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정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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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Burn’은 넷플릭스 추천 카테고리 중 하나다.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극의 필연성을 공고히 하는 영화를 가리킨다. 바꿔 말하자면 지루하고 졸린 작품 모음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하나 둘 리스트에 모아두기만 하였는데, 최근 넘쳐나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와 비슷비슷한 소재에 질려 보물상자를 열듯 다시 찾게 되었다. <저니스 앤드>는 리스트 안에 오래 묵힌 영화는 아니었지만 샘 클래플린, 폴 베타니를 믿고 보게 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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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 중 최전선에 영국군과 해당 참호를 지휘하는 스탠호프 대위가 있다. 순환 배치받아 근무하던 중 전해진 무리한 작전 지시와 전투가 임박했다는 정보는 이제껏 버텨온 베테랑에게도 크나큰 부담이 된다. 그 와중에 동네 친구이자 누나의 남자친구로서 스탠호프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롤리 소위가 등장한다. 롤리는 스탠호프가 속한 곳으로 배치를 요청하고, 이는 대위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사선에서 망가져 버린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불안, 공포, 긴장, 체념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현장에 폭격은 예정되어 있고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고요한 <고지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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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압감에 짓눌린 스탠호프, 천진하게 사선에 발을 들인 롤리는 결국 서로에게 의지가 되지 못한 채 그날을 맞이한다. 때로는 따스하게 때로는 직언하며 버팀목이 되어주던 오스본 중위의 부재는 그들에게 너무도 크다. 영혼들이 무참히 밟힌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그들의 여정은 그렇게 타의에 의해 끝나버린다.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 배우들의 열연은 더 생생하게 문제의 본질을 전달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