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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ug 07. 2020

나이가 든다는 건(6)-포기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한때 무한도전의 광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봤던 편을 또 보는 것은 당연하고 집에 있을 때면 보던 안 보던 늘 무한도전 재방송을 틀어놓곤 했었다. 언제나 나의 보금자리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늘 재기 발랄하고 엉뚱하고 때론 바보 같은 무한도전 멤버들이지만 아주 가끔씩은 진지하게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도 그려지곤 했었다. 그중 영원한 MC 유, 유재석이 노홍철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홍철아,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포기하는 것 같아”.


무한도전을 즐겨보던 시절은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무려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취직을 하게 되어 큰 걱정 없이 하루하루 회사를 열심히 다니던 시절이었고, 나이도 20대 후반이었던 터라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는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패기 왕성한데, 나이가 들면 저런 생각도 들 수 있겠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최근에 즐겨 찾는 사이트에서 유재석이 노홍철에게 한 말을 우연찮게 다시 짤로 보게 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예전보다 더욱더 많이 경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즐겨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대신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포기한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레짐작 겁을 먹어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쓰는 말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 될 것 같은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성공했다라는 성취감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속으로만 고이 간직한 채 포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포기란 김치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라고 애써 위로해봤자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드리는 순간 앞에서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너무 피곤해서 등등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일은 늘 있기 마련이다. 정대만이 중학교 시절 농구시합에서 뒤처지고 있는 중 몸을 부딪혀 쓰러졌을 때 안 감독님은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결국 역전승을 이루어낸 것에 정대만 본인은 물론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받았지만, 원본 짤보다 “포기하면 편해” 짤이 인터넷상에서 더욱더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이렇게 포기하는 일도 과거보다 조금씩 많아진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것인지, 많아진다고 느껴지는 것일 뿐인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얘기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물론 때로는 포기하는 일이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일 다니던 헬스장을 가지 않는다라던가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일 등 너무나 어렵고 힘들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포기한다는 것이 자기 방어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다.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이제 그런 일은 나는 하기 힘들어라고 1초의 고민도 없이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원래 하기 싫어하던 일, 하지 않던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포기하는 일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늘 하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함에 따라 늦잠을 자는 일을 포기해야 하고, 밤늦게까지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일도 포기하게 되었다. 가정을 이루면서 때로는 내가 좋아하던 인스턴트식품 먹는 일을 포기해야 될 때도 생겼고, 아이가 생기면서 퇴근 후 집에서의 편안한 휴식시간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회사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하게 됨에 따라 조건이 더 좋은 직장을 알아보는 일도 포기하게 되었고, 프라모델과 게임을 즐겨하던 취미생활도 조금씩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인 것 같다. 즐겨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측면과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마음을 더 이상 먹지 않게 된다라는 측면 말이다. 사실 즐겨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됨에서 오는 포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게 됨에서 오는 포기가 더 가슴 아프다. 즐겨하던 일은 최소한 해보기는 한 일이다. TV를 보는 일과 게임을 하는 일은 이미 많이 해봤다. 즐겁다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았던 일이고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해봐야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고, 해봐야 성공인지 실패 인지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못함으로써, 해보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고 정주영 회장이 그랬다. “해봤어?”라고. 실패할 것 같다라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실패했다라는 사실보다 실패조차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이 더욱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익숙한 환경을 재빨리 만드는 데서 편안함을 느끼고, 하루의 일과를 매뉴얼화하는 데서 안도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사실 어렸을 때에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든다고, 여유가 없다고 더욱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게 되고, 하고 싶은 일을 지레짐작 포기하는 경우가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하고 싶던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글 쓰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글 쓰는 일이 싫지 않게 느껴졌고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만의 글을 써봐야지 생각을 하게 되었으나,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게 되었다. 마흔이 되고서야 글을 써보게 되었다. 더 나이가 들면 포기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시작이 쉽지는 않았고, 꾸준히 쓰는 일도 쉽지 않지만 한번 해보고 있다. 아직 성공인지 실패인지도 모르겠고, 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해보고 있다. 지레짐작 포기는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적은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한 것에 대해 자극을 받았다는 친구도 생겨났다. 그래 해보자. 길지 않은 인생 하고 싶던 일 못하고 생을 마감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지 말고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해보자. 포기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과 상실감보다는 실패하더라도 해보았다는 후련함이 더 크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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