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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블리 Jun 16. 2024

5화 - 실습생과 유치원

“선화쌤, 혹시 펀치 좀”

“아, 언니 지금 이름표 작업하는구나. 잠깐만”

유치원 입사 동기였던 하늘반 담임 교사인 선화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고, 뒤에 있는 서랍 맨 첫 번째 칸을 열었다. 미래가 나머지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자 수십개의 눈동자가들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부지런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며 밥을 먹는 아이, 싫어하는 반찬을 앞에 두고 시계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아이, 손가락으로 밥풀을 만지며 장난치는 아이 등 같은 식판, 다른 자세를 보며 미래는 각각 가정의 식사 시간을 눈앞에 그려졌다. 답답함에 못이기는 부모들은 직접 먹여줄 것이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갖고 있는 부모들은 이 야채가 네 몸의 뼈가 되고, 살이 되므로 섭취해야 하는 응당한 이유를 대며 설명할 것이다. 혹은 옛날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밥상머리에서 뭐하는 짓이야!’ 혹은 ‘셋 셀때동안 안 먹으면 진짜 정리한다?’라는 윽박과 협박, 그 사이를 오가든가. 하지만 여기는 유치원이니 그 사이를 오갈 수 없다.

“하늘반, 부지런히 먹으세요.”

단호한 목소리로 당부하는 선화가 한참을 서랍을 뒤적이다가 말했다.

“아! 찾았다. 여기!”

선화가 건네는 펀치를 받기 위해 팔을 뻗으려던 찰나,

‘띵동!’

벨이 울렸다. 선화 옆에 앉아있던 하늘반 부담임 교사인 초희가 익숙한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옆에 있던 물티슈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왜 아이들은 밥 먹을 때마다 신호가 오는 걸까요”

선화의 말에 고개를 돌려 펀치를 받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상쾌한 표정으로 나온 아이와 물티슈를 들고 나온 초희의 표정이 사뭇 달랐다. 초희는 다시 선화의 옆에 앉으며 숟가락을 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쌤, 저는 그냥 그만 먹을래요... 쟤 응가 보고 나니까 밥맛이 떨어졌어... 왜 물 안 내리고 부르는거야 정말...”

한탄을 쏟아내며 남아있는 밥과 국, 잔반을 잔반통에 버렸다. 미래는 익숙한 풍경인 듯 피식 웃으며 하늘반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주혜와 지연이 모여서 일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름표 다 뽑으셨어요?”

아직 서로 어색한 선배교사에 극존칭을 사용하는 주혜를 보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말 편하게 해요. 환경판 작업은 다 끝난 거 같은데, 게시판 먼저 붙이고 이름표 작업 하는 게 어떨까요?”

딱 봐도 갓 졸업한 신입처럼 보이는 어리버리 지연과 동년배 같지만 저경력 같은 주혜를 보고 경력을 어림짐작 했으리라.

“아, 하하 그럴까요?”

어색하게 웃으며 토끼, 기린, 사자, 다람쥐와 벚꽃나무, 구름, 꽃, 환영합니다 문구가 적힌 가랜드 등 주혜와 지연의 손재주가 잔뜩 묻은 작업물과 테이프를 들고 1층 복도 게시판으로 갔다. 가장 중앙에 붙일 그림부터 붙인 후 대칭을 맞춰가며 테이핑했다. 가랜드를 맨 위에 붙이면서 지연이 말했다.

“전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유치원 교사인지, 만들기 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교재, 교구를 엄청 많이 만들었어요. 가위질도 서툴던 제가 바느질, 글루건질, 종이접기 등 진짜 실력 많이 늘었죠.”

미래가 웃으며 덧붙였다.

“전 유치원 교육 실습 때, 도입, 전개, 마무리 교구를 다 만들어서 하라는 거에요. 정말 멘붕이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했던 모의수업은 스마트 유아들이었죠. 실제로 수업하는데 애들이 집중도 못하고, 집중을 못하니 당연히 대답도 못하고... 더군다나 충격이었던건, 제가 6시에 퇴근하는데, 교사실에 그 어떤 교사도 퇴근을 안 하고 있던 거에요. 그때 생각했죠. ‘아, 이 직업은 진짜 칼퇴는 불가능하구나’하고”

“그런데도, 유치원으로 취업한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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