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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y 28. 2021

나이가 든다는 건(9) - 어른의 삶을 이해하게된다는것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까? 나이가 든 것이라면 어른에 해당하는 나이는 몇 살인 것일까? 성년이 되는 20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30살?(이립)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40살?(불혹) 간혹 나이는 많지만 철없이 행동하는 사람-나처럼-도 있고,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말과 행동이 점잖은 사람도 있는 걸 봐서 “어른”이라는 건 꼭 나이로 판단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트로트도 크게 히트하지 않았는가.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따봉을 누르고 있는 걸 봐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365일이 몇 번 지났는지 나타내 주는 지표인 나이는 일단 “어른”의 기준이 아닌 걸로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지표가 아니라면, 화학적인 지표로 “어른”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신체의 내부에서 나타나는 호르몬 변화라던가 하는 지표 말이다. 학창 시절 2차 성징을 통해서 신체는 조금 더 성숙해지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불안정한 심리상태의 터널을 지나던가 하는 변화의 과정을 지나면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는 이러한 변화가 초등학교 때 시작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 학창 시절 이러한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사춘기를 겪었다고 해서 중학생, 고등학생을 “어른”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학생이고 여전히 “어른”이 아닌 “아이”의 범주에 학생들을 포함하곤 한다. 사춘기와 더불어 살면서 겪는 가장 큰 호르몬의 변화시기가 또 있다. 갱년기 말이다. 그렇다면 갱년기가 지나면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이건 좀 이상하다. 갱년기는 보통 5~60대 때 겪는 변화이며, 갱년기를 겪기 전에도 이미 어른이었던 것 같고, 갱년 기 후에도 당연히 어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신체 호르몬의 변화도 “어른”이라는 기준선을 적용하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곧 부활을 앞두고 있어 사람들이 크게 기대하고 있는 “싸이월드”를 통해 “어른”의 기준에 대해 본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기준은 바로 아기공룡 둘리였다. 장난꾸러기, 천방지축 둘리가 어느 순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한 집에 사는 “고길동”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어른”이 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늘 화만 내고 늘 인상만 쓰며 늘 소리만 지르는 못된 어른으로만 생각되던 고길동 아저씨의 삶이, 어쩌면 너무나 고단하고 너무나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착하고 너무나도 순수한 둘리에게 고길동 아저씨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귀책사유는 과연 고길동 아저씨에게만 있는 것인가. 둘리가 가만있는데 고길동 아저씨가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늘 무언가 때려 부수고 망가뜨리고 난장판을 만드는 둘리가 어쩌면 너무한 건 아닌가. 저렇게 개판을 치는데도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 고길동 아저씨는 사실상 엄청난 성인군자였으며, 겉으로는 화를 내지만 마음속으로는 둘리를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츤데레가 아니였을까 등등의 생각은 어릴 때는 하지 못했던 생각이다. “어른”이란 이런 것일까? “어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때는 그렇게 재미없었던 뉴스를 보는 일이 어느 순간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크게 필요하지도 않고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데 어른들은 뉴스를 열심히 보고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던 내가 도움도 안 되고 재미도 없었던 뉴스에 어느 순간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나도 모르게 검색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운전을 하고 출근을 하는 길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라디오에서 나오는 어제자 간추린 뉴스를 자연스럽게 듣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0.1도 관심이 없었던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어른”이란 이런 것일까? “어른들”은 이러한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과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이와 어른의 상관관계는 굉장히 높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나이가 든다는 것 그 자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이가 든다는 건 어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행동이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언제인지도 모를 순간부터 나도 어른들이 하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고 여전히 옹졸한 어린아이와 같은 나이지만, 어른들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장 오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마냥 철없고 마냥 개구쟁이일 수만은 없다.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어른스럽게 말해야 할 때가 많다. 특히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어른”의 위치에 가까워짐에 따라, 능숙하고 관대하고 성실한 “어른”의 모습을 취해야 할 때가 많다. 때로는 부담이 될 때도 있다. 때로는 나를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를 “어른”으로 대하려는 후배들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부담은 더더욱 커지는 것 같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빠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어른으로써 아이를 잘 보살피고 잘 키워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나도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아기를 대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친구 같은 선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는 친구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성립할 수 있는 말이다. 친구더러 친구같다고 하지는 않는다. 친구가 아니라 선배이고 아빠이고 어른이기 때문에 친구”같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의 삶을 이해함과 동시에, 여전히 순수한 아이와 같은 마음도 가지고 싶다고 하면 너무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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