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엄마
펜데믹 선언으로 쿼런틴 상황이 장기화되자, 미국의 각종 신문기사와 잡지에는 ‘parental fatigue (육아 피로), parental burnout (육아 탈진 또는 육아 소진), parental stress (육아 스트레스)’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펜데믹 시대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잘 견디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종 방법들로 조언을 하고 있다.
최근 실리고 있는 기사들의 공통된 내용은 미국의 싱글맘, 워킹맘, 전업주부맘 모두의 경우를 인터뷰해서 올린 글들이다. 싱글맘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쿼런틴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을 집에서 돌봐야 하는 이유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 그만큼 수입도 함께 줄어들어 경제적 곤란을 겪다가 결국 부모와 살림을 합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된다. 워킹맘의 경우는 남편이 함께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워킹맘이 일을 그만둔 경우라도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닥치진 않으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함으로써 오는 정체성 상실 내지 정체성 혼란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전업주부 맘의 경우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전업주부로 가정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일을 막 시작하려던 찰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었고 아이들도 다시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주어진 기회가 모두 사라지자 자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결국, 이 모든 케이스들을 보면 펜데믹으로 인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남편이 있든 없든 모두 멘털 헬스 위기에 처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한국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때때로 ‘한국 엄마들 스트레스가 더 유난스러운 건가? 미국 엄마들은 더 잘 견뎌내는 건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양육자의 멘털 헬스 위기에 관한 글들과 기사들은 미국 엄마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미국의 M세대 엄마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육아의 힘듦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기 보다는, 자녀가 지금까지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모두 서로를 의지하며 잘 버텨내고 있는 것이 무척 다행인데, 자신은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참 이기적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육아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는 미국의 M세대 엄마들의 말에서 그들의 강박증이 느껴졌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여전히 미국이나 서구 사회에서도 육아의 상당 부분이 엄마에게 기대고 있고 엄마들도 그것을 암묵적으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경우를 보자.
펜데믹 선언 초기, 나와 남편은 사사건건 부딪쳤고 서로 짜증스러운 얼굴로 마주하는 일이 빈번했다. 나는 계속 힘들다고 말했고 당신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했지만, 남편은 듣지 않았고 자신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회피하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점점 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자 아이도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싫다고 밉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해법은 남편에게 있었다. 자기 오피스 룸에 처박혀서 가정 일을 외면하고 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만 빠져나가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그저 가족의 울타리만 지키며 혜택만 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무언가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과장해서 태어나 5년 동안 아빠와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던 아이는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면서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에 아빠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다. 아이는 수시로 아빠에게 화를 냈고, 남편은 아이가 아빠를 존경하지 않는다며 또 화를 냈다. 아이 입장에서는 항상 힘들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존재는 엄마였고, 회사에 나가 하루 종일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밥이나 먹고 다시 자기 방에 처박혀 버리는 아빠는 그저 하숙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에 비해 아빠는 무책임했다. 심지어 몇 달 동안 집에 하루 종일 함께 있는데도 아빠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으니 아이는 당연히 아빠가 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 모두 무척 힘든 상황에 처해있음을 남편에게 충분히 전달했을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했지만, 남편의 태도는 바로 변하지 않았다.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현재로서는 내 모든 사랑이 아이를 향해 있고, 때문에 당연히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전부를 희생하리라는 걸 매우 잘 아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두 달, 석 달을 논쟁과 싸움과 혼란 속에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은 깨달았다. 자신이 무언가 하나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야 아내가 살 수 있음을, 그래야 아이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아빠와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걸 깨닫는 것이 두세 달씩이나 걸릴 일인가? 아니, 아이를 낳아 키우는 5년 동안 대체 깨달은 거 하나 없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정말 신기할 노릇이었다.
행동 건강(behavioral health) 전문가들이 팬데믹 시대의 우리 엄마들에게 말한다.
당신은 단순히 부모이기만 할뿐만 아니라, 교사이자 요리사 겸 가정주부이고, 연예인이자 심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고용주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 외 이 모든 역할까지 저글링 하듯 다루고 있죠.
하지만 이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질 필요는 없다. 또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가질 필요도 없다. 이 모든 역할을 혼자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가까운 남편부터 소환해서 육아와 가정 일을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육아는 엄마 혼자만의 업무가 아니라는 걸 아이 아빠에게도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자, 그러면 우리 부모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팬데믹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까.
1.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육아와 양육에 있어서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변화시켜야 한다. 나도, 아이도, 아빠도 모두 완벽하지 않다.
2. 부모가 선생님으로, 다른 고용인으로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홈스쿨링 할 때 굳이 학교에서처럼 일곱 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세션을 나누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 학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수행하거나 아이가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집중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 양측 부모가 모두 재택근무를 할 경우, 아이의 학교 온라인 수업이나 스쿨 웍을 반드시 서로 시간을 나누어 교대로 봐주도록 하라.
4. 아이의 스크린 타임 제한에 대한 강박으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 가끔 스크린 타임이 오버될 지라도 그 시간이 부모가 쉬거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5. 현재 코비드 19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가 처해진 이 모든 상황이 전례가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누구에게나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바로 손을 놓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결국 나는 하나씩 강력하게 요구하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하나씩 요구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기에 이번엔 좀 더 뻔뻔해지리라 마음먹었다.
“하루 한 끼는 당신이 준비해. 난 딱 하루 두 번만 식사 준비를 할 거야. 아침, 점심, 저녁 중에 하나만 골라.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당신이 직접 아이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해 주고 숙제도 도와줘. 아니면 토요일 하루 내게 개인 시간을 주던가.”
한참 고민하던 남편은 하루 한 번 식사 준비는 하겠으나, 평일에 아이의 온라인 수업과 숙제를 하루 종일 도와줄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주말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낼 테니 나에게 개인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 후 남편은 어떤 날은 점심을 준비하고, 또 어떤 날은 저녁을 준비하다가 결국 힘들다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담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식구는 아침식사로 딸기 잼이나 버터를 바른 식빵 쪼가리 하나에 우유를 먹는 날도 있었고, 맛없는 즉석 수프를 대충 풀어서 먹는 날도 있었으며, 어떤 날은 계란 프라이에 맨밥, 또 다른 날은 구운 김에 맨밥을 싸 먹었다. 내가 준비할 때와는 달리 형편없는 아침식사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어느 날 요리를 잘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나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대충 해 먹고살았어. 언젠가 나아질거야.
정말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남편은 아침식사를 좀 더 제대로 준비할 줄 알게 되었다. 계란 후라이보다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에 맞게 반숙 계란도 기막히게 삶아내기 시작했고, 팬케익도 부드럽게 잘 부쳐냈으며, 어떨 땐 계란 볶음밥에 브로콜리도 데쳐서 내오기도 했다. 대개 내가 그 전날 밤에 미리 끓여놓은 국에 말아먹을 밥만 아침에 해서 내오는 날이 많았으나, 그래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팬데믹의 성과라고 한다면 아이의 잠자리 독립이었다. 5월이 되고 나는 아이를 아이의 방으로 독립시켰다. 5년 넘게 나는 육아에 시달렸고 밤잠을 설쳤으며 밤에 글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밤에라도 나는 혼자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남편의 오피스 룸 옆에 있는 아이의 방은 이미 아이가 4살일 때부터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 방조차도 남편이 점령한 후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몇 년 간 남편은 오피스 룸에서 일을 하다가 혼자 아이의 방에 들어가 편하게 잠을 자 왔던 것이다.
일단 아이를 아이 방으로 독립시킬 결심을 한 후, 나는 남편에게 일주일 안으로 아이의 방을 내주라고 선포했다. 혼자서 큰 방, 작은 방 둘 모두를 차지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렇게 지난해 5월,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이 달린 로프트 침대를 방에 넣어주고 그 밑에 엑스트라 매트리스를 밀어 넣었다. 남편이 그 밑에서 자든 말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는 자다가 새벽에 깨면 바로 옆 아빠 방으로 가서 함께 붙어 잤다. 그 불편함이 지속되자, 남편은 결국 아이의 로프트 침대 밑에 깔아놓은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며 아이와 매일 밤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와 남편이 서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얻게 된 또 다른 혜택이라고 한다면, 아이와 아빠가 친해질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잠을 조금 더 편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밤에 혼자 조용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침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모자란 잠을 충당하기 위해 아침에 30분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오월이 지나고 그나마 조금 안정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아침식사와 밤잠이 해결되니 내 삶은 한결 나아졌다.
반면 남편은 아침식사를 하느라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아이와 위아래 따로 매트리스를 이용해서 밤잠을 자니 남편은 크게 불만이 없어 보였다. 다만 아이를 8시에 일찍 재워야 하는 것이 좀 힘든가 보았다. 그래서 평일은 내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아이를 재웠고, 금토일 주말에는 아빠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었다. 이것도 분업이 되니 내가 한결 편해졌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아이는 킨더가튼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5월 말, 아이는 드라이브 쓰루로 유치원을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