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May 20. 2020

나이가 든다는 건(5)-삶과 죽음이 와 닿는다는 것

1. 여느 때와 같이 힘든 출근길을 뚫고 회사에 앉아 일을 하는 도중, 비보를 듣게 되었다. 선배 한 명이 출근을 준비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갑자기 왜 그런 것일까 두려운 마음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며칠이 지났고, 결국 그 선배는 영영 눈을 뜨지 못하게 되었다. “황망하다”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젊고 유능한 선배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을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2.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기 위해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있던 도중 와이프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게 되었다. 양수가 터졌다는 것이다. 아직 예정일이 10일 가까이 남은 터라 별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하루의 삶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깜짝 놀라 바로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그 날 오후에 나와 와이프를 닮은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놀랍기도 하고, 고생한 와이프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지게 되고, 또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된다. 산다는 것에 대해,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사실 어릴 때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이란 것은 그냥 지금 상태에서 육신이 없어지는 상태, 영화나 만화에서 보듯이 몸은 없지만 영혼이 자유롭게 이 세상을 떠다니는 상태로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춘기 때쯤, “죽었다”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한 번 해 보았다. 어제 새벽 3시에 나는 어떠한 상태였는가.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상태였는가. 아니면 내 영혼이 깨어 있어 내가 잠에 들어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였는가. 대답은 당연히 둘 다 “노”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도 없고,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라는 사실조차 자각 못 하는 상태, 그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사후세계를 믿고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천국에 갈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두려움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어느덧 나이 40을 넘기고, 주위에서 하나둘씩 부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안타까운 생명이 또 갔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 동떨어진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태어났으면 언젠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할지라도, 비록 우리가 “호상”이라고 억지로 위로하는 죽음도 있다 할지라도 죽었다는 사실은 슬프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반면 친구들에게서, 선후배들에게서 너무나 기쁘고 반가운 소식들도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너무나도 귀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들이 그것들이다. 아니,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빛을 본지, 아니 아직 시각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하니 세상에서 숨을 쉰 지 겨우 14일밖에 안 되는 작은 아기를 볼 때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까.


결혼을 한 후 가끔씩은 다투기도 했지만 나를 너무나도 잘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반자인 와이프와 함께 살면서 간절하게 아이를 가지자라는 생각을 사실 하지는 않았었다. 둘이서도 너무나도 행복하기에, 어떤 식이든 이 행복에 변화가 생기는 일을 하는 것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전혀 실망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었다. 하지만 가끔씩 드는 두려운 생각들이 있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한날한시에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장난처럼 얘기하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혼자 사는 삶은 너무 슬플 것 같기 때문에 서로 내가 먼저 죽겠노라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혹시나 만약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때 와이프를 위해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의 외로움을 떨쳐낼 수도 있거니와, 나를 닮은 사람을 보면서 나를 추억하고, 나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를 가지자라고 계획을 하고 큰 어려움 없이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일들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들도 앞으로 많이 있을 것이겠지만, 그에 더해 기쁜 소식도 많이 들려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기쁜 소식은 지금 나의 일이 되었고, 새로운 삶과 생명에 대해 놀라고 기뻐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잠시 잠깐의 감상에 젖게 된다.



이전 04화 나이가 든다는 건(4)-많이 느낀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