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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Jan 01. 2021

06. 고민의 길에서 만난 작은 인연


매서운 바람이 가슴마저 긁는 듯하다.


다가올 삶을 채워나갈 좌표에 대해 고민하던 1월의 어느 날, 회사의 프로그램에 신청한 진로상담 컨설턴트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조용한 회의실 공간의 원탁을 사이에 두고, 펼쳐놓은 노트북 너머로 40대 초반쯤 보이는 컨설턴트와 마주 앉았다. 노트북 겉면의 검은색 삼성 로고 글자가 겸연쩍게 나와 눈 맞춤을 한다. 어색함의 덩어리들은 쉭쉭 소리를 내는 라디에이터 열기에 얹혀 몽글몽글 회의실을 떠돌아다닌다. 


이제 적성에 대한 질문과 희망하는 진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겠지? 뻔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젊은 친구가 어떻게 대화를 풀어 나갈지에 나의 시선은 멈추어 있었다. 이런 나의 관망의 자세를 읽었는지 젊은 컨설턴트는 얄궂은 목마름에 연신 찻잔으로 손을 내밀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나자 대화는 이내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신세로 멀뚱해졌다. 


대화를 건너뛰어서 바로 내가 궁금한 점에서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상담의 경험들 가운데 어떤 오류들을 많이 보았는지, 고민과 실행의 사이를 극복하는 현실적 방법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컨설턴트의 이야기는 연령대에 맞는 직업의 선택이 경제적인 목적과 분리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하고 싶은 목표 연령과 목표 수입을 정하고 그 수준을 커버해 줄 수 있는 나의 적성에 맞는 꺼리를 찾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한 하나의 대안이 바로 요즘 유행하는 ‘N잡’이라고 했다.


‘N잡’


컨설턴트와의 작은 만남에서 얻은 두 가지 키워드 중 하나이다. ‘N잡’. 무언가 설렘이 있었다.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이라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꽉 막힌 고민의 명치를 탁 두드려주었다. 어쩌면 2nd life의 dimension은 1st life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명제의 해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 가지를 같이 해보는 것. 예전처럼 전투적이고 치열하지 않게. 여태처럼 긴장의 살얼음판에서 벗어나서. 그간 많이 듣고 익숙한 ‘N잡’이 내게 불쑥 다가왔다.


컨설턴트는 나의 화법이나 목소리가 강사에도 적합할 거 같다고 했다. 사실 직장생활 내내 많은 강의 기회가 있었고, 제법 좋은 평을 듣는 편이었지만, 회사 밖에서의 강사를 누가 시켜나 주겠는가 말이다. 회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걸. 그러자 강사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설명하며, 첫걸음으로 책을 쓸 것을 권했다. 본인의 강점을 살려 해당 분야의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관련 책을 하나 써보라는 것이었다. 저자 강의. 그렇지, 저자이면 강사를 하기 좋은 조건이겠지, 그런데 내가 책을 쓴다고? 


‘책 쓰기’


이렇게 작은 만남에서 얻은 두 번째 키워드인 ‘책 쓰기’가 마음에 들어왔다. 꼭 강사의 길이 아니더라도 직장생활 30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도 책을 쓴다는 것은 제법 매력적인 작업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책을 쓴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젊은 컨설턴트는 “책 쓰는 게 쉬우면 다 쓰게요?” 하며 누구나 같은 반응이라는 듯 씩 웃었다. 하지만 책을 쓴다는 것의 방법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며 각 종류별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쭉 이야기해주고, 한 번 고민해보라고 권했다.


몇 차례 더 만남을 가졌다. 주로 내가 어떤 분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하면 관련 자료를 내게 전달하고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출판의 방법, 출판사 리스트, 강사 플랫폼의 유형과 운영방법 등등의 내용들이 묻고 답해졌다. 잘 모르던 분야에 대한 정보가 쌓여가면서 ‘나도 책을 한 번 써볼까’라는 불순한 생각이 스멀스멀 마음 바닥에서 기어올라왔다.


2020년 1월에 진행되었던 진로상담 컨설턴트와의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만남은 ‘N잡’과 ‘책 쓰기’라는 2가지 키워드를 선물하였고, 꽁꽁 언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움츠리고 있는 새싹 마냥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작은 만남의 인연은 2nd life에 대한 설레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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