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블리 Jul 21. 2024

10화

”7세는 맡기 싫었어요?“

미래의 말에 잠시 주춤하던 지연이 입술을 옴싹달싹하다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7세는 5,6세에 비해 귀여움이 덜하다고나 할까요? 머리도 좀 커서 애교도 안 부리고, 기싸움도 해야하고... 초등연계도 해야 하고… 학교 선배님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무경력인 주혜는 눈만 껌벅껌벅 뜨며 과연 7세가 귀여움이 없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지연을 바라볼 때, 곰곰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말을 듣고 있던 헤은이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말을 고르고 골라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우선 전 5,6,7세 다 맡아본 경험이 있어요. 꼰대? 같을 수는 있겠지만, 내 경험상 지연쌤 말대로 7세는 귀여움이 덜한 것도 있고... 가끔 기 싸움을 해야 하는 정서적 피로가 다른 연령에 비해 높은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7세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가 넓다 보니까 수고로움이 덜한 연령이기도 하고, 기 싸움을 할 만큼 커서 티키타카가 잘 되죠. 그러다보니 수업이 풍요로워져서 아이들이 내가 준비한 수업에 잘 참여하고 배워가는 과정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뿌듯함도 있어요.

주혜는 그녀가 어린 초임 교사에게 조언을 해주고는 싶은데, 상대방의 기분을 잡채처럼 말아먹지 않기 위해 적당히 공감해주고, 조심스럽게 말을 정리하고 골라서 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전 애교 부리고, 선생님밖에 모르는 애들의 순수함이 좋아요.”

 짐짓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지연은 나름의 교사관(?)을 소신껏 이야기하자 주혜가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정리하듯 손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그럼 내년엔 5세 맡겠다고 교사 상담 때 어필해야겠네요. 이제 다 오렸으니까 코팅할까요?”

분위기 쇄신을 위해 한껏 명량한 척, 하이톤으로 우리가 클리어해야 할 다음 미션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런 나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미래는 주위에 떨어진 종이를 중앙으로 모으며 대답했다.

“그러네요. 상담 때 잘 얘기해보면 아마 5세반 주실 수도 있어요. 제가 코팅기 켜서 예열시키고 올게요”

미래는 도서관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짬바답게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코팅기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사실 지연도 미래가 서로의 생각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나쁘게 이야기한 것은 없다. 서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이야기한 것 뿐이고, 그들의 차이는 단지 계급에서 발생하는 위화감뿐이었다. 선배가 하는 말이 곧 법이며, 진리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갔다. 그래서 지연은 선배 교사인 미래의 생각에 수긍보다는 소신을 말한 것이고, 미래는 그런 지연의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얼핏 곁에서 보았을 때는.

 도서관에 남은 주혜와 지연은 종이 쪼가리들을 중앙으로 모으고, 버리고 또 모으고, 버리고를 통해 도서관 바닥에 종이 한 쪼가리도 남지 않게끔 깨끗하게 정리했다. 이것도 일종의 사회생활이랄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어가는 현상 중 하나로 보이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으나, 사회초년생 대부분이 그러리라 생각하며 도서관을 나섰다.

 코팅지에 이름표를 다닥다닥 넣었다. 너무 붙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하지만 최대한 코팅지를 아껴야 하는 일종의 자발적 도비 근성이 또 튀어나왔다. 대감집 쌀 한 톨이라도 허투루 쓰면 매질을 당할 거 같은 위기감이었을까. 이름표끼리 너무 붙으면 오릴 때 코팅이 벌어질 수 있으니, 너무 가깝지 않되 코팅지를 아낄 수 있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계 바늘이 오후 4시를 가르킬 때, 각 반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 09화 9화-내가 맡고 싶은 연령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