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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Nov 15. 2019

이중언어 아동의 정체성
- 엄마, 도대체 나는 누구야?

1. 이중언어 환경, 미국에서 한국아이 키우기(1)

<행복한 이중언어 아이 키우기>

1장  이중언어 환경, 미국에서 한국아이 키우기(1)



1. 이중언어 아동의 정체성 

     – 엄마, 도대체 나는 누구야?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자아상과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 우리는 이를 정체성(identity)이라고 한다.      


  영어의 아이덴티티 identity는 라틴어인 identitas에서 기원했으며, 그 의미는 동일함, 동일성 혹은 참된 본디의 형체를 뜻한다. 따라서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 구하기’, 즉 ‘나’의 본질, 참된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1) 아이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만 세 살이 될 무렵, 아이는 내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때 나는 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보고 있다가 대수롭지 않게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별똥별 이야기를 해주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밝고 예쁘고 귀여운 별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지. 그러더니 그 별이 엄마 뱃속으로 쏙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예쁜 우리 아기가 태어났지.”     


  그 말에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방긋 웃었다. 아직 만 세 살이 채 되지 않은 터라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는 듯 보였다. 


  <신화적 자아정체성>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죽으면 어디로 가? 어떻게 돼?” 


  “밤하늘 수많은 별 중에 가장 밝고 예쁜 별이 엄마 뱃속으로 들어왔어.”

 


 그런데 잠시 후 고개를 갸우뚱하던 아이가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엄마,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 어떻게 돼?”


  “사람은 아프지 않고 오래 살면 백 년 정도 사는데, 죽을 때가 되면 몸은 땅으로 가고 영혼은 다시 저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된단다.”     


  이렇게 세 살 아이는 별이 사람 몸으로 들어와 아기가 탄생하고 죽으면 다시 별로 돌아간다는 일종의 신화적 상상력에 근거한 자신의 정체성을 믿게 된다. 


  아주 오랜 옛날 물의 신인 하백의 딸, 유화라는 여인에게 하늘의 신 해모수가 다녀간 후, 유화가 가는 곳마다 햇빛이 따라와 그 여인의 배를 비추어서 알을 잉태하게 된다. 그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었다는 이야기가 고구려 건국신화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져서 엄마 배로 들어와 아기가 된다는 이야기도 건국신화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므로, 나는 이것을 ‘신화적 자아정체성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창의력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프리스쿨에 다닌 지 1년 정도 지났을까? 만 4살이 넘은 아이는 전에 했던 질문을 또 던진다.     


  “엄마, 도대체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엄마 꿈에 나왔던 그 별 이야기 말고.” 


  이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어린이를 위한 유튜브 동영상을 함께 보며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주 작은 알이 아빠 배에 있는 가장 힘이 세고 빠른 올챙이와 만나서 아기가 된 거야. 바로 우리 데이비드지.”  

   

<생물학적 자아정체성>


“엄마, 도대체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그 별 이야기 말고. ” 


“엄마 뱃속의 아주 작은 알이 아빠 뱃속의 가장 빠르고 건강한 올챙이와 만나서 아기가 된 거야.” 



  이렇게 생물학적 자아정체성을 확인한 아이는 그 후로도 사람의 몸(육체)과 영혼(정신)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 가서 자주 질문을 했다. 


  어느날 집에서 키우던 베타피쉬가 3년의 수명을 다하고 물 위로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서 죽은 후, 아이 아빠가 아이와 함께 집 뒤뜰에 흙을 파서 묻어 준 적이 있다. 물고기가 땅 속에 들어가 묻히는 순간, 갑자기 아이가 서럽게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베타피쉬가 하늘로 가서 별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빠가 차갑고 어두운 땅속에 물고기를 묻으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나는 다시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이렇게 육체는 땅속으로 들어가 흙이 되지만, 우리 영혼은, 정신은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돼. 저기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가 다시 별똥별이 되어 뚝 떨어져서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 아기가 될 테니까.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어.”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 아이는, 하늘에서 별이 되어 뚝 떨어진 자신의 영혼이 부모에게서 부여받은 자신의 육체와 하나가 되어 자기가 탄생했다고 믿으며, 자신의 존재를 '신화적 정체성(정신, 영혼)과 생물학적 정체성(육체)의 결합체'로 규정짓는다. 


         

  2) 미국에 사는 이중언어 아동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나'와 '부모' 외에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깨달아 가기 시작하면 궁금증이 더 많아진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또다른, 새로운 자아상과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게 된다. 


  먼저 미국에 사는 한인 가정의 이중언어 아동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들을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이 아이들은 3살에서 5살 사이에 프리스쿨이나 데이케어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과 관련하여 좀 더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 시기의 아동들에게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령이나 성장발달 속도에 따라 개인적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또래와의 단체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서너살 무렵 프리스쿨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들 >

 

 “나는 왜 눈이 작아? 왜 큰 쌍꺼풀이 없어?”  - 유전적 차이

 “나는 왜 머리가 다크브라운이야? 왜 금발이 아니야?” - 인종적 차이

 “나 유치원에 가기 싫어. 하고 싶은 말이 잘 안 나와. 이렇게 힘든데 왜 가야 해?” 

   - 언어 차이

 “엄마, 나는 미국인이야, 한국인이야?”     - 인종, 민족, 국적 차이 

 “엄마는 왜 영어 발음이 선생님과 달라?” - 제2언어 구사에서 오는 발음의 차이

 “엄마, 나는 왜 영어도 배우고 한국말도 배워야 해? 두 개 다 잘하기 힘들어.” 

   - 이중언어 스트레스


   아이가 만 세 살 이후 프리스쿨에 다니면서 던지기 시작한 질문이다. 내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한인 가정의 이중언어 아동들이 이와 관련된 비슷한 질문들을 던진다고 한다. 우리 이중언어 아이들이 프리스쿨에 가서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과 그 친구들의 차이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전적 차이, 인종적 차이, 언어 차이, 민족과 국적 차이, 영어 발음의 차이, 이중언어 스트레스 등 나는 적어도 1, 2년은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 세례를 받았던 것 같다.      


  만 5, 6세 이후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영어나 수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화, 종교, 세계사, 지리, 과학 등을 배우면서 세상의 다양성을 접하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보다 깊이 있는 질문들을 많이 하게 된다. 


  아래 예를 한 번 보기로 하자.       


<다섯살 이후> - 유치원 과정, 공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 

     : 역사, 문화, 종교 차이에 관련된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     

  

  “엄마, 왜 친구들이 한국을 몰라? 중국, 일본은 아는데 한국을 몰라.”

  “엄마, 친구들이 내가 하는 말이 일본어냐고 자꾸 물어봐. 왜 한국말을 모르지?”

  “Luna New Year를 왜 Chinese New Year라고 해? 한국에도 음력설날이 있잖아.”

  “엄마, 한국에도 Thanks giving day가 있어?”

  “한국은 언제부터 있었어? History가 어떻게 돼?” 

  “엄마는 어려서 꿈이 뭐였어? 나는 커서 뭐가 되고 싶냐면.....”

  “엄마, 하나님은 좀 violent한 것 같아. 왜 이렇게 무서워?” (7살 무렵 만화로 보는 성경책을 읽으면서)

  “엄마, 성경책처럼 부디즘 이야기 책도 있어? 궁금해.”

  “엄마는 크리스챤이야 부디스트야? 나는 책 다 읽어보고 크리스챤이 될 건지 부디스트가 될 건지 결정할거야.”     


  이렇게 다양한 차원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을 한다. 그렇다면 아동의 성장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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