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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16. 2020

나이가 든다는 건(7) - 단점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

1. 거울을 보다가 어느샌가 삐쭉 나와 버린 흰머리를 보게 되었다. 새치인가? 흰머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대수롭지 않게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선 금세 잊어버렸던 흰머리가 어느 순간 또 보이기 시작해 나를 거슬리게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또 하나둘씩 자꾸만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번 두 번 뽑아내다가 문득 이러다가 내 머리를 다 뽑아야 하는 건 아닌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차라리 일시에 전체 머리가 하얘졌으면 덜 어색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이프는 나이가 들면서 흰머리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인정하기가 싫었다. 나는 아직 젊고 나는 아직 흰머리가 날 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고 발버둥 치고 싶었다.


2. 페르소나라는 게임을 굉장히 재미있게 한 기억이 있다. (“페르소나”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고 네이버 지식백과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고등학생들이 추리하고 범인을 쫓아가는 과정을 담은 게임이었는데, 역시 이런 주인공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게임류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각성”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페르소나 게임에서의 각성은 우연히 힘을 얻거나 수련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늘 괴롭히던, 늘 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약점을 누군가가 지적하고 그 부분을 후벼 파는 과정 중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그 약점도 온전히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강해지는 것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당당히 벗어던지면서 성장하고 각성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할  때도 안타까울 수 있지만 자신의 단점 때문에 위축되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할 때 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자존심이 세거나 자존감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단점이란 숨겨야 할 부분이고 다른 사람들의 지적 거리일 뿐이다. 반면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단점이란 자신을 한없이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장점을 잘 활용하고 홍보하는 것보다 단점을 대하고 다루는 일이 훨씬 어렵다. 어렸을 때는 단점이 단점인 지 모르고 철없이 살다가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실패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낫다. 다른 사람들의 지적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분노 혹은 깊은 수렁 속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나의 단점은 무엇일까. ‘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겠지’라고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되뇌이게 된다. 외모적인 부분에서 단점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으니 외모를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믿기 어렵지만 어렸을 때는 너무 말랐던 게 단점이자 고민이었던 것 같다. 앙상한 팔이 드러나게 되어 반팔을 입는 것이 두려웠다. 그 와중에 더위도 많이 타서 땀도 많이 흘렸다. 지금은 어떤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살이 너무 쪄서 고민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땀도 많고 여전히 더위도 많이 타며 이제는 나이가 든다는 증거로 흰머리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뭐 외모적인 부분에서의 단점은 셀 수도 없다. 성격은 어떤가.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매사에 모범을 보이는 성격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고 호기심을 잘 참는 성격이다. 어느 하나 단점이라고 지적받지 않을 만한 구석이 없다. 때로는 내 성격 자체가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성격으로써의 단점의 집합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자 그렇다면, 어떡할 것인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장점도 단점도 아닌 상태, 무난한 상태로 바꿔 보려는 노력을 하던가 혹은 내 단점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숨겨 보던가 이지선다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외모? 외모를 고치는 건 쉽지 않다. 성형외과에 갈 생각은 1도 없다. 성격? 외모를 고치는 것보다 더 힘들다. 성격을 고치려면 정신과에 가야 되려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살아온 세월이 있고 겪어온 시간들이 있기에 성격 개조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쉽지가 않다. 누가 그러더라. 30년간 살아온 사람이 성격을 바꾸려면 30년+1일이 필요하다고. 단점인 성격을 고치느라 평생을 허비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치려 할수록, 숨기려 할수록 자괴감만 더 든다는 사실이다. 고쳐보려는 노력 자체가, 숨기려는 노력 자체가 단점을 더욱 크게 만들고 단점을 더욱더 단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기만 하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단점이 무엇인지 더욱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면서 미처 몰랐던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애써 모른척하고 애써 피하려 했던 내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나 스스로 말하지 못했고, 인정하기도 싫었던 내 단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리라. 쉽지 않지만 분명히 가치는 있는 일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아직 많을 것이기에 남은 인생을 위해 단점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단점이 단점임을 인정하고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건 나의 단점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고 피하기만 한다면 단점은 나를 옥죄는 올가미로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속상하고 자존심 조금 상하지만 단점 또한 나의 모습이고 나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혹은 고치지 못하더라도, 변화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기회는 충분히 될 수 있다. 못난 나이지만 이제껏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고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왔음에 위로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나의 단점에 대해 한번 되짚어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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