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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Nov 27. 2020

여덟 살, 똥수

누구나 플라타너스를 키운다

https://brunch.co.kr/@desunny/89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그녀가 책을 계산대에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반달 같은 그녀의 눈이 작아졌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 끝에 진한 보조개 꽃이 피었다. 갈색 긴 머리카락이 버드 나뭇잎처럼 어깨를 덮으며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었다


"계산 안 해주세요?"


멍하게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언제 고백해야 할지, 어쩔게 말하지 생각하면서 봉투에 책을 차곡차곡 넣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매끄러운 내 손끝 살짝 스쳤다. 매끄럽고 따뜻한 느낌이 전달되는 순간, 그 순간 입속에서 되뇌며 연습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 더듬거리며 말하는 나. 그녀 뒤에 줄을 선 사람이 어깨너머로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발간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 발을 돌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뜨거운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녀 뒤에 있던 남자 손님이 책을 내밀었다.


"계산 해주이소." 남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네.."


기분이 나빴다. 도대체 왜 웃는 것인지? 내가 말하는 걸 들은 것인지, 아니면 눈치를 챈 것인지?


그날 나는 대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나의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대갈의 목소리 듣고 싶었다.


"응, 똥수. 잘 있나?"

"어, 잘았다. 니는 우예지냈노? 별일 없제?"

"하믄, 잘 있지. 몬 있을께 뭐 있나. 완전 좋다."

"..."


대갈의 목소리에서 행복함이 밀려왔다. 젠장. 나의 축 처진 목소리와는 다른 즐거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미자 누나와 딸, 민서 그리고 배 속에 아기는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대갈에게 포장마차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를 돌봐준 그녀, 그리고 서점에서 다시 만난 그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싶었다. 대갈은 그래도 나보다 나을 테니까.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구멍 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말을 삼키고, 그저 잘 있으라는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쓸쓸했다. 외로웠다. 마음 저 밑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지. 그녀가 보고 싶었다.


8월의 여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녀에게 고백을 한 후  한 달이 지났다.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며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올라가는 어느 날 오후였다. 그녀가 서점 문을 열고 하얗게 들어왔다. 길었던 갈색 머리카락은 어깨에 겨우 닿아 있었다. 매끈한 목선이 드러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오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여느 때처럼 소설책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색 스니커즈에 아이보리 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가냘펐다. 


몇몇 손님의 책을 계산하고 포장을 하면서도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는 왜 잘랐을까,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내가 한 말은,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른 손님들은 아랑없이 내 시선은 오롯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의 하얀색 스니커즈와 아이보리 원피스, 갈색의 짧은 머리카락과 그 아래 매끈한 목에서 시선을 돌리지 했다. 어느 순간, 계산대에서 부터 그녀가 있는 소설 코너까지의 공간이 확 당겨졌다. 그녀의 숨소리, 향기,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 줄기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일요일에 뭐해요?" 책을 계산대에 올린 그녀가 물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하얗게 웃었다.


8월, 한 여름의 동성로는 숨만 쉬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우리는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일극장 앞에는 영화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팔짱을 끼거나 손을 포개어 잡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여자의 웃는 얼굴을 쓰다듬는 남자도 보였다. 부러웠다. 나도 그녀와 손을 잡고, 팔짱을 낄 수 있을까, 얼굴을 쓰다듬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녀가 반바지 차림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그녀의 보조개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는 한일 극장에서 줄리아 로버츠의 <아이 러브 트러블>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녀를 훔쳐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마치 꿈인 듯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동성로를 따라 걸었다. 오후 4시. 동성로의 좁은 뒷골목에 있는 분식집에서 우리는 쫄면에 떡볶이,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파르페를 한잔씩 마셨다. 약간은 어두침침한 카페에도 역시 젊은 남녀들이 서로 마주 보거나, 옆자리에 앉아 가벼운 터치를 하며 소곤 거리고 있었다.


"동수 선배, 나 좋아해요?" 파르페를 홀짝이던 그녀가 말했다.

"흡,..." 저돌적인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 그녀가 하얗게 웃었다.

"... 네,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자꾸 생각이 나가꼬..." 마음속의 말이 튀어나왔다.


희미한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엷게 퍼졌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얕게 떨리기 시작했다. 왜 눈동자가 떨리는 것인지. 나는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미안해요. 선배.. 나도 선배가 마음에 들어요. 아니, 좋아요. 그런데.."

"..."


그 떨림은 무엇이었을까. 아쉬움, 그래 그것은 아쉬움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희수였다. 93학번 희수. 내 이름은 동수. 그러니까, 우리는 '수' 자로 끝나는 연인이 될 수도 있었다. 맞다.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라고, '나를 좋아하지 말라'라고, '나는 곧 떠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도 못한 연인, 아니 남녀가 되었다. 그녀는 그해 9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S사의 미주 지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은 아빠를 따라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를 했다. 언제 돌아올 것인지 기약 없이 떠나버렸다. 미국 애틀랜타라는 곳으로.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하지 말고 갈 것이지. 나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나를 저주했다. 왜 자꾸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나는 것인지. 엄마도, 대갈도, 그리고 희수도...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왜 불행은 내 가까이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2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복학을 하지 않았다. 복학을 할 돈은 겨우 마련했지만 생활비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시들어 버려 학교라는 곳을 계속 다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곳에서 주린 배를 라면으로 채웠다. 하지만 곧, 외로움에 가슴 한켠에서 허기를 느꼈다. TV를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새벽까지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이 들면 엄마가, 대갈이, 희수가 찾아와서는 나를 두고 다시 떠나갔다. 매일 밤 그들은 나를 두고 저마다의 자리로 떠나가 버렸다.


그런 밤을 보낸 새벽이면, 나는 눈물을 흘렸다. 23살 남자의 눈물. 나는 어른이었지만, 여전히 8살 아이, 똥수였다. 하늘을 치솟던 한 여름의 플라타너스 길에서, 8살의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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