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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going Oct 20. 2023

친구가 죽었다. 스스로

어느날 갑자기

페이스북 업데이트가 뜸하네? 바쁜가? 하다가 죽음을 알게 되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 방에서 친구는 떠났다. 


"나야. 어디야?"

"희망버스 2호차 탔어, 곧 출발해, 너도 와! 지금 분위기 완전 신나!"

"애들이 아직 어려서 못 따라가. 내 몫까지 신나게 다녀와."

...


"나야. 어디야?"

"지금 심각해 3일째 집에도 못 가고 깜깜이 바둑이(?) 중이야." 

"에? 그게 뭐야? 야 너 바다이야기 그런 거 하냐?

"어허-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달라. 있어 심오한 거.

항상 어딘가에서 무엇인가에 몰입해 있었다. 

...


"나야. 어디야?"

"어 혜화동. 요즘 연극일 도와주고 있어. 여기 사람들 엄청 좋아."

"그 사람들, 밥은 사주면서 부려먹냐?"

"야, 여기 사람들도 다 배고파. 그리고 나 정말 즐거워."

... 


항상 어딘가에서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불렀다. 

어디든 누우면 거기가 본인 집이고 먹으면 그것이 본인의 식사였다. 

"애초부터 가진 게 없으니까 손해 볼 것도 없어." 배시시 웃었다.


난 그 애에게 한 번도 과거를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바닷가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집을 나와 서울에 왔다고 한다. 


베이스기타 연주자로 만났다. 

동자승 같이 생긴 녀석이 몹시 고운 톤을 가만가만 연주했다. 

"얘 치는 거 들어봐. 톤을 느껴봐."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날부터 나는 베이스기타를 떠올릴 때면 늘 두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1주기에 지인이 그 동네를 찾아갔었다. 친구의 낡은 퀵 오토바이가 골목길 한편에 아직도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먼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꽃을 올려두고 왔다고 전해주었다.


자유로워 보였다. 그것이 늘 근사해 보였다. 


어느 날 

"모든 게 허망하게 느껴진다." 말했더니 

"다 가진 년이 헛소리 한다." 화를 냈다. 

"왜? 내가 가진 게 뭔데?" 물었더니 

"너는 자식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고양이도 있잖아." 일갈했다. 

"내가 손에 뭘 많이 쥐고 있긴 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 커서 감당하기 벅차.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자꾸만 어깨 위 짐만 늘어나. 비 효율적인 인생이야." 푸념을 늘어놓았다. 

"웃기고 있네." 친구가 전화를 끊었다. 

그날로 조금 틀어졌다. 


그 이후로는 음악 이야기만 했다. 



친구는 3일 후에 고시원 주인에게 발견되었고 친구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아 시신이 수습되었다. 장례식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소주를 세 병 마셨다고 하는데 평소 그 아이 주량을 생각하면 치사량 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죽을 작정이었다면 안주를 곁들여 잔을 기울였을 리는 없기 때문에


벌컥벌컥 한 병 마시고 한바탕 울고 

또 한 병 마시고 한바탕 울고.

마지막 병을 비운 후 일을 치렀을 것이다. 


연습을 했을까? 우발적인 사고는 아니었을 것 같다.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적지도 크지도 않은 돈을 빌리고는 갚지 못하여 연락을 끊었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던 그 아이는 몇 년을 외로웠을 것이다. 막막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친구가 죽기 4개월 전에 친구의 옆 방 아저씨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옆방 아저씨 동거녀가 2시간 동안 문을 차고 전화를 하고 욕을 했는데 인기척이 없는 거야. 뜯고 들어가 보니 아저씨가 문틀을 청테이프로 막고 번개탄을 태우고 죽어 있더라고." 

경찰이랑 주인아저씨가 나누는 차가운 대화. 동거녀의 망연자실. 싱크대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저씨를 수습하는 과정. 모든 것을 지켜본 친구는 너무너무 슬펐다고 한다. 


자신이 죽은 후를 직접 목격한 것과 다름없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저리 간단한 거였어. 그런 생각이 들었겠지.


그때까지도 나는 사람의 죽음을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보편적 정서에 머물러 있었다. 어딘가에서 이 세상으로 오고 다시 그 알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힘들었지. 이제 편히 쉬어라. 니가 돌아간 그곳에선 원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겠지.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방탕하게 살아라. 그런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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