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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09. 2021

15. 맛있는 식사에 대한 가벼운 욕망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 


무던히도 부대끼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콘크리트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 흙과 나무와 바람이 있는 곳, 흙에서의 노동과 글을 쓰는 매일의 일상을 꿈꾸는, 그런 미래의 상상을 기대하고 있다. 시골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과 단절이 더욱 강화된 좀 깊숙한 산골의 생활을 동경하고 있다.


시골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아파트에 익숙해져서 너무 불편해요’, ‘손이 너무 많이 가요’ 등의 이유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이야기들을 잘 살펴보면 불편함으로 포장된 쑥스러운 이유가 깔려있다. 시골의 생활을 잘 정비된 캠핑이나 며칠의 휴가처럼 쉼의 일정으로만 생각하거나 목가적 동경으로 치환하는 경우들이다. 결국 콘텐츠의 문제이다. 시골에 가서 하려고 하는 콘텐츠가 없을 경우 쉬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음식이다. 텃밭에서 기른 야채 쌈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신선한 재료가 있은들 맛있게 만들어 먹을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골 생활은 단순히 쉬러 가는 게 아니라 생활의 터전이 바뀌는 일이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명백한 자기만의 정의와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말은 사실 멋있게 보일 수 있지만 공허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실제 아무것도 안 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슬기로운 시골 생활을 위해서는 디테일한 콘텐츠가 고민되어야 한다. 




나의 산골 생활은 ‘오전 노동, 오후 작물&약초, 저녁 공부&글쓰기’로 준비하고 있다. 작물이나 약초나 글쓰기나 모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너무도 중요한 식사가 존재한다. 훌륭한 자연의 재료를 잘 이용하여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싶은 가벼운 욕망이 간절하다.


다행히 요리에 대한 관심이 있는 편이고, 집에서도 꾸준히 부엌을 드나드는 편이라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이 더 증폭되어갔다. 특히 한식 양념에 대한 관심이 커서 어떻게 공부를 할까 생각한 끝에 한식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했다. 


기본을 타이트하게 익히려면 자격증을 목표로 정하고 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후에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양념에 대한 다양한 나만의 방법들을 찾을 수 있고, 혼자서 능히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식조리사의 정식 명칭은 ‘한식조리기능사’로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자격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1차 필기시험과 2차 실기 시험으로 구성된다. 시험은 각각 큐넷에서 신청하며 60점의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필기시험은 참고서 1권이면 충분하고, 1개월 동안 조금 타이트하게 공부하면 적당한 거 같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한국어교원 인터넷 강의를 듣는 짬을 이용하여 한식조리사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7월에 지정된 고사장에 갔더니 생소한 컴퓨터 시험이다. 4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들을 클릭하고 제출을 누르면 즉시 점수가 뜬다. ‘OO점 합격’. 꼭 운전면허 필기시험 분위기와 같다.


2차 실기 시험은 조리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 내일배움카드가 참 유용하다. 주 4일 7주 과정을 재료비 10만 원 정도 지불한 외에는 다 무료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활용할 요량으로 야간 학원을 등록했다. 수업은 무척 힘들었다. 강사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나면 각자 자기 재료를 가지고 요리 실습을 하는 방식인데, 익숙하지 않은 칼질과 어색한 손놀림으로 2시간 내내 허리를 숙이고 요리를 하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딱 1회 결석했을 뿐 열심을 다했다. 강사로부터 솜씨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코로나로 개강이 연기되기도 했고, 7주 내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드디어 12월 초 실기 학원이 끝났다. 31가지 한식 요리의 조리 순서를 그대로 익혀야 하는 여정을 마쳤다.


학원 수강 중이던 11월 초에 시험 분위기를 익히는 차원에서 실기 시험을 보았다. 앗, 출제된 과제 2가지가 모두 지난주에 배운 것이다. 자신 있게 제출했건만 46점이라는 처참한 점수로 떨어졌다. 


한 달에 한번 시험을 볼 수 있어서 12월에 다시 도전했다. 서울 시험장이 모두 접수 완료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청주까지 시험을 보러 갔다. 이번에도 익숙한 종목이 출제되었고, ‘마침내 합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깝지도 않게 또 떨어졌다. 51점. 


얼마 전 3번째 도전을 접수했다. 1.28일, 세 번째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모두 완료하려고 했건만 유일한 미제로 하나를 남겨두고 말았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이 자격증에의 도전은 요리와 친해지려는 노력일 뿐이다. 양념에 대해서도, 다양한 야채, 채소, 산나물 등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게 많다. 10년 뒤 시골에서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해나가 보려고 한다. 


요리 또한 이제부터 시작이다. 좋아하는 걸 한다는 건 설렘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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