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생활(9)
내가 겪어본 과학고등학교의 조기졸업(이하 조졸), 조기진학/조기입학(이하 조진/조입) 대상 학생들의 입시 과정은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시작되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전년도보다 일정이 조금 뒤로 밀리긴 했지만, 학부모 연수, 각 대학별 입시 설명회,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종합 정리, 학생 개별 상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 컨설팅, 학부모 상담, 면접 컨설팅 등의 과정이 단계별로 이루어졌다.
첫째, 학부모 연수.
아이들의 등교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학부모 연수 일정이 나왔다.
학부모 연수는 일하는 엄마, 아빠들을 배려하여 저녁 시간에 열렸는데, 학교에 도착해 보니 코로나 19로 인해 발열체크, 손소독 같은 절차가 더해졌고, 자리도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어 참 살벌한 풍경이었다. 학교에서는 원래부터 조졸, 조진/조입 대상 학부모와 3학년 진학 대상 학부모를 구별해서 입시 컨설팅을 해 왔는데, 그날은 조졸, 조진/조입 대상 학부모들만 참석하는 연수라서 서른 명 남짓 되었던 것 같다. "2021 학생부종합전형 지원 전략"이라는 주제로 3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2시간 가까이 조졸, 조진/조입 학생 맞춤형 입시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사교육 없이 공교육에 의지하고 있던 우리에게는 진짜 도움이 많이 되는 연수였다.
둘째, 대학별 입시 설명회.
중간고사가 끝난 후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입시설명회를 시작으로 고려대, 한양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의 입시설명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는 입시설명회였고, 학생들은 필참이었다던데, 코로나 19로 인해 희망하는 학생들만 듣는 것으로 변경된 것 같았다. 많이 아쉬웠다.
셋째, 생기부 종합 정리.
아이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학교에서 준비한 다양한 행사들에 참여하느라 너무 바빴었다.
학교에서 준비한 강연을 듣고 소감문을 써냈고, 카이스트나 포스텍 선배들과의 만남에 참여한 후, 그들과의 대화들을 기록했으며, 미뤄뒀던 독서감상문을 쓰는 등의 활동들이 이어졌다. 보아하니, 입시에 쓰일 생기부의 세부능력/특기사항(세특) 부분을 채워 넣는 활동들이었던 것 같은데, 원래는 학기 중간중간 했어야 할 활동들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수업 기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기말고사 이후로 모든 행사들이 다 연기되었던 것 같았다. 몇 달에 걸쳐해야 하는 활동들을 몇 주만에 해낸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각자의 생기부를 검토하고 본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방향으로 생기부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넷째, 학생 개별 상담.
한 달 차이로 치러낸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수행평가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아무래도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된 조졸, 조진/조입 학생들의 성적 상담을 위해 선생님들께서 바쁘게 움직이신 것 같았다.
아이들은 1학년 1, 2학기 성적과 2학년 1학기 성적을 바탕으로 각 담임 선생님들과 개별 면담을 했다는데, 울 아들도 거의 1시간 넘게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을 살펴봐주셨고, 현재 아이의 성적이 어느 학교까지 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알려주셨다고 했다. 울 아들은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 후, 진로진학 상담 선생님을 별도로 찾아가 관심 있는 학교와 학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던 것 같았다.
다섯째, 자소서 컨설팅.
울 아들의 경우, 자소서 컨설팅도 온전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자소서 쓰기는 2학년 1학기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자소서 컨설팅이 포함된 면접 대비반을 수강하면서부터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던 것 같지만, 울 아들은 대면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자소서 작성에 들어가 총 3분의 선생님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이미 과학고 입학 당시 자소서를 스스로 써본 경험(제15화 참조)이 있어 그런지, 대학입시용 기본 자소서를 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로, 힘들었던 건 학교별 맞춤 자소서를 쓰는 일이었다.
과학고 아이들은 보통 기본 6개와 이스트(KAIST, GIST, UNIST, DGIST) 대학까지 해서, 최대 10개까지 수시 원서를 작성하는데, 각 학교별로 추구하는 인재상도 다르고, 원하는 특성도 다 달라서 자소서 항목들이 비슷한 듯 아닌 듯했다. 기본 자소서를 작성해서, Ctrl+C, Ctrl+V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학교별로 자소서를 재 작성해야 하는 문제들이 발생했었다.
아이의 자소서를 컨설팅해 주신 분은 담임 선생님, 국어 선생님, 진로진학 상담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들께 정말 여러 번 찾아가 검토를 부탁드렸음에도 모두 매번 흔쾌히 봐주셨다고 했다. 물론, 각 선생님별로 조언해 주시는 부분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아이는 그 조언들을 최대한 조합해 본인만의 자소서를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자소서 컨설팅은 첨삭이 아니라, 자소서의 방향, 내용, 문장 구조 등을 체크해 주시는 것이었는데, 첨삭을 지양하신 이유는 매년 여러 아이들의 자소서를 첨삭해주다 보니, 선생님 각자의 문체가 유사도 검증에서 자꾸 걸리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자소서는 결국 본인이 써야 하는 것이라서 선생님들의 그런 컨설팅만으로도 아이는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여섯째, 학부모 상담.
담임 선생님과의 진학 상담을 하고 나니, 정말 입시생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부모 상담은 개별적으로 선생님과 1:1로 진행되었는데, 약 1시간 정도 상담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미리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의 성적 분포, 경쟁하는 친구들과의 성적 비교, 아이가 희망하는 대학과 작년/재작년 합격선 등 정말 다양한 설명을 해주셨고, 마지막에는 아이의 특성을 반영한 면접대비 팁도 주셔서 정말 유용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면접 컨설팅.
대학별로 입시 면접이 달라 학교 밖 면접 컨설팅을 받으러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오롯이 학교에서 준비해 준 면접 컨설팅만 받았다. 학교에서는 2,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합동하여 아이들 면접을 준비시켜 주셨는데, 대학별 다른 면접 방식도 충분히 검토한 면접 컨설팅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들의 방식을 신뢰했었다. 실제로도 선생님들의 면접 컨설팅은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그 당시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면접이 최초로 시행되었었는데, 그 변화를 빨리 캐치해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고 면접을 치를 수 있게 비대면 면접 시스템을 마련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었다.
또한, 그 당시 2학년 우리 반의 경우, 반 아이들 모두가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의 입시를 도왔는데, 선생님께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3학년 진급하는 아이들도 어차피 내년에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조졸, 조진/조입 친구들을 도우면서 예행연습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반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고, 졸업과 진학으로 인한 친구들 간의 미묘한 갈등도 최소화되었던 것 같다. 울 아들 말로는 친구들이 어찌나 꼼꼼하게 봐주는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서울까지 가서 면접 컨설팅을 받고 오고, 학원에서 자소서 컨설팅을 받을 때, 우리는 학교에서 준비해 주신 입시 컨설팅에 의지해 입시를 준비했다.
울 아들의 경우, 가고 싶은 학교는 카이스트와 포스텍(그중에서도 포스텍이었던 것 같다. 해당 에피소드는 아래 에필로그 참조), 딱 두 군데뿐이었지만 그렇다고 두 군데만 원서를 넣기에는 주어진 기회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친구들처럼 열 군데 학교를 선택해 보려는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가고 싶은 학과까지 정해서 10개의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어려웠고, 각 학교별로 써야 하는 자소서 10개도 너무 부담이 되었다. 결국 아이가 쓴 학교는 카이스트와 포스텍 포함, 총 여섯 군데였다.
대학 수시 원서 접수는 전적으로 아이 혼자 해냈다.
아이가 기숙사에 있다 보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선생님들께서 가이드를 잘해주셔서 아이 스스로 원서 접수를 하고 수험표까지 제대로 배부받는 것 같았다.
원서 접수 후엔, 면접을 보러 다녀야 했는데, 아마 코로나 시기만 아니었다면 힘들었겠지만, 그 해 코로나 덕분에(?) 아이가 실제로 면접을 본 곳은 카이스트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곳들은 면접 없이 서류 평가만 했거나, 비대면 면접, 혹은 면접 영상 업로드를 하는 형식으로 입시가 치러졌다.
이른 아침 잡힌 카이스트 면접을 보기 위해, 하루 전날 대전에 가서 카이스트 근처에서 숙박을 했고, 그다음 날 아이는 오전 내내 면접을 보고 나왔다.
면접은 생각보다 크게 어렵지 않았는지, 주어진 면접 시간보다 훨씬 빨리 문제들을 해결한 것 같았다. 특히, 선배들 조언대로 과학 분야 선택 시험을 진로와 상관없이 제일 자신 있는 과목으로 했던 게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의 2학년 2학기는 대학 진학을 위해 올인할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를 진학 실패나 자체 포기 등의 변수 때문에 다들 내신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2학년 2학기 시험은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이 3학년 진학하는 친구들을 위해 성적을 깔아준다는 전통(?)이 있다고 하던데, 실제로 겪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워낙 내신 공부할 시간이 없다 보니, 깔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깔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두 며칠만이라도 바짝 신경 써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는 것 같았다.
입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졸, 조진/조입 아이들은 학교에서 열외 되어 집에서 나머지 수업시수를 맞춰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졸업식까지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이의 졸업식은 코로나로 인해 3번에 걸쳐 치러졌다.
첫 번째는 졸업 당사자들(3학년 선배들과 2학년 조졸, 조진/조입생들)만 가서 선생님들과 졸업식을 했다.
두 번째는 그다음 날 졸업가운을 빌려 입고, 학부모님들과 학교에서 졸업 사진 촬영하는 것이 허가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졸업식은 1년 뒤, 동기들이 졸업사진을 찍을 때,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도 합류해서 졸업 사진을 찍었고, 동기들이 졸업할 때 다시 모여 졸업 축하를 해주며 또 한 번의 졸업식을 했다.
"축하해, 아들. 오늘 카이스트 등록금 납부하면 되는 거지?"
최초 합격한 여러 학교들의 합격 안내문을 보면서 기특해하던 울 신랑이 카이스트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아이에게 물었는데,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포스텍과 카이스트, 둘 중에서 어딜 갈까 고민하는 중이에요."
"뭐?"
아이 아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잠시 후 "그럼, 내일 결정해서 알려줄래?"라고 했다.
아이가 방에 들어간 후, 아이 아빠는 또 나에게 와서 투덜투덜 대기 시작했다(제19화 참조).
"포스텍, 좋은 학교지. 근데, 카이스트에 합격했잖아. 그럼 카이스트에 가야지. 카이스트랑 포스텍을 놓고 고민 중이라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나한테 그러지 말고, 직접 가서 말하라니까?"
아, 오해는 마시길. 포스텍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아빠가 생각하는 아이의 미래 전공,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겪은 사회의 인지도 측면에서 카이스트가 포스텍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아이는 그날 밤, 학교 선생님, 선배들, 그리고 "동계 이공계 대탐험(제26화 에필로그 참조)"에서 친해졌던 친구들과 한참을 대화하는 것 같더니 다음날 이렇게 말했다.
"카이스트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아이는 바뀐 나이(구. 만 나이)로 17세가 되던 해, 대학생이지만 뭘 해도 불안한 미성년자 카이스트생이 되었다.
아이가 카이스트에 합격하고 난 후, 나는 그 해 마지막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해서, 학교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울 아들의 대학 입시는 아이 자체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학교의 도움,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장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면서 "아이가 사교육 없이, 오로지 선생님들의 교육만으로 카이스트에 입학한 거라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학교 교육만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만족해하셨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일반화할 수 없는 OO이의 노력 때문이었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시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당시 대구일과학고등학교의 교육에 매우 만족했고,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