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온천 마을의 정취를 느끼다
수습기자 시절에 2박 3일 동안 홀로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후쿠오카 근교의 온천 마을인 유후인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는데,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좋아서 다음에 오면 유후인에서 하루를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7년이 흘러 가족과 함께 후쿠오카를 가게 되었고, 나는 유후인에서 숙박할 곳을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유명한 온천을 즐기고 싶어 전통 료칸 몇 군데를 찾다가 모든 객실이 독채형 구조이고 객실 안에 개별 노천탕이 있는 ‘유후인 호테이야’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여행 첫날, 우리 가족은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후인행 버스에 올라탔다. 1시간 30분 후 유후인의 아기자기한 골목과 낮은 건물들이 반겨줬는데, 반가움도 잠시 배가 너무 고파서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현지 와규를 숯불에 구워내 만든 소고기덮밥.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고기가 이불을 덮듯 밥 위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소고기를 맛보며 우리집 근처에도 이런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상점 거리를 걸으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디저트 가게에서 말차 젤라또를 사 먹고, 기념품 가게에서 원석으로 만든 팔찌를 구매하며 소소한 행복을 채웠다. 구경을 마치고 유후인 호테이야에 체크인을 하러 가니 직원이 한글로 된 숙소 지도를 꺼내 객실과 부대시설의 위치를 설명했다. 유후인 호테이야는 단 13개의 객실만 운영하는 프라이빗 료칸이며 식사와 별도로 아침에는 우유를, 저녁에는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는다고.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는 팝콘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는데, 투숙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우리가 머무는 객실은 부엌, 다다미방, 침대방, 화장실, 그리고 노천탕으로 구성된 독채였다. 독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노천탕. 대나무 울타리 뒤로 초록 잎사귀들이 일렁이는 곳에 작은 탕이 마련돼 있었다. 숲속의 아늑한 온천 같은 이곳을 우리만 이용할 수 있다니. 신이 나서 양말을 벗고 촉촉하게 젖은 나무 데크를 지나 노천탕에 발을 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긴 채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시간을 보내니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어느덧 다가온 저녁 식사 시간.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전통 일본식 요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직원이 안내한 방으로 들어가니 큰 창 너머로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테이블 위에는 코스 요리 순서가 적힌 종이와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잠시 후 계란찜, 생선회, 연어 허브 튀김, 와규 구이, 삶은 갯장어 등 현지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가 차례로 나왔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 하나하나에서 맛과 정성이 느껴졌는데, 특히 와규 구이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자연을 담은 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니 가슴이 탁 트인다.
저녁을 먹은 뒤 팝콘 만들기 체험을 하러 로비 옆 화롯가를 찾아갔다. 숙소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먼저 시범을 보이셨는데, 옥수수 알갱이를 넣은 냄비의 바닥 부분을 불에 갖다 댄 다음 냄비를 살살 흔드니 알갱이가 하나둘 터지면서 팝콘이 완성됐다.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우와!”하고 감탄하며 뒤따라 냄비를 들었다. 옥수수 알갱이가 담긴 냄비 밑부분을 불길에 닿게 한 후 좌우로 팔을 움직이자 ‘톡톡’ 소리가 나면서 팝콘이 튀어 오른다. 갓 튀긴 팝콘은 그릇에 담아 바로 먹었는데, 간이 되어 있지 않아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즐겁게 팝콘을 만들어 먹는 우리 가족을 숙소 사장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보시다가 한마디 말씀을 건네셨다.
“저쪽에 가면 계란이랑 고구마도 있으니까 가져와서 먹어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찜기 안에 있는 계란과 고구마를 꺼내 왔다. 화롯가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일본에 있는 시골 친척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기가 스며든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어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객실로 돌아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을 타고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와 다다미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리 너머 초록은 빛을 머금은 채 반짝였고, 새들은 지저귀며 노래를 불렀다. 자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노천탕에 가서 잠시 발을 담근 뒤 객실 밖에 있는 공용 온천탕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향해 열린 온천탕에 들어가자 선선한 아침 공기가 피부에 닿고 따뜻한 온천수가 몸을 녹인다. 숙소에서 탕 옆에 준비해 둔 시원한 우유까지 마시고 나니 개운하게 잠이 깨는 느낌이다.
아침 식사 후 숙소 체크아웃을 하면서 다음에 유후인에 오면 이곳에 또 묵겠다고 다짐을 했다. 짙은 녹음이 둘러선 전통 료칸의 정취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고, 직원들의 환대와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쓴 서비스는 정겨운 시골집에 온 듯한 포근함을 자아냈다. 온천을 비롯해서 다다미방, 가이세키 등 일본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웠다. 유후인 호테이야는 단순히 잠만 자는 숙소가 아니라 머무는 동안 새로운 경험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