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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08. 2021

14. 가나다라마바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국어를 배우느라 참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영어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불어를 접했다. 대입 시험과목이 아니어서 설렁설렁 공부했던 불어가 대학에 왔더니 외교학의 필수 언어가 되어 쓸모있게 활용한 적도 있다. 회사에 입사했더니 일본 벤치마킹이 살 길이라며 일본어를 공부시켜주어 날 선 자세로 따라 했고, 직장에 다니던 중 해외연수의 기회로 인도네시아어를 실감 나게 배울 기회도 있었다. 이제 끝난 줄 알았는데 해외여행을 하다 보니 현지어를 할 줄 아는 게 여행의 묘미를 살린다는 걸 깨닫고, 중국을 재미있게 여행할 요량으로 얼마 전까지 중국어를 공부했다.


다행히 몇 언어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기회가 있어서 요긴하게 활용하였는데, 특히 인도네시아어는 우리나라에 불법 체류 형태로 유입된 외국인 근로자 봉사활동으로 10여 년간 의료봉사, 한글 봉사, 통역봉사 등 보람 있는 쓰임도 되었고, 개인적으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020년,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국적이 한국인 사람이 사용하면 ‘국어’인 것이 외국인이 사용하면 ‘한국어’라고 한다. 곧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혹시 ‘한국어 교원’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국립국어원에서 부여하는 일종의 자격증인데,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에게 10여 년 동안 한글 교실을 운영하면서도 이런 자격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이 자격이 있으면 국내에서는 외국어학당 교사나 다문화센터의 한국어 교사로 활동할 수 있고, 해외에서는 KOIKA 한국어 교사 파견이나 세종학당, 한글학교 등의 한국어 교사로 지원할 수도 있다.


참 유익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자격이지 않은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직업.


외국인에게 가르친다고 하면 대부분 외국어를 잘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순 한국어만 사용한다. 물론 외국에 나가서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현지 언어를 할 줄 아는 게 더 낫겠지만, 적어도 자격증 취득에 있어서 외국어는 전혀 관련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한국어 교원 자격은 2급과 3급이 있는데 취득 과정은 다르지만 취득 후 활용도는 별반 차이가 없다. 2급은 학사학위 소지자가 복수전공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온라인 학원의 3학기 과정을 이수만 하면 되는 것이고, 3급은 온라인 학원을 통해 120시간의 학습을 이수하고 필기 및 면접시험을 보는 절차를 갖는다. 얼핏 2급이 쉬워 보이지만 기간과 비용의 차이가 있어서 3급을 선택했고, 100시간의 온라인 강의와 20시간의 실습을 거쳐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총비용이 50만 원 정도였는데 내일 배움 카드를 사용하여 15만 원 정도 들었다.


세상의 언어 중에서 시험 보기에 가장 유리한 것은? (정답 : 한국어 / 이유 : 네이티브니까).


국문학이라면 어렵겠지만 그냥 한국말인데 하는 당연한 생각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음을 자각하게 하는 늪을 바로 만났다. 한국어 시험은 단순히 우리말을 안다고 쉽게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말인데 뭐 어렵겠나 생각했는데 책을 보는 내내 처음 들어보는 용어 투성이들. 한국어를 공부하는데 무슨 뜻인 지를 모를 수 있다니. 기출문제를 보면 문제부터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자를 다 읽을 수 있는데 의미를 모를 때 오는 멘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 보려니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아무튼 2개월 정도를 수련하는 심정으로 인내하며 참고서 2권을 읽고 또 읽었더니 그나마 50점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CUT은 60점이다. 1차 시험의 합격율이 35% 정도로 낮은 이유가 수험생의 수준 미달이 아니라 학습의 난이도 때문이라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선어말어미’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문장의 끝에 오는 어미의 앞에 놓이는 어미’라는 뜻으로 ‘드셨(시었)겠다’의 ‘시’는 존칭을, ‘었’은 시제를, ‘겠’은 추측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이다. 이렇게 내용을 보지 않고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가 참 많다. 이런 단어를 외국인이 표현하려면 이 구조를 안다고 가능할까. 갑자기 우리말이 어려워진다.


다행히 인내와 행운의 결과로 어학 2개월, 필기 2개월, 면접 1개월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하였다.


또 하나의 부캐가 준비되었다.


자격증이 나오면 집 앞에 있는 다문화 센터 한국어교실의 보조 교사를 알아보려고 한다. 조금씩 경험을 쌓아보려는 것이다.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한국을 가르쳐주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외국인이든 비즈니스나 여행을 하는 외국인이든 우리나라의 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이지 않을까.


가나다라마바사,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애쓰던 시간들이 새삼 감사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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