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의 기록
코비드가 급속도로 퍼질 기미를 보이자, 2020년 3월 16일 네바다의 모든 학교가 결국 문을 닫았다. 온라인 수업 준비가 안 된 아이의 학교는 바로 대책 회의에 들어갔고 열흘 후 수업자료와 숙제를 받아가라는 연락을 했다. 그리고 두 주 후 킨더(유치원) 과정에 다니고 있던 아이는 집에 생애 첫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은 매일 오전 40분씩 zoom 앱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로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20분짜리 social and science 수업이 비디오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2주마다 학교에서는 아이의 반과 이름이 적힌 일반 종이 쇼핑백에 한가득, 조금 과장해서 산더미 같은 학습지를 내주었다. 매일 적당량을 수행해야 할 숙제였다. 집으로 돌아와 받아온 유인물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보니 1학년 전 과정을 아우른 문제집을 복사한 것이었다. 결국 사립학교에 비싼 학비를 내고 공립학교보다 학습 난이도가 1년 정도 빠른 문제집을 받아서 집에서 홈스쿨링을 시키는 격이었다.
아이 학교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쌓이는 가운데 남편이 근무하는 주립대학도 쿼런틴에 들어갔다. 남편도 온라인 강의가 익숙지 않아 나름 고심하는 듯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는 팬데믹의 공포로 우리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고, 온 가족이 복작복작 집 안에서 부대끼며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우울한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환경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고, 이 변화된 삶은 우리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그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스트레스로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온종일 상대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까지 상대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니 사전 온라인 환경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zoom 앱을 통해 아이가 수업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교육시키는 것, 수업 도중에 아이가 놓친 것을 확인해 주는 것, 라이브 수업 때 발표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거나 손을 들어도 발표를 시켜주지 않을 때 속상해하는 아이를 위로하고 설득하는 일, 호기심이 많고 아는 것이 많은데 라이브 수업 때는 개별 교육을 해주지 않으니 아이가 지루해하고 심심해하는 것, 2주에 한 번 수업자료를 가지러 학교에 다녀오는 것, 산더미 같은 숙제를 받아와 매일 규칙적으로 학습지를 시키듯 아이와 실랑이하며 숙제를 시키는 것 등, 학교 교육과 관련 이 모든 일이 엄마 몫이 되어 버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도 못 갈뿐더러, 공원 놀이터와 농구장, 테니스장도 모두 폐쇄되어서 아이가 나가서 신나게 뛰어놀 곳이 없었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지 못해 온몸을 뒤트는 아이를 데리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동네 산책을 하는 일,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 슬퍼하고 우울해하는 아이를 위로하는 일, 게다가 밖에 나가 외식도 못하니 집에서 하루 종일 삼시세끼 요리를 해야 하는 것, 한창 호기심이 많은 다섯 살 아이를 위해 일일 계획표와 주간 커리큘럼을 짜야하는 일, 아이와 함께 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한 후 비디오로 찍어서 학교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야 하는 일, 라이브 수업뿐만 아니라 동영상 비디오 수업도 듣게 한 후 과제 수행시키기 등, 아이를 위해 엄마들이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널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때는 정말 힘들다, 아프다, 피곤하다, 짜증 난다는 말을 매일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비싼 학비를 내고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냈는데, 온라인 수업이 아이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몬테소리 스쿨에 아이를 보낸 이유는 아이의 수준에 맞게 학교에서 개별 맞춤 학습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은 아이의 능력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그에 맞는 교육을 아이에게 제공해 줄 수 있다. 3,4,5세의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성장을 보이는 친구들을 스스로 찾기도 하고, 앞선 연령의 친구들을 보고 배우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성을 터득해 간다.
이렇게 아이는 다양한 연령층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학습능력에 맞는 학습 자료를 소개받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 반에 선생님들이 3명, 4명이 배치된 이유는 이렇듯 다양한 아이들의 요구와 능력을 모두 수용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학교 시스템과 교육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대면 수업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 모든 혜택을 사립학교에서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 이러한 혜택은 받을 수 없게 된다. 엄마도 편하고 아이도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싼 학비를 내고 사립학교를 보내는 것인데, 이것이 모두 불가능해진다면 비싼 학비를 내고 사립학교를 다니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엄마는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속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나는 3월 15일 쿼런틴이 시작되고 2달 후 몸에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이 크게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서 나머지 시간을 유익하고 보람 있게 채워줘야 한다는 엄마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알게 모르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실제로 그 누구도 내게 엄마로, 아내로, 작가로, 그리고 교육자로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이 모두를 잘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