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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29. 2020

나이가 든다는 건(1)-익숙해진다는 것

어느 때인가부터, 어느 순간부터 내일이 휴일이라는 사실에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또 언제인가부터 새로운 옷을 사도, 새로운 신발을 사도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왜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 나이로 40살, 만 38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이게 바로 나이가 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운 일보다는 해봤던 일들이 더 많고, 먹어보지 않은 것보다는 먹어본 음식이 더 많다.  물론 앞으로 일어날 일들 중에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는 일 자체가 이제는 감흥이 없다.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고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일” 그 자체는 이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가보지 못했던 국가에 해외여행을 가볼 수는 있겠으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라는 그 사실 자체는 이제 새롭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한마디로 “익숙해져 버렸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사실 좀 헷갈린다. 무슨 일을 마주하든지 긴장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면에서는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요한 자리에서 두근거려서 일을 그르치는 일이 줄어들었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느라 밑 보이는 일도 줄어들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마치 능숙한 것처럼, 익숙한 것처럼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가 있어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거금을 들여서 새로운 물건을 샀는데도, 난생처음 해보는 일임에도 가슴의 두근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내가 잘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이고 내가 하던 대로, 편한 대로 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느껴질 때면 조금은 속상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모습보다는 나을 수 있다.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에 두근거려서 밤잠을 설쳐 여행 내내 피곤한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익숙하다라는 말이 서투르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설레인다의 반대말로 느껴져서일까. 익숙해진다라는 말이 감흥이 없다라는 말의 동의어로 느껴져서일까. 익숙해진다라는 말이 순수하다의 반대말로 느껴져서일까.


앞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평소 생각만 하고 있던 일들을 실행해보기로 했다. 하지 못해 봤던 일들을 스스로 찾아서 해보기로 했다.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일들을 해보면서 감흥을 느껴볼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만의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남의 얘기를 쓰는 건 이제 익숙하다. 내 얘기를 하는 일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데서 설레임을 찾고, 익숙해졌을 때 능숙해짐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의미 있고 설렘 있고 익숙하고 능숙하게 나이를 먹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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