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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ay Nov 29. 2024

유치원생 교육 활동, 그리고 졸업

만 5세(7살) 육아 & 놀이(교육) (2)

울 아들이 다닌 유치원은 공립 단설 유치원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적인 여러 가지 상황상 친정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단지 내 설립된 유치원을 선택했지만, 교육과정이나 환경 모두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배워야 할 것들, 예를 들면 알림장 쓰는 법 등을 차근차근 잘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 비하면 한 반에 배정된 아이들 수가 4배나 많았지만, 이젠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 덕분에 그 틈에서 별 탈 없이 유치원생활을 잘해나갔던 것 같다. 


유치원 생활과 별도로, 집에서도 교육의 비중을 늘려갔다. 

특히 일상 교육에 좀 더 치중했는데, 먼저 유치원에서 배운 공중도덕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지 않기.", "횡단보도 신호 잘 지키기." 같은 지키기도 쉽지만, 어기기도 쉬운 그런 일들을 적어도 아이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지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지금도 지켜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공중도덕을 지켜주는 건 아니라서, 아이의 팩폭에 가끔은 당황하기도 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아저씨, 무단횡단하는 아줌마를 보고,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으면 정말 난감했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팩트를 이야기해 줬다. 

"신호를 지키지 않은 저 아줌마는 우리가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을 어긴 사람이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 규칙은 우리 모두가 지키자고 한 약속이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든, 우린 지키도록 하자. 우린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내 대답이 아이의 의문을 해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일상에서도 유치원에서 배운 것과 괴리감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게 될 융통성은 아이가 스스로 판단을 하게 될 나이가 되면 저절로 생길 테니까, 굳이 이 시기에 그런 것까지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가 세상에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지 않도록 교육했다. 

특히 아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장애에 대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을 인지시키려고 했다. 이 또한 유치원 교육과 같은 선상에서 한 일상 교육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 가지는 선입견은 다 어른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부모가 환경미화원을 보고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런 사람이 된다.”라고 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꼭 필요하지만, 하찮게 여겨지는 일들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가르쳐야지 부모가 나서서 아이에게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편견을 심어주는 꼴이니 말이다.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를 가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울아들의 경우에도 주변에 두 가지 케이스 모두 있었지만, 아이가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건 울 아들이 착한 아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다문화가정에 대해,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데, 어른들이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울아들에게 내가 보는 시선과 관점을 강요하기보다, 내 아이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밖에, 세 돌 전에 잡아주려고 노력했던 식습관이나 일상에서 해야 할 일들, 이 닦고, 손 씻고, 세수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일관성 있게 유지시켜 나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매일 화장실에 가는 습관도 어릴 적 그대로 유지했고, 차츰 혼자 뒤처리를 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가 알고 있어야 할 일들을 유치원 교육과 더불어 차근차근 가르쳐 갔던 시기였다. 


어린이집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유치원생일 때도 바깥 활동을 참 많이 했다. 

집에서 놀 때면 여전히 토마스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망토를 두르고 번개맨이 되거나,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전사가 되었지만,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층간소음을 걱정하는 실내 놀이보다 실외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놀이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딱히 운동이라고 할만한 걸 시키고 있지 않아서 아이와 함께 동네 놀이터, 동네 초등학교, 체육공원 등에 자주 들러 철봉도 매달려보고, 윗몸일으키기도 하는 등의 활동들을 했다.


그리고, 네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유아용 킥보드는 이미 34개월부터 타고 다녔는데, 자전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랬는지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사러 마트에 가서 아이의 맘에 쏙 드는 빨간색 자전거를 사 왔고, 월드컵 공원에 가서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운동신경도 좋고, 겁도 없고, 더군다나 보조바퀴가 있다 보니 중심 잡는 것에 겁을 먹지 않아 두서너번만에 혼자 자전거 타기가 가능했다. 그 후,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러 나갔는데,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아빠가 보조바퀴 위치를 슬금슬금 옮겨 저절로 두발자전거가 되게끔 하더니 초등학교 입학 전에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체험활동도 많이 하러 다녔다.

어린이집 다닐 때만큼이나 유치원 다닐 때에도 주말마다 밖에 나갔고, 유치원에는 짧지만 방학 개념이 있어 그 시기를 활용하기도 했다. 

친정에서 분가는 했지만, 아이와의 여행이나 체험활동은 여전히 친정식구들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았는데, 이모와 함께 과학관이나 전시장을 가거나, 외가댁 식구들과 여름휴가 등을 함께 보내거나, 경주 신라문화체험장에 가서 연을 만들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날려보는 활동도 했다. 


울 아들의 경우, 이미 34개월에 한글을 뗐고,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한글 쓰기도 마스터를 했다. 

숫자는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그런지 덧셈, 뺄셈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따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개념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하는 학습적 교육 외 집에서 따로 무언가를 가르치진 않았다. 여전히 구몬이나 눈높이 같은 학습지도 시키지 않았다.


대신, 새롭게 하게 된 것과 계속 유지해 온 것이 있긴 했다. 

새롭게 하게 된 것은 유치원에서 적어오는 알림장을 꼭 함께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검사를 하는 시간이라기보다, 아이가 써온 글씨를 확인하고, 혹시 틀린 글자는 없는지 봤다. 알림장을 함께 읽으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물어봤고, 알림장 쓸 당시의 선생님 말씀이나 그 외 전달사항은 없는지, 선생님께서 꼭 기억하라는 건 없는지 등의 이야길 나눴다. 그리고 준비물이 있으면 함께 챙기는 루틴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일상을 체크하고 아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가능하면 비슷한 시간대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왔다.


계속 유지해 온 것은, 잠자기 전 독서 타임을 갖는 것이었다. 

이젠 책을 혼자서도 잘 읽기 때문에, 잠자기 전 각자 책 한 권씩을 읽고 있다가 아이가 졸려하면, 누워서 아이가 읽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주었다. 가끔은 일찍 퇴근한 아빠가 동참하기도 했는데, 책 읽는 뒷모습이 어찌나 똑같은지... 

그 밖에 1주일에 2번 가는 방과후 학교에서 프로그램 상 뭔가를 그리거나 쓰는 과정이 있는 것 같긴 했는데, 그런 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해 전적으로 선생님께 일임했다. 가서 뭘 했는지 물어는 봤어도 해온 걸 잘했나, 못했나 체크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경우엔 충분히 살펴봐주고 이야길 들어주곤 했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 1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 것 같다. 

개월수, 만 나이로 따지면, 겨우 5년 차 인생이지만, 다행히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져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어울렸고, 키울수록 내 생각보다 단단한 아이였다.


어린이집은 졸업식 개념이 딱히 없었지만, 유치원 졸업식은 정식으로 치러졌다.

아이가 다닌 유치원은 졸업식날 드레스코드가 한복이라서 졸업하는 아이들 모두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졸업을 했다. 1년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첫 졸업식을 보며, 지난날들을 되돌아본 것 같다. 

나의 육아일기 마지막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 뿌듯함과 기특함, 그리고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이대로 잘 커주길 바라는 마음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에필로그]

유치원 졸업도 하기 전,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아이가 자주 가서 놀던 집 근처 초등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입학통지서를 받고도 영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아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참석해 보니, "울 아들이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예비소집일 이후, 우리에겐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친정에서 분가하면서 얻은 집의 전세만기가 돌아와 재연장을 할 건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건지, 이사를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등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문제도 걸려있었고, 울 신랑의 출퇴근 문제도 걸려 있어서 더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최소 6년은 한 곳에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것이 아이에게 좋은 선택인 건지 몇 날 며칠 고민을 했고, 결국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던가...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내 선택이 몇 가지 문제로 인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냈다(초등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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