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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블리 Aug 04. 2024

11화 - ‘다요‘체가 뭐람?

 1층 반을 쓰는 여은과 현지, 선화는 반에서 나와 아이들을 차례대로 복도에 앉혔다. 2층 반을 쓰는 교사들과 아이들은 계단에서 내려와 종일반 하는 아이들을 따로 1층 연령별 반으로 이동시켰다. 1층 교실은 이제 종일반 교실로 탈바꿈하였다.

“푸른반, 한줄 기차하세요. 옆에 동생들 있으니까 조심해”

“자, 누가 바르게 앉아있는지 봐야지”

왁자지껄 소란 속에 아이들을 차례대로, 바른 자세로 앉히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미래를 직감하자 살짝 눈물이 났다. 그러고 보니 기존에 다니던 교사들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원감은 교사실에서 소형 마이크를 가지고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누구 엄마가 왔는지 쭉 스캔한 후, 마이크에 대고 호명하기 시작했다.

“한아름, 맑은반 한아름, 유주아, 김수호, 장지애~ 그래 그래, 잘 가~ 내일 보자~”

호명하는 동시에 인사도 받아주느라 바쁜 원감은 수시로 현관문 밖을 보며 스캔했다. 차만 보고도 알 수 있을 경지에 올라 시원시원하게 호명을 계속했고, 아이들은 밀물 빠지듯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앉아서 신발을 신는 아이, 뒤에서 신발을 들고 기다리는 아이, 선생님과 인사하는 아이 등 현관은 그야말로 한바탕 하원 전쟁 중이었다.

“자, 선생님 보고 인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머님, 오늘 준수가 밥 먹다가 반찬을 흘렸어요. 그래서 보내주신 여벌옷으로 갈아입혔고, 가방 안에 준수 상의 있으니까 확인해주세요”

“선생님, 내일부터 아이 아빠 휴가라 3일 정도 쉴 거 같아요”

현관이 이렇게 다채로운 대화가 오가는 장소일 줄이야. 주혜는 모두 오린 이름표를 반별로 나눠서 묶기 위해 고무줄을 가지러 교사실에 가다가 하원 전쟁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하원은 담임 교사가 맡아서 하는 광경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꾹 참고 견출지에 투박한 글씨로 ‘고무줄, 링, 집게’라고 적힌 노란색 서랍장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네모난 바구니별로 고무줄, 플라스틱 링, 나무 집게 등을 담아놓은 서랍장을 보고 제 위치와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드러내는 견출지와 서랍장이 귀엽게 느껴졌다. 서둘러 고무줄이 담긴 작은 봉투를 챙기고 나오자 원감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복도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주혜쌤, 이름표 작업 끝났어요?”

“네, 이제 반별로 분류하면 끝나요.”

“그럼, 분류만 하고 퇴근해요. 가기 전에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원래는 6시까지 근무하는 걸로 사전에 얘기했었는데, 출근 첫날부터 계속 4시 30분에 퇴근시켜주길래 얼씨구나하고 쾌재를 부르며 냉큼 퇴근했었다. 오늘도 4시 조금 지난 시각에 퇴근할 수 있겠구나 싶어 얼른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원감은 피곤과 귀찮음이 조화롭게 얼룩진 얼굴로 대충 얼른 가보라는 듯 손짓 후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말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지만, 그 누가 퇴근 앞에서 어떤 고민과 사유를 깊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당차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 건 조금 심했나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짐부터 싸자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분주한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원감님이 이름표 분류까지만 하고 퇴근하래요!!!”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하듯 말하는 주혜를 보는 미래와 지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다.

“그동안 본 쌤 모습 중에 가장 신나 보이는데요?”

웃음기 가득 머금은 지연이 킥킥 대며 말했다.

“그럼 주혜쌤이 5세, 지연쌤이 6세, 제가 7세 이름표 나눠서 분류할까요?”

미래가 주혜가 가져온 노란 고무줄을 바닥에 몇 개 꺼내놓으며 말했다.

“아, 너무 티났나요? 좋은 걸 우짠단 말이요!”

주혜가 익살스럽게 말하자 미래가 유경험자답게 한마디 덧붙였다.

“원장님,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끝내서 갑시다. 남아, 여아로 나눠서 분류하면 될 거 같아요.”

연령별로 색깔을 다르게 만든 이름표라 분류가 어렵지 않았다. 명단을 보며 반별로 나눈 후, 또다시 여아, 남아로 나누기 시작했다. 간간이 오가던 대화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집중력과 손놀림으로 5분 만에 모든 분류를 끝냈다. 남은 고무줄을 다시 봉투 안에 넣고 노란색 작은 바구니에 이름표를 담았다. 도서관을 나서기 전, 미래가 둘러보며 말했다.

“다 정리한 거 맞겠죠? 원장님 뒷정리 잘 안 하고 가는 거 극혐하시는 분이라”

주혜와 지연도 도서관을 다시 둘러보며 말했다.

“네, 괜찮은 거 같아요. 제가 고무줄 다시 교사실에 정리하고 올게요”

“아니에요, 제가 고무줄 정리하고 이름표도 원감님 드리고 올 테니까 먼저 퇴근 준비하세요.”

오늘 주혜는 미래에게 여러 번 감동하고 감탄했다. 고무줄이 어디 있는지 아는 저 경력자의 여유 그리고 원감님을 어려워하는 후배 교사를 배려하는 저 다정함! 센스가 몸에 밴 미래를 보며 훗날 나도 저런 선배가 되겠노라 주혜는 굳게 다짐했다.

“앗! 감사합니다”

미래가 손주를 보는 듯한 할머니의 인자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교사실을 향해 갔고, 지연과 주혜는 2층 재료실로 올라갔다. 새로 온 신입 교사들의 옷과 가방을 둘 곳이 없어 항상 2층 재료실에 보관했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 제외하고는 가본 적 없는 재료실에 도착하니 반가운 옷과 가방이 보였다. 너희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단다. 몇 년째 입는 코트와 가방이었지만, 새삼 반가운 건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고된 몸과 마음의 반사적인 현상이었다. 친숙한 물건을 보자마자 왈칵 마음이 놓이면서 비로소 안전하고 안정된 곳에 갈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핸드폰으로 집에 가는 버스를 검색했다. 옆에서 목도리까지 야무지게 매던 지연이 흘깃 주혜의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물었다.

“쌤 혹시 몇 번 버스 타요?”

“전 19-1번 마을 버스 타는데, 쌤은요?”

“저도요! 저도 그거밖에 없어요.”

“그럼 같이 출, 퇴근하면 되겠다요!”

이상하게 다요체가 자꾸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반말은 안될 거 같은 위기감과 교사로서 존댓말을 해야할 거 같은 압박감에 합쳐진 다요체. 특히 ‘~했다요, ~하다요’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반말인가, 존댓말인가, 그 어중간함을 우리 모두는 암묵적으로 합의 하에 사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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