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면 실례이려나?”
아, 올 것이 왔다. 주혜는 마저 남은 벚꽃을 환경판에 붙이며 말했다.
“저는 올해 26살이요.”
“혹시 경력은 어떻게 돼요?”
나이가 26살인만큼 경력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물어보는 것일텐데, 막상 말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원장님과 한 약속을 상기하며 떠듬떠듬 말했다.
“아... 졸업하고 임용 공부하면서 어린이집 누리 보조했었어요... 유치원은 처음 왔구요”
“아, 초임이네요?”
어설프게 초임인 듯, 초임 아닌, 초임 같은 주혜 자신을 둘러댔지만, 이 모든 걸 단박에 간파한 미래였다. 딱히 무시하는 투는 아니었기에 주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초임인데 지연은 부담임, 주혜는 담임이었다. 하지만 지연은 자신보다 3살이나 많은 주혜가 담임을 맡는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듯,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주혜와 지연이 색지로 만든 ‘환영합니다’ 인사말과 동물, 기차, 벚꽃나무, 풀, 언덕 등 다양하게 만든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환해진 복도 환경판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 때, 원장 원장이 다가왔다.
“만드느라 애 썼어요, 올해 만든 거는 내년에도 재활용해야 하니까, 3월 말에 정리할 때 잘 보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원장은 복도 환경판을 흘깃 보고는 짤막하게 용건을 말한 후, 교사실로 향했다. 주혜와 지연, 미래는 짧게 대답한 후 돌돌이 테이프와 가위, 종이 쪼가리 등을 모두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이름표 작업을 위해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알록달록 저마다 다른 도안의 이름표들을 보며 감탄보다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걸 다 언제 오리고, 다시 코팅하고 또 오리나 싶은 생각에 미간이 스멀스멀 친목 다짐을 할 때, 지연이 불현 듯 말했다.
“이거 자르기 전에 코팅하면 안되겠죠?”
“그러면 자른 후에 쉽게 벌어져서 번거롭더라도 자르고 코팅하고, 또 잘라야 할 거 같아요.”
차분하게 대답한 미래는 여유롭게 이름표가 가득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오리기 시작했다. 주혜도 미래 옆에 앉아서 가위질을 시작하자, 마지못해 주혜 옆에 앉은 지연도 가위를 들었다.
한참을 서로 말없이 가위질에 몰두하고 있을 때, 정적을 깨고 미래가 물었다.
“주혜쌤은 몇세 반 맡을 거라는 얘기 들었어요?”
“아, 저는 6세반 맡게될 거라고 면접 때 말씀해주셨는데, 미래 선생님은요?”
아직 경력이 없는데 선생님을 ‘쌤’이라 줄여서 말하기 조심스러워서 꼬박꼬박 ‘선생님’이란 칭호를 사용했다.
“아... 사실 저는 재작년에 여기 다녔다가 작년에 다시 돌아온 케이스에요.”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 유치원이 그렇게 좋은가하는 의구심과 동시에 좋은 곳에 잘 들어왔구나하는 안심을 느꼈다. 왜 퇴사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워서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칭하는 주혜가 물어볼 깜냥도,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이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여유는 단지 횟수를 채운 경력에서 우러난 짬바가 아닌 건 분명했다.
“정말요?
놀란 표정으로 말하는 지연에게 미래가 싱긋 웃었다.
”집 나간 자식, 다시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또 같은 이유로 나가게 될까봐 걱정이긴 해요. 지연 씨는 몇세반으로 들어가요?“
이에 지연은 금새 비 맞은 강아지마냥 축 쳐진 채 대답했다.
”저는 7세요... 사실 원장님이 원하는 연령 있냐고 물어보셨을 때, 5,6세면 다 좋다고 했었거든요. 근데 이미 5,6세는 기존에 있던 부담임 선생님들이 하기로 했다면서 7세 맡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이지 지연의 표정 변화가 롤러코스터의 각도 마냥 시시각각 변해서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괜찮을까하는 염려가 새록새록 생겼다. 미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지연을 바라보는 시선 끝엔 귀여움과 걱정이 함께 묻어났다.
”7세는 맡기 싫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