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열심히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던 주혜에게 지영은 ‘이게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왔구나’하는 얼굴로 주혜의 소중한 볼펜을 바라보며 말했다. 딸깍딸깍 10가지 색깔을 바꿔가며 다꾸에 열중하던 주혜가 지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왜?”
“이거... 왜 써?”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생각치도 못한 질문이었다. 그냥... 10가지 색깔이나 있어서? 아니면 미피가 귀여워서? 그것도 아니면 손에 익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지영이 한 마디 덧붙였다.
“너 설마 지훈이가 선물해준 거라서 쓰는 거야?”
맞다. 이건 고등학교 때부터 미피 펜만 쓰던 내게 전 똥차인 지훈이가 100일 선물로 줬던 펜이다.
‘네가 미피 펜을 좋아하니까,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로 하는 거잖아’
지금 그게 말이냐고 되묻고 싶은데, 푹 패인 보조개를 선보이며 눈웃음으로 사람 홀리는 사이 똥차는 주혜가 준비한 닥스 지갑을 쏙 가져갔다. 주혜는 아직도 속이 쓰리고 이가 갈렸다. 그 뒤로도 미피는 죄가 없다며 미피 펜을 고수했으나, 지영이 덕분에 생각난 쓰라린 기억에, 미피는 고민도 없이 쓰레기통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런 미피 10색...
교사실에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남는 공간으로 만들었나 싶을 만큼 작은 교사실에서 그나마 넓은 자리는 원감인 현숙이 차지했고, 교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PC와 프린터, 그리고 6년간 유치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두께의 파일들이 제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입사 동기인 현주 옆에 앉았다. 입사한 첫날 본 게 다였지만, 주혜 혼자 동질감을 바탕으로 내적 친밀감을 쌓았기 때문이다. 현주는 주혜보다 4살 위지만 경력은 7년이나 많은 베테랑 교사였다. 4살 차이지만 경력이 거의 2배나 차이나는 현주를 보며 주혜는 자신이 왜 ‘나이 많은 신입’인지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회에선 26살이 한창 신입으로 입사할 나이인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26살이면 경력자로 이직할 나이라는 새삼 불편한 진실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 신입 교사와 기존 교사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아 미묘하게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고, 발언권이 센 교사는 개원 멤버인 여은. 현지, 선화 뿐이었다.
“그래서 회의는 언제 한다는 거에요? 5분에 한다고 해서 환경 구성하다가 뛰쳐 내려왔건만”
여은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원장님 통화 중이시던데, 얘기가 길어지나보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다들 환경 구성은 다 되어가지? 올해 수업일수가 모자라서 수료식을 조금 늦게 잡았어. 그러니까 새학기 준비 부지런히 해야 해”
“아니, 새학기 준비 시간을 최소 3일은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새학기 준비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는 곳이 어딨어요.”
여은이 턱을 괴고, 시선은 다이어리에 둔 채 툴툴거렸다. 여은과 같은 개원 멤버인 선화도 옆에서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