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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Feb 10. 2022

순대, 간 드릴까요?

인생만사 생각하기 나름!

"네, 내장은 빼고 간만 조금 주세요."

순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동네 시장에 가면 항상 시장 입구 언저리,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순대를 파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순대는 이렇게 무거야 지대로 먹는 거다 아이가. 순대 한 개에 간 하나 올려갖꼬..자, 무 봐라!  그리고 이건 서비스!"

할머니는 얼마어치를 사든 지 간에 아이들이 오면 순대를 썰면서 맛있게 순대 먹는 법을 가르쳐주시곤 했다. 그리고 서비스로 손가락 길이 정도로 순대를 듬성듬성 썰어서 과자처럼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때 순대집 할머니의 기억이 머리에 남아서인지 순대는 얇게 썬 간이랑 같이 먹는 것이 나에겐 공식이었다.

 

 시가 바로 앞에는 오래된 작은 시장이 하나 있다. 다른 전통시장이 그런 것처럼 얼마 남지 않은 점포도 점점 비어 가고 있었고, 수십 년을 장사해온 몇몇 가게와 그곳을 수십 년 단골 삼은 고객들만 드나들고 있었다. 시장 입구에는 남편이 아이 때부터 드나들던 남원 할머니가 하시는 순대집이 있었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의 데자뷔처럼. 차이 있다면 어릴 때는 할머니가 가판에 찜기와 목욕탕 앉은뱅이 의자를 놓고 쭈그리고 앉아 계셨다면 이곳은 그나마 현대화된 부스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는 거였다. 명절 음식을 준비할 때면 남원 할머니 가게에서 순대 간을 덩어리째 5천 원 치를 사 왔다. 그리고는 특이하게 그것으로 전을 부친다. '간'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육전을 구울 때처럼 소금, 후추 살짝 뿌리고 부침가루, 계란 옷을 차례로 입혀서 부치면 된다. 그 맛은 육전과 비슷하지만 가성비로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 준비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요리 목록을 써내려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간전'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 찾아보니 순대와 간을 파는 가게는 많았다. 가격도 저렴했다.(아! 그동안 왜 비싼 돈을 주고 먹었던가!) 바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찹쌀 순대는 쪄먹고, 병천순대는 순대국밥 해 먹고 간은 할머니 공식대로 순대에 얹어먹고, 국밥에 넣어먹고, 절반은 전 부쳐먹어야지. '


 바로 다음날, 주문한 순대와 간이 배송되었다. 순대는 마트에서도 사본적이 있어서 익숙한 포장이었는데, 처음 사본 간의 모습은(Oh My God!!!)...... 온전한 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의학백과사전이나 간장약 광고에서나 보던 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먹는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니깐. 괜히 덤덤한 척하면서 남편에게 맛나겠다고 떠들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는 사람의 해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돼지 간을 사람에게 이식한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그럼 우리 야식으로 순대나 쪄서 먹어볼까?"


남편의 말에 싫다고 할 핑계를 대지 못했다. 내가 주문해놓고 역겹다고 말할 수도 없고, 시간은 야식 제한시간인 9시를 넘기지 않았고, 저녁은 면류로 가볍게 때웠다. 야식이 필요한 날이었다. 결국 찜기를 꺼내고 그 위에 찹쌀 순대의 절반과 간의 1/4를 올렸다.

 순대는 역시 맛있다. 파는 순대보다 더. 문제는 간이었다. 맛있는데 계속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남편은 파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열심히 먹어대는데, 내 위장의 윗부분에서 무엇인가가 간이 못 들어오게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 돼지 간에서 사람 간의 형상이 떠오르니 지방간, 간경화증 등등 온갖 간의 질병이 연결되어 떠올랐다.


'병에 걸린 돼지 간을 먹고 있는 거 아냐? 이전에 식당에서 먹던 돼지 간도 이렇게 구멍이 있었나? 이 구멍들이 다 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니 구역질까지 나려 했다. 나의 뇌는 겨우 위속에 구겨 넣은 간들을 모두 내 몸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순대에 얇은 간을 올려먹으면 떠오르던 시장 순대집 할머니도, 시가 앞에서 순대 팔던 남원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인체 해부도의 간 사진만 떠올랐다. 사람의 간과 똑 닮은 모양의 간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생길지 몰랐다. 타의로 채식주의자가 될 판이었다.


 그러고 보면 뇌가 이미지화시키는 능력은 뛰어나다. 뇌의 만들어주는 이미지에 따라서 나의 행동이 결정된다. 생선을 무척 좋아하던 나는 어느 날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여주인공중의 하나인 채식주의자 피비가 '생선의 눈을 봐. 어떻게 먹을 수 있어'라는 말에 담날부터 물고기의 눈만 보았다. 머리가 달려있는 물고기는 먹지 못했다. 1년 정도 모든 물고기를 머리까지 다듬어서 사 와서 먹은 후에야 물고기눈의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임신했을 때 백숙이 너무 먹고 싶어서 닭을 다듬다가 닭의 가슴뼈를 손으로 만지면서 갓난아기가 떠오른 후로는 얼마 동안 생닭을 만지지 못했다.  상상의 힘이 가진 부작용이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렇게 상상만 하느니 토하더라도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검색창에 '돼지 간'을 입력했다.


 시작부터 돼지 간의 효능이다. 특히 40대 중년 초입에 들어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영양분을 담고 있는지 피력한 글 천지이다. 비만과 노안이 온 나에게 시력보호와 다이어트에 좋다니 그만한 음식이 어딨을까?

돼지 간은 철분뿐 아니라 비타민 A가 풍부하여 특히나 시력 보호에 좋다고 합니다.
...
특히 다이어트에 적합합니다.
쪄서 소금에 찍어 먹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관련 정보를 보면서 '몸에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뇌는 사람의 간의 형상을 지우고 <돼지 간=나에게 좋은 영양식>이라는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밖으로 간을 밀어내고 받지 않으려던 위도 돼지 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토할듯하던 역겨움도 사라졌다.


 다시 돼지 간은 해부도의 모습이 아니라 골목 시장통의 따뜻했던 추억과 연결되면서 하나 더,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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