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예술과 낭만이 숨쉬는 곳
암 진단을 받은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잘 먹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식욕이 없어도 끼니를 거르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야 힘든 항암치료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죽음 앞에서 살고 싶어진 나는 건강을 위해 하루 세끼를 빠짐없이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따금 귀찮을 때는 점심을 간단한 디저트로 때우는데, 주로 식감이 부드러운 케이크나 단백질 보충이 가능한 에그타르트를 먹는다.
카페에서 에그타르트를 먹을 때면 친구들은 포르투갈 여행담을 나눴다. 에그타르트의 본고장은 포르투갈이며, 그곳에서 맛본 에그타르트가 최고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맛이 궁금하던 즈음 우리 삼남매의 포르투갈 여행이 성사되었다. 말로만 듣던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것 같아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포르투갈에 가면 ‘1일 1에그타르트’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점은 북부의 항구 도시 포르투였다. 숙소는 비토리아 전망대 옆 건물의 4층이었는데, 주황색 지붕과 도우루강이 어우러진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포르투가 왜 ‘낭만의 도시’인지 알 수 있는 그림 같은 전경이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뒤늦게 몰려오는 배고픔에 밖을 나섰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은 후, 히베이라 광장에서 멋진 야경과 버스킹을 감상하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튿날 아침은 에그타르트를 사와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우리가 가려는 에그타르트 가게는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카스트로’였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전 성당 종소리에 눈이 떠져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숙소에서 카스트로까지는 걸어서 고작 5분 거리였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풍경이 많아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언니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한산한 아침의 여유를 누리다가 카스트로에 다다랐다.
카스트로는 유명 맛집이라 웨이팅이 있다고 들었는데, 매장 오픈 시간에 맞춰 가니 손님이 한 팀밖에 없었다. 진열대를 빼곡히 채운 노란 에그타르트에 눈앞은 환해지고 입안은 군침이 고인다. 에그타르트 12개를 포장한 뒤 신이 나서 숙소로 가는 길의 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졌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해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문 순간,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의 몽글한 속살이 부드럽게 터져 혀끝에 황홀함이 밀려왔다. 에그타르트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을 안긴 첫맛의 여운을 충분히 느낀 후 테라스에서 본격적으로 에그타르트를 흡입했다. 동화 마을 같은 전경을 앞에 두고 먹으니 에그타르트가 더욱 달게 느껴진다.
한 사람당 에그타르트 3개씩을 비워내고 나서야 비로소 숙소 밖으로 나왔다. 작가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할 때 영감을 받았다는 렐루서점을 방문한 뒤, 내부 벽화가 화려하게 꾸며진 상벤투 기차역과 외벽의 푸른 아줄레주 타일이 인상적인 알마스 성당을 들렀다. 관람을 마치고 걸음마다 예술 작품이 펼쳐지는 포르투의 거리를 걷다가 갓 구운 에그타르트 냄새가 진동하는 ‘파브리카 나타’에 홀린 듯 들어갔다.
파브리카 나타의 1층은 에그타르트를 만드는 틀이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여서 장난감 기차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주문을 하고 올라간 2층은 샹들리에와 진한 파란색 소파로 채워져 고급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 에그타르트의 맛은 카스트로와 비슷했는데, 겉에 탄 부분이 많고 짠맛이 조금 더 강한 게 미묘한 차이였다. 부지런히 여행을 하다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숨을 고르며 배를 채우니 에너지가 다시 차오른다. 새롭게 충전한 힘으로 모루정원까지 걸어가서 분홍빛 노을을 감상하며 낭만의 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역시 카스트로에 가서 에그타르트를 포장해오기로 했건만, 가게 오픈 시간이 되어도 다들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홀로 숙소를 빠져나와 카스트로를 찾아갔는데, 여행 중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돼 한편으로는 기뻤다. 이참에 혼자 느긋하게 포르투 거리를 즐기고 싶어서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골목을 구석구석 누빌 때마다 예쁜 파스텔톤 건물들이 반겨주고, 은은한 악기 연주 소리가 흘러나와 감성을 충전시켰다.
에그타르트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온 후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꺼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서 고즈넉한 강가를 바라보며 따뜻한 에그타르트와 컵라면을 먹으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다. 마음에 닿는 풍경과 맛있는 음식만으로도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 든다. 전날 볼량시장에서 사온 납작복숭아로 아침 식사를 산뜻하게 마무리하고, 예술이 흐르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겨 여정을 이어갔다.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넘어간 뒤에는 에그타르트 원조집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 방문했다. 에그타르트는 수녀들이 수녀복을 다리기 위해 달걀 흰자를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로 디저트를 만든 것이 시초인데, 수도원의 레시피를 전수받아 세계 최초로 에그타르트를 판매한 곳이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라고 한다. 약 2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는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원조 에그타르트는 포르투에서 먹은 것들과 조금 달랐는데, 겉은 바삭하다 못해 딱딱했으며 안에 든 크림은 달지 않고 담백했다. 기대한 맛은 아니었지만 원조 에그타르트를 경험한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국내에서 에그타르트를 먹을 때면, 포르투갈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걷다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 에그타르트를 먹던 때가 그리워진다. 미식과 낭만으로 물든 그곳에 언젠가 꼭 다시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금빛으로 반짝이며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안 에그타르트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