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힌 급여명세서
여은이 원장의 조카이자 차기 원장 후보에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여은이 개국공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은은 ‘알잘딱깔센’ 그 자체였기에 원장도 여은의 눈치를 살필 정도다. 올해로 12년차 교사인 여은이 없는 유치원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붕어빵이었기에, 여은은 원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센 교사였다.
“집에 가면 말할 사람이 없는데요?”
여은은 말의 문맥도, 핵심도 짚지 못하는 저 어린 짐승을 보고 있자니, 하루 종일 교사실에서 함께 있는 원감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잠시 원감을 바라보던 여은은 다음주에 활동할 계획안을 작성하고, 미술 재료를 찾아보기 위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차곡차곡 포인트처럼 비호감을 꾸준히 적립하던 은욱은 최저 시급만 받는다던 그의 월급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원장실에 있는 파쇄기를 사용하려 들어갔던 여은은 그녀의 책상에 있던 은욱의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며 폭발했다. 최저 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그의 월급은 세후 160만원에서 180만원 사이어야 했는데,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는 경력 5년차 교사와 맞먹는 급액이었다. 누적된 분노 포인트로 이미 한계치였던 여은의 불만은 이를 계기로 완전히 폭발하였고, 은욱의 급여명세서를 카메라로 찍어 교사들 단톡방에 공유했다. 이미 수차례 보여준 은욱의 근무 태만으로 많은 불만이 쌓였던 교사들의 핸드폰은 밤새 울려댔고, 잠시 물 마시러 간 사이,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단톡방 옆에는 500+가 말의 무게감을 나타냈다. ‘잠시’는 끝없이 위로 올려야 하는 스크롤을 선물했으며, 사건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잘 먹는지, 편식 습관을 지도하고, 화장실 가는 유아의 뒤처리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식사 시간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자신들과 달리, 엄마와 오붓하게 점심 식사 후 카페에 커피 사러 가는 은욱이 받는 월급이 어떻게 교사와 같을 수 있냐며 분노를 선물했다.
그간의 유구한 역사를 알 리 없는 신입 교사였던 미래는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워낙 손이 빨라서요.”
“쌤은 작년에 꿈드림 유치원에서 몇세...”
또 눈치 없이 대화를 이어가려는 은욱의 말허리를 자르며 원감이 말했다.
“미래아, 코팅지는 왼쪽 서랍 맨 윗칸에 있으니까 미리 가져가고, 펀치는 하늘반에 있으니까 빌려달라고 하고 가져가라”
“하늘반이요? 네, 알겠습니다”
원아명을 다 입력한 미래는 인쇄 설정에서 고급 설정 탭을 누른 후, 인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분주히 손을 놀려 왼쪽 서랍 맨 윗칸에서 코팅지를 챙기고, 꾸벅 목례를 하고 교사실을 나섰다.
은욱의 표정이 구겨지며 입술 한쪽이 일그러졌지만, 그 누구도 그의 불편한 심기를 신경쓰지 않았다. 유구한 역사를 다 알지는 못해도, 그가 구사하는 언변과 칠칠맞게 흘리고 다니는 행동거지가 역사의 전신임을 알려주었기에, 눈치 빠른 미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미래는 고등학생 때 교무실에 들어가기 전처럼, 한창 점심식사 중인 하늘반 문을 똑똑 두드린 후 반쯤 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