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부부의 경제적 자립기]
(지난 편에 이어서)
2024년 가을부터 나는 금융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S&P500을 추종하는 국내 ETF를 중심으로 연금저축펀드, IRP, ISA에 순차적으로 납입한도를 채워나갔다. 2025년 초 첫 배당금이 나왔을 때, 액수는 적었지만 뿌듯함의 크기는 예상외로 컸다.
성실히 돈을 벌어다 주는 'S&P500'
직원이 생겼구나
2024년을 마무리하며, 나와 아내는 우리의 비전보드에 자본 목표를 '순자산'과 더불어 '현금흐름'을 함께 기입했다. 현금흐름 목표를 바라보며 나는 한 차례 더 레버리지가 필요한 시기임을 느꼈다.
투자를 할 때 원칙 중 하나는 신용대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다. 신용대출을 부정적으로 본다기보다는, 급박한 타이밍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껴놓아야 할 카드로 여겼다. 대신 돈을 활용하기 위해 신혼집이었던 분당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기존 전셋집에 깔려 있는 우리의 예비 투자예산은 꽤 많았다. 처음 전세대출을 받으며, 아내의 '빚은 빨리 갚아야 해' 정신에 입각해 조금씩 전세대출금을 갚아왔던 몫도 있었다. 이제 우리 부부를 위해 이러한 돈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자산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어엿한(?) 결혼 3년 차 부부로서, 아내가 이번에는 나의 선택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물론 나와 아내 모두 첫 신혼집이었던 정자동 오피스텔에 예상보다 많은 애정이 생겼다. 이곳에서 우리의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부동산 임장도 다니며 저축과 투자를 병행했다. 다양한 지인들과 동네에서의 추억을 쌓기도 했다. 정자동에서의 신혼 생활은 생각만큼, 아니 생각보다 행복했다.
나는 회사의 사내 복지기금 대출과 시중은행 전세대출을 활용해 전세 보증금을 오롯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생긴 우리의 현금은 금융자산에 투자키로 했다.
전세보증금이 기존 신혼집과 비슷한 수준의 매물군을 추렸다. 17년 차 오피스텔에 살았던 우리 부부는 다음 이사 갈 곳으로 준공 10년 이내의 오피스텔들을 범위로 매물을 알아봤다. 이외에는 첫 신혼집을 구했을 때와 기준은 동일했다.
아내의 직장인 강남역까지 대중교통 35분 이내일 것
치안이 양호하고 도보로 이용 가능한 자연 인프라(천, 공원)가 있을 것
문화 인프라(카페, 음식점, 영화관 등)도 충분할 것
증층 이상, 뷰가 트여 있을 것
기준이 명확하기에 후보군은 금방 좁혀졌다. 연초부터 여유 있게 임장을 다녔다. 서초구 신원동 청계산입구역, 강남구 개포동 양재천 인근, 송파구 문정동 장지역, 중원구 태평동 태평역, 수정구 창곡동 남위례역, 수지구 성복동 성복역 등 우리 부부가 직접 방문해 데이트도 할 겸 매물도 볼 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실제로 살 곳은 투자요소를 빼고 보면 되기에 조금 더 마음이 가볍고 기준도 심플했다. 이 중 우리가 선택한 곳은 송파구 장지역의 대형 오피스텔이었다. 인근의 풍부한 카페, 음식점, 영화관, 대형마트, 백화점이 가장 강점이었고, 안전한 동네 분위기에 천과 공원이 근접한 것도 우리 부부에게 맞았다. 매물 또한 고층이면서 탁 트인 전망이었고,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과 장지역이 도보 거리에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까. 주식 시장이 거대한 파고를 맞았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중국·유럽연합·한국 등 주요 무역 파트너국에 대한 강도 높은 관세 인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철강,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등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품목에 대해 최고 25% 수준의 수입 관세를 부활시켰다.
이는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나스닥, S&P500, 다우지수는 모두 20% 이상 하락했다.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장중 15% 이상 폭락하는 날이 잇따랐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트럼프 쇼크 2.0’이라는 말이 돌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진짜 불황의 시작”, “2020년대판 닷컴버블 붕괴” 같은 비관론과 함께, "이때가 기회"라는 낙관론으로 들썩였다.
나는 마음먹은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작년부터 지수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하며 "장기투자 + 우상향"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과 신뢰를 쌓아 온 터였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화폐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은 기본 전제제를 깔고 있다. 이 중 전 세계 대부분의 무역과 금융 거래는 ‘달러’로 이뤄진다. 미국은 자국 통화를 전 세계가 받아주는 ‘기축통화국’이다. 미국이 돈을 찍어도 다른 나라들이 그 달러를 받아주기 때문에, 위기 때조차 달러는 ‘신뢰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미국에는 애플, 구글, 테슬라 같은 세계적인 혁신 기업들이 있고, 젊고 역동적인 이민자들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금융 시스템도 실패를 포용하며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결국 이런 구조는 미국 시장이 일시적으로 흔들려도, 장기적으로는 다시 상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기존에 개설해 둔 연금저축펀드, IRP(개인형 퇴직연금), ISA(비과세 투자계좌), 직투 계좌를 기반으로 정해놓은 포트폴리오 비중만큼 ETF 매수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회사의 퇴직연금을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했다. 그 계좌 또한 지수 ETF를 성장과 배당의 밸런스를 맞춰 투자했다. 그제야 퇴직연금은 ‘회사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4개월 전인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순자산의 5% 만이 금융자산이었지만, 4월이 마무리되자 우리의 금융자산은 순자산 대비 35% 수준까지 올라왔다. 올해 말까지 아내와 나의 계좌로부터 나오는 현금흐름 목표는 1000만 원으로 잡았다.
이런 과정을 밟아오며 우리는 점점 더 순자산을 기반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엔 ‘얼마를 모았느냐’가 중요한 지표였다면, 이제는 ‘어디에 얼마나 나눠져 있느냐’, ‘그 자산이 어떤 리스크와 수익률을 가지느냐’가 훨씬 중요해졌다.
재테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도전적인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 더 많은 공부와 타이밍을 재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이어 나가야 하는 투자라면, 우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만한 적정한 수익률을 기반으로 우리 삶을 즐기면 그만이다.
포르투갈 여행을 통해 우리 부부는 원하는 삶을 어렴풋이 그려보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제적 전제조건'을 명확히 한 다음, 부동산 임장과 주식 공부를 통해 조금씩 구체화해갔다. 시험 치듯이 과목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마다 필요한 지식들을 채우고 실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지점까지 올 수 있었다.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한 2028년까지의 과정도 설레는 이유다.
(매주 수요일마다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