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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07. 2021

13. 어쩌다 ‘작가’가 되었습니다


강사를 하고 싶으면 책을 써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06. '고민의 길에서 만난 작은 인연' 글에서 소개)


직장 생활 30년을 정리하는 의미로 책을 써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럴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그렇지만 글을 몇 장 쓰는 것도 힘든데 책을 쓴다는 게 말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범주에는 일체 없는 일인데. 하고는 싶지만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영역이라고 치부하기에 딱 맞았다. 그래도 책을 써보라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서 책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을 세 권 골랐다. 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 동안 쭉 읽었다. 기존 작가나 출판사에 근무하는 분들이 이런 책을 낸다는 게 새삼스럽다. 아무튼 모든 책의 공통점을 몇 가지 느끼게 되었는데, 첫째는 책 쓰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둘째는 책을 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한 장을 쓰고 나면 쓸게 없다는 점이어서 오래 쓰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공통적인 추천은 한 달간 매일 1시간 이상 글쓰기를 해보라는 게다.


1시간, 매일 그리고 1달.


그러면 글을 쓰는 근육이 생기고 그렇게 어렵지 않게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장점이 지구력이라고 생각하는데 ‘해볼까?’라는 치기가 또 스멀스멀 올라왔다.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라는 평범한 주제에 대해 나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글을 써보기로 감히 작정한다. 30년을 정리해본다는 의미에 더하여 실제 경험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지금의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선배의 이야기로 방향을 정한다. 개별 소재를 뽑아보았더니 50여 개가 나온다. 이렇게 하여 각 소재 별로 A4 기준 2-3장 정도를 정리하면 120장. 책으로 묶으면 260페이지 내외일 듯하다. 방향이 정해졌다. 이제 글을 쓰면 된다.


매일 쓰자. 한 달을 쓰자.


이렇게 2월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려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저녁 약속이 모두 취소되고 저녁 시간이 몽땅 글쓰기로 채워졌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거짓말처럼 글쓰기가 제법 익숙해진다. 잘 쓰는가를 떠나서 빈 종이에 활자를 채워가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한 페이지를 쓰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빨라지고 하루에 한 꼭지 정도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꽁꽁 얼어붙은 세상과 분리되어 글 쓰는 일에 나를 점점 몰아가고 있었다.


4월 말, 글쓰기를 시작한 지 대략 3개월. 다 썼다.


42개 꼭지로 수정 구성한 내용들이 다 채워졌다. 놀랍지만 기쁘다. 그리고 혼자서 열심히 수정하였다. 꼭지의 제목을 수정하고, 꼭지 간 순서를 바꾸고, 소 목차별로 꼭지를 재구성하여 마침내 5월 말 초안이 완성되었다. 놀라움이 또 새삼스럽다. ‘내가 이걸 만들었구나’라는 대견함도 불쑥 앞선다.


이제부터 출판의 일정을 시작해야 한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초보 작가의 경우 70,80군데 출판사에 이메일로 출판 기획서를 제출하면 1,2군데에서 반응이 올까 말까 할 정도로 출판사 연결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책 쓰기 플랫폼과 같은 출판 에이젼시를 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혼자서 해보다 안되면 자비 출판을 하자라고 방향을 잡았다.


교보문고에 다시 갔다. 유사한 책을 한 권씩 집어 출판사 정보를 적어서 60개 정도의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테스트 삼아 2군데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출판 기획서뿐 아니라 아예 책의 초안 전체를 함께 보냈다. 여기서 나오는 반응이나 상황을 감안하여 이후 접촉을 진행할 요량이었다.


아, 할렐루야!! 테스트 삼아 보낸 2군데에서 모두 관심이 있다고 만나보자고 한다. 아주 소규모 출판사들이었고, 사장님들과의 미팅에서 바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고, 그중 한 군데와 2주일 후 출판 계약서 사인을 했다. 출판사 차원의 수정, 편집, 교정, 디자인 등의 작업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8.12일 마침내 책이 나왔다.


신기하기 말할 수 없다. 내 이름의 책이 교보문고에 놓이다니. YES24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다니. 형용하기 어려운 짜릿함이 있다. 지인들에게 SNS로 책을 출간했음을 알렸더니 생각 이상의 반응이다. 다들 ‘작가’라고 부른다. 강사를 하려면 책을 한 권 써서, ‘저자 직강’의 타이틀로 강사 시장의 문을 두드려 보자는 단순한 시작이었는데, 책을 쓴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나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큰 산을 하나 올라선 느낌을 준다.

 

2월부터 시작한 책 쓰기가 7개월의 짧은 여정 끝에,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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