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Mar 15. 2020

나이가 든다는 건(3)-많이 알아간다는 것

어디선가 봤던 건데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경험.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일이 잦아진다는 점 이리라.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깜빡깜빡하게 되고 건망증이 심해져서 고민이라는 후배에게 말해주었다. “건망증이 심해지는 게 아니라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기억해야 할 일과 알아야 할 일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학생일 때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이 더 많고, 혼자 살 때보다 가정을 이뤘을 때 기억해야 할 일이 더욱더 많다. 또한 챙겨야 할 것들도 더 많아지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은 더더욱 많아지게 마련이며,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내 생활의 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내 상식의 범위도 넓혀가야 한다. 너무 적게 아는 것도 물론 문제이지만, 너무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들이 생겨버리고 만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 가장 큰 원인의 하나가 바로 “나이가 들어서”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을 문과의 길로만 걷고 있는 내가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의 활동이 과거보다 떨어지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또한 자꾸 잊어버리게 되고, 기억을 못 하게 되는 일을 노화의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10명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100명의 이름을 아는 것이 더 어려운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10가지 일을 해야 할 때보다 20가지 일을 해야 할 때 더욱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 아니겠는가.


내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장려해야 할 일이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최대한 다양한 경험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가고 더 많이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 중에서 때로는 잊어버릴 때도 생기고, 때로는 놓치는 일이 생길 텐데, 그렇더라도 너무 슬퍼하고 싶지가 않다. 잊어버리면 찾아보면 되고, 놓치면 늦게라도 하면 된다. 한 번의 실수가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나는 일은 사실은 굉장히 드물다. 실수하면 바로잡으면 된다.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용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쩌다가, 가끔씩, 때로는 잊어버릴 때도 생기고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내가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다. 그렇더라도 다음에는 잊어버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이전 02화 나이가 든다는 건(2)-의연해진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