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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클래식을 쟁취하는 법

졸음과 싸우며 클래식을 듣는 기술

by 유진

KBS 중계석에서 방영될 임동민 & 최형록 바이올린 듀오 리사이틀을 기다리며, 잠도 깰 겸 클래식에 대해 주절거려 보려 한다. 내가 클래식 공연을 가면 어떻게 그 공연을 ‘쟁취’하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클래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색다른 ‘경험’으로 가볍게 감상하기엔, 곡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콘서트를 찾는 이유는 좋아하는 가수를 보거나 즐겨 듣는 노래를 직접 듣기 위함이다. 사전에 셋리스트를 알고 가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이미 취향이 확립된 상태에서 상당한 애정을 갖고 참석한다는 뜻이다. 애정이 없다 해도, 호기심이 있거나 인터넷에서 대표곡과 간단한 정보를 찾아보는 정도는 한다. 제목을 확인하거나, 곡을 한 번쯤 들어본다거나. 대중가요나 팝은 보통 5분 이내로 끝나니 부담도 적다.


하지만 클래식은 한 곡이 길면 40분에 이를 때도 있다. 어떤 곡은 3악장, 어떤 곡은 4악장으로 구성되고,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또 갑자기 질주하기도 한다. 예측이 어렵다 보니, ‘재미있는 체험’이라기보다 전공자들의 파티장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소리에 몰입하기보다 “역시 클래식은 어렵네…” 하며 방관자로 물러서고, 때론 졸음이 쏟아진다. 결국 공연이 끝나면 ‘오늘이 마지막 클래식 공연일지도…’ 하는 결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마음을 이해하며 조용히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래도 옷자락을 붙잡아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예쁘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훌륭한 고전 명작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대마다 클래식에 매료돼 전공을 택하는 사람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듯 클래식도 하나의 문화 체험으로 즐기면 좋다. 다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공연 전 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는 게 좋다. 한두 번 들어서는 잘 기억나지 않으니, 직접 들어보며 ‘굳이’ 좋은 부분을 찾아내고 기억해 둔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그 부분을 연주자가 어떻게 표현하는지 들어본다. 이렇게 하면 수동적인 관객에서 조금은 능동적인 관객이 된다.


공연의 주인공은 사실 관객이다. 연주가 있기 전에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성립된다. 돈을 내고 들어온 만큼, 그 연주를 붙잡을 필요가 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음악은 무형이라 기록이 불가능하다. (악보를 몰래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궁금하긴 하다.) 그래서 미리 들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내 취향의 흔적이다. 그 소리가 무대에서, 숙련된 연주자의 해석을 거쳐 어떻게 피어나는지, 어떤 감정이 실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음원에서는 차분했는데 무대에서는 질주한다면, 다시 음원을 찾아 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취향이 확립된다.


유명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에는 이유가 있다. 클래식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건, 곡이 길고 표현이 다양해서 들을 때마다 새롭고 낯설며 짜릿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 지루하거나 졸린 곡도, 연주자의 해석이 내 취향과 맞지 않았을 뿐일 수 있다. 나는 강렬하게 뻗어 나가는 해석을 좋아하는데, 어떤 연주자는 느릿하고 단단하게 풀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취향에 맞는 연주자를 고르면 된다.


나 역시 클래식을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내 시작에는 항상 ‘연주자’가 있었다. 연주자는 과거 작곡가들의 작품을 도구를 통해 풀어내는 또 하나의 ‘악기’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통해 클래식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애정하는 악기의 공연이 궁금해지는 건 자연스럽다.


다만, 이번 공연은 현대음악 리사이틀이다. ‘현대’라는 말이 붙으면, 일반 관객에게는 낯설고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나도 친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듣기 좋은 부분을 찾아 반복해서 듣고, 환경을 바꿔 가며 들으면서 익숙해졌다. 물론 이런 ‘파고드는’ 성향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덕분에 20~30분짜리 곡도 이미 아는 곡이 되었다. 가사 없이 음만이 떠다니는데 “내가 이 곡을 안다니!” 하는 기쁨이 꽤 크다.


악, 벌써 10시다. 12시면 더 피곤할 텐데 걱정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밤을 새우지 못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하는 패턴이 잡히면서 10시 이후면 졸음이 몰려온다. 그래도 공연 전에 잘 수는 없지 않은가.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해야겠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나 이렇게 말이 많았나? 좋아하는 게 생기니 소설도 쓰게 생겼다. 원래는 소개글로 짧게 끝낼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길어졌다. 계획이란, 언제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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