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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ul 15. 2021

나이가 든다는 건(10) - 일상에 욕심이 없어진다는것

1.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회사 구내식당이 없는터라 회사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그때 팀장님이 하신 말씀. “오늘은 또 뭘로 점심을 때울까?”. 평소 먹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점심을 때운다니? 점심을 먹는 일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가? 즐기는 일이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인가? 하긴 싫지만 하긴 해야 하니 대충 하고 넘기는 건가? 그래서 “때운다”라고 얘기하는 것일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팀장이었다면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점심을 먹어볼까?”라고 했을 것 같다.


2. 어려서부터 잠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많았다. 체력이 약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최소 8시간은 밤에 잠을 자줘야 충분히 잔 것 같고 몸이 가뿐했다. 그렇기에 밤을 새우거나 하는 따위의 짓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아이가 생기면서 잠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새벽에 계속 깨는 아이 덕분에 밤잠을 예전만큼 충분히 자지 못했고, 반강제적으로 자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다. 지나고 나니 자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에도 잤고 오늘 밤에도 잘 것이며, 심지어 내일도 밤에는 잠을 잘 것이다. 예전처럼 잠을 자는 일에 그렇게 큰 의미와 욕심을 둬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덜 자도 생각보다 살만하네? 조금 덜 자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일은 중요하다. 사람이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중요하다고 해서 그 일을 대하는 자세가 늘 신중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숨 쉬는 일도 중요하다. 그런데 숨 쉬는 일을 정성껏, 성의껏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밥을 먹는 일은 중요하지만 “때워버리는 일”로 치부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해왔고 또 앞으로도 많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40년 동안 밥을 먹어왔으니, 밥을 먹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냥 때가 되면 먹는 거고, 때가 되면 스쳐 지나가는 일일 뿐이다. 특별한 식사 약속이나 중요한 사람과의 회의를 겸한 만찬이 아닌 이상 밥을 먹는 일은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상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때까지 많이 해봤었던 일이기 때문에 대충대충 때워버리면 되는 것일까. 일상적인 일에는 더 이상 성의를 보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일상에 대한 욕심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일상적인 일-밥을 먹고, 잠을 자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고 등등-에 의미를 두는 빈도수도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삶이 지루해지고, 나태해지는 것 같다. 살아가는 게 재미도 없어진다. 어렸을 때 음식을 먹는 일을 때운다라고 생각한 적은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먹고 싶은 반찬을 먹고 싶어서 반찬투정을 하기도 하고, 피자나 치킨을 먹고 싶다고 떼를 쓴 적도 많았다. 많이 자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를  안 가는 주말이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기였을 때는 심지어  숨 쉬는 일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무료한 일상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자는 말이 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라고 하는 말 말이다. 오늘 먹는 저녁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대충 때우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오늘 출근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발을 질질 끌며 출근할 것인가. 오늘 자는 잠이 마지막 잠이라면-아마 잠이 잘 안 오긴 할 것이다.-가장 좋아하는 베개를 베고, 가장 좋아하는 이불을 덮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자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해 보는 일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일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이 해봤기 때문임을 생각해본다면, 마지막인 것처럼이 아니라 처음인 것처럼 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밥을 먹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메뉴는 아직 수두룩하다. 잠은 매일 잤지만 침대가 있는 안방이 아니라 거실에서 자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출근은 매일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 본 적은 없을 수도 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새롭게, 처음으로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이 있다.


일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 일상적인 삶이 당연하다라고 느껴서일 것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는 일이 당연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는 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큰 의미 없이 밥을 먹고 퇴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다쳐서 입원을 하게 되거나, 퇴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출근을 해서 점심때 밥을 먹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일상적이다라는 것은 지나고 났을 때 느끼는 감정일 뿐이고, 당연한 일이 아니라 당면한 일이었다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수다를 떨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일이 더 이상 당연한 일도, 일상적인 일도 아니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던 것처럼, 지나고 나서야 일상이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일상에 대해 좀 더 욕심을 가지고, 좀 더 성의를 표시하고 싶다. 밥을 먹는 일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먹는지에 집중해보고 싶다. 때우는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 되도록, 스치는 일이 아니라 마주하는 일이 되도록 말이다. 좀 더 새롭게도 해보고, 좀 더 다양하게도 해보면서 일상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보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지지 않도록 말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큰 욕심 말고, 오늘 주어진 일상을 조금 바꿔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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