자 나는 이 혼돈 속의 홍콩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론가 잠시 떠나 있어 볼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으로,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날씨가 따뜻한 어떤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치앙마이로 가기로 했다.


치앙마이는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 일 년에도 몇 번씩 오고, 특히 겨울에 날씨가 온화하고 좋아서 이곳에서 연말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 무작정 어떤 계획도 없이 어떤 기대도 없이 무턱대고 여기서 겨울을 나겠다는 생각으로 치앙마이에 왔다. 유일한 목표라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무사하게 하루를 보내자라는 것.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지도, 무언가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어디든 가보고, 무엇이든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태국어 학원을 등록했고, 매일매일 좋아하는 커피숍에 앉아 일기처럼 지난 시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게 아닌,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은, 우연으로 만들어진 이 일상의 리듬이 이상하리만치 깊은 안정감을 주고 내면의 충만감을 느꼈다. 이 전엔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글을 쓰고 싶어 했는지도 몰랐다.


한 달 전의 나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 지금 내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나는 이곳에 와 있고 이런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생각보다 더 아팠고

생각보다 더 행복했다


치앙마이에서의 내 삶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늘 계획대로 흘러가고 예측할 수 있었던 인생을 벗어나

처음으로 나는 바로 내일도 다음 주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왠지 이제야 나를 닮은 하루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엄마를 잃었지만

어리석게도 그 시간을 통해서

진심으로 엄마와 나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잘 달려가던 삶을 멈추고서

우회하는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하루를 찾았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이 조금 더 많아졌고

오늘만큼의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 하루에 만족하는 날들이 있고

2시간 반 걸려 비행기를 타고 여기로 오는 남편과 주말부부의 삶이 재밌고

다섯에서 넷이 된 우리 가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상실 이후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 상실의 경험이 나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그 경험을 온전히 껴안고 그 슬픔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그 담담한 말에 공감한다.


엄마의 친한 친구분이 장례식에 오셔서 우리 세 명의 손을 잡고

“엄마는 너네한테 진짜 고마워하셨어. 너네 다 엄마한테 너무 잘했다.” 하셨다.

엄마는 “내가 병은 얻었지만,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받았잖아. 나는 그거면 되는 것 같아.

그게 이 병이 나한테 준 최고의 선물”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것

그리고 엄마를 사랑하고 또 잃어가는 시간 동안 아파하며 배운 것들

이 경험을 함께해 준 고마운 사람들, 이 모두를 감사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I cannot pretend I am without fear. But my predominant feeling is one of gratitude. I have loved and been loved; I have been given much and I have given something in return; I have read and traveled and thought and written. Above all, I have been a sentient being, a thinking animal, on this beautiful planet, and that in itself has been an enormous privilege and adventure.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모두 각자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살며, 결국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It is the fate of every human being…to be a unique individual, to find his own path, to live his own life, to die his own death.

- Oliver Sachs, Gratitude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홍콩의 상황은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디서 살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은 오늘만큼의 삶에 만족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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