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생활 (8)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코로나 19가 창궐해 개학이 3주 가까이 미뤄졌다.
후배들은 입학식이 취소되었고,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누구신지, 몇 반이 되었는지도 문자로만 확인이 된 상태였으며, 심지어는 교과서도 드라이브스루로 배부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착착 준비해 나갔고, 어마어마한 양의 숙제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울 아들은 원래부터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던 아이라, 사실 학교를 가지 않고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것이 특별한 것 같지 않았는데, 아이 친구들은 한동안 학원조차 제대로 못 가다 보니 타격을 좀 받는 듯했다.
3월 한 달 어수선했던 학교 분위기는 4월이 되자 얼추 안정을 찾는 듯했다.
일단 3학년 학생들이 먼저 학교에 등교했고, 나머지 학년들은 온라인을 통해 출석체크도 하고, 반장도 뽑고, 수업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언제 그렇게 준비들을 하셨는지, 꽤나 퀄리티 높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셔서 진도를 나가고 공부를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는 등교개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시작한 것 같았다. 의심자 임시 격리실도 만들고, 급식 칸막이도 설치하고, 다양한 방법들을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강구하는 것 같았다.
등교수업과 기숙사 입사는 5월 말쯤이 되어서야 가능해졌는데, 기숙사 입사 전 학교에서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각자 집에서 자가 격리 후 모두가 음성이 뜨게 되면 주말포함 열흘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고 나서 퇴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행히 모든 학교 구성원들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떴고, 열흘 간의 연속 기숙사 생활 후, 다시 정상적인 월요일 등교, 금요일 하교하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철저하게 아이들을 관리했고, 학부모님들과 아이들도 학교의 조치를 잘 따라 그 당시 꽤나 흔했던 코로나 19 집단 발병은 없었다.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그래도 기숙사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모두가 합심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등교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원래 3월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조기졸업(이하 조졸) 및 조기진학/조기입학(이하 조진/조입) 학생들의 고3 과정 모니터링 일정도 시작되었다.
조졸과 조진/조입이 확정된 아이들은 대학 수시 전형에 포함되는 2학년 1학기 성적도 관리해야 했고, 3학년 과정의 수업, 수행평가, 시험도 쳐야 해서 너무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특히 3학년 과정의 경우 시험과 수행평가 결과가 전 과목 80점 이상이 되어야만 "상급학교 조기입학 인수인정 평가"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생님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촉박해진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서 정규 수업 외 시간을 활용하여 3학년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아이들에게 주입(?)시켰고, 아이들은 통째로 그 과정을 흡수해야만 했다. 거기다 2학년 1학기 수업은 당연히 정상적인 수준(다른 학교에서 보면 미친 수준의 속도)으로 공부해야 했고.
소문에 의하면, 2학년 1학기때 성적 역전 현상(3학년 진학이 확정된 아이들의 성적이 조졸 및 조진/조입 대상 아이들보다 높은 현상)이 간혹 생긴다던데, 아이가 공부하는 양과 수준을 보니, 그 현상이 안 생기는 게 더 비정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울 아들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친구들처럼 기숙사 도둑 공부(제23화 참조)를 하기 시작했다.
무선 스탠드와 에그 무선 공유기, 노트북을 기숙사에 들고 들어가, 기숙사 완전 소등시간이 지난 후, 몰래 과제를 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아이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우리도 아이를 말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조졸과 조진/조입 아이들의 사정을 좀 봐줬으면 싶을 만큼, 수업도 과제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 과제 같은 경우에는 실험하고 연구하는 긴 호흡의 과제들도 있었고, 연구계획서 쓰기 같은 깊은 생각이 필요한 과제들도 있었는데, 그걸 또 애들이 해내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조졸과 조진/조입이 확정된 과학고 2학년 학생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코로나 시기, 대구일과학고등학교의 중간고사는 1학년과 3학년은 오전 시험, 2학년은 오후 시험, 1학년은 시험기간 동안 통학, 2학년과 3학년은 기숙사 생활 등으로 구분하여 실시되었다.
2학년 들어서 치는 중간고사 첫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왔더니, 학부모들의 교내 진입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주차장 외 아이들 캐리어를 입구까지 들어다 주는 행위도 제재를 받았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면서 잠깐씩 엄마들끼리 담소를 나누던 장면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가 과학고 풍경을 너무 살벌하게 만들고 있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6월이 되어서야 치러졌는데, 그동안 배운 온라인 수업 내용과 오프라인 수업 내용이 시험범위가 되다 보니, 그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특히, 2학년에 올라오면서 배우게 된 고급물리학, 고급 화학, 생명과학실험, 고급지구과학 등은 학교 수업 외 공부할 자료가 없다 보니, 개념을 충분히 익혔다 하더라도 실전 경험(문제풀이 경험)이 부족해서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는 울 아들 입장에서는 힘들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험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학원의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시험을 쳐서 그런지, 쉽게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던데, 저는 모든 문제들이 생소해서 제가 아는 개념을 적용해 가면서 문제 푸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실패한 과목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시험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았는데, 과학고에서의 공부는 극복했다 싶으면 또 다른 장애물이 생기고, 늘 변수가 따라다니는 것 같아 참 힘듦을 실감했다.
하지만, 아이의 예상과는 달리 모두가 어려웠던 시험이었는지,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고급" 과학과목들도 선방했고, 특히나 작년에 조금 미련이 남았던 "수학" 성적도 등수를 꽤 많이 끌어올렸다. 아이도 한시름 놓는 것 같았지만, 만족스럽진 않다면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나는 성적을 떠나 아이가 다시 도전하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아 안도했다.
코로나 19로 중간고사 일정이 늦어져, 중간고사 친 지 약 한 달 만에 기말고사 시험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짧은 한 달 안에 2학년 수행평가와 3학년 시험 + 수행평가를 치른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은 기말고사 공부할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울 아들은 밤잠을 줄여가며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데, 시험을 치고 와서는 "시험공부는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고, 시험 결과는 늘 아쉬운 것 같아요."라며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아무래도 과학고생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아무리 성적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지만, 그해 2학년 1학기는 성적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는 결과가 나와 선생님들,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님들 사이에 말들이 굉장히 많았다.
1학년 1, 2학기 성적으로 조졸과 조진/조입을 결정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아이들 성적이 뒤집혔는데, 그 이면에는 "자기주도학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원 수업조차도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면서,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아이와 되지 않는 아이가 분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문으로 떠돌던 성적 역전 현상은 당연했고, 반에서 1등을 계속 유지하던 한 친구는 2학년 1학기 종합 성적에서 조진/조입 등수 밖으로 밀려나가는 일들도 발생했다.
1, 2등 차이로 조진/조입에 들지 못하고 결국 3학년 진학이 결정되었던 아이들 중에서 2학년 1학기 성적이 잘 나온 친구들은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고, 조졸, 조진/조입에 들었지만 2학년 1학기 성적이 미끄러진 아이들은 결국 대학 입시 원서를 쓰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 수시 전형 합격의 기본 포인트는 "성적의 우상향"인데 우하향을 기록하다 보니, 실제로 기대 이하의 입시성적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울 아들은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도 등수가 꽤 많이 올랐다. 자기주도학습이 몸에 베여 있다 보니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된 살인적인 학습량을 본인 맞춤으로 잘 조절해서 시간 활용도 잘했고, 틈틈이 꽤 유의미한 활동들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원에만 의지해왔던 아이들에게는 강제성이 약해진 비대면 수업과 학원의 잦은 휴강 등은 무의미한 휴식시간만 늘이는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
과학고에 5~7년 가까이 계시던 선생님들께서도, 성적 역전 현상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의 2학년 1학기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건 못 봤다고 하셨다. 역시, 코로나가 과학고 생활에 역대급의 예외적인 변수를 만들어내긴 했던 것 같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2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조졸 및 조진/조입 아이들은 "상급학교 조기입학 이수인정 평가"를 치렀다.
아이들마다 선택과목이 달라 7~8과목 정도를 쳤는데, 하루 정도 날을 잡아 오전 내내 시험을 치고 왔다. 조졸의 경우에는 불합격할 경우, 조진/조입 시험을 한번 더 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그런 선례는 없었던 것 같다.
다들 부담 가질 필요가 없는 시험이라고 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부담감을 가지고 시험을 치른 것 같았다. 선생님들께서 해 주신 모니터링을 귀담아듣고 시험을 친 울 아들도 "시험 자체가 어렵진 않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못 쳤을 것 같은 시험"이라는 이야길 했다.
시험 결과는 당일 바로 알려주셨는데, 그 해 아이들 모두 "상급학교 조기입학 이수인정 평가"를 통과했다.
아이의 2학년 1학기 학교 생활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학고 조졸, 조진/조입 대상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했다는 것은 단순히 성적을 잘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힘든 과정들을 차근차근 밟고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었던 과정이 겨우 끝났다 싶은 순간, 다음 단계인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19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던 학교에서도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입시 설명회가 계속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외부인(입학사정관 등)들이 계속 학교를 드나들 수밖에 없어서 선생님들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다.
그날도,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방문을 했고, 그 학교 OO 학과에 관심이 있던 울 아들도 그 입시 설명회를 들으러 간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날 야간자율학습 시작 직전에 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격리되었었어요."
"왜?"
알고 봤더니, 입시 설명회가 끝난 후 질의응답이 있는 학생들은 남아서 입학사정관과 1:1 상담을 했는데, 그날 입학사정관이 학교 방문 후 코로나 19 의심증상이 나타나 검사를 하러 갔다고 학교로 연락을 했던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입학사정관 연락을 받자마자 그분과 1:1 상담을 했던 모든 학생들을 색출(?)해서 임시 격리실로 보냈는데, 울 아들 포함 2명(울 아들 + 3학년 선배)의 학생이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왔고, 입학사정관을 담당했던 물리선생님도 함께 격리되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받을 때, 갑자기 격리된 세 사람은 읽을 책도, 공부할 만한 자료도, 휴대폰도 없어(오전에 수거해 갔다고 한다.),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봤고, 급식도 격리실에서 선생님과 선배 한 명과 함께 먹었다고 했다.
잠을 잘 수도, 뭘 할 수도 없는, "멍 때리는 시간"이 몇 시간 흐르자, 물리 선생님께서 퀴즈 놀이(?)를 하자시면서 여러 가지 시험(?) 문제들을 내셔서 그걸 맞추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행히, 입학사정관의 검사결과가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고 격리가 해제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아이도 힘들었겠지만, 학교에서도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우리도 미리 연락을 받았다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걱정을 많이 했겠지만, 일과시간 중 휴대폰을 수거해 가서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 덕분(?)에 상황이 모두 해제된 후 알게 되어서 코로나 시기, 과학고 생활 중 일어난 작은 해프닝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