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에는 베토벤 소나타로 톡톡 두드리는 마음이다.
튕기긴 무슨, 오늘은 내내 실내에만 있었다. 어제도 새벽 1시에야 잠들었더니, 점심에 주먹밥을 간단히 먹었는데도 졸음이 쏟아졌다. 현재 시간 밤 9시 48분, 그때의 식곤증이 다시 밀려온다. 부른 배가 느껴진다. 아… 나른하다. 이대로 잠들면 좋겠다.
오늘 하루 절반 내내 비가 내렸다. 강풍 속의 빗줄기는 아니어서, 아침에는 무리 없이 챠박챠박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오늘은 무슨 곡을 들었던가. 요즘은 이것저것 많이 담아낸다. 시작은 분명 동민 vn 레퍼토리뿐이었는데, 요새 자꾸만 다양해진다. 귀가 더 트였으면 하는 마음에 찾아다닌 공연들이 나름 재미를 준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대상의 흔적을 살피며 길을 넓혀갈 수 있다는 게 참 흥미롭다.
사실 사람 말고도 좋아할 요소는 넘쳐난다. 동물이라든가, 더 순수한 기쁨을 주는 무언가. 그런데 내 순수성을 지켜주면서도 기쁨을 주는 것은, 대체로 ‘사람’이었다. 위로 아득한 곡선을 그려주는 사람. 넓은 포물선의 흐름을 만들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건 항상 추상적이다. 대부분 내 머릿속에 담겨 있다가, 남들이 보기엔 재미없어 보이는 매체를 통해 나타난다. 이를테면 중국어라든가, 클래식이라든가. (일단 마니아가 아니면 어렵다고 하니까.) 내 복잡한 속마음을 이해해 주는 취미들은 늘 옆자리를 내어준다. 그게 좋다.
살다 보면 누구나 외로울 때가 있다. 되게 사소한 일에도 쉽게 고독함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하루 종일 즐겁다가도, 말 한마디에 서글퍼지는 게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어찌 예외겠는가.
요 근래는 잊고 지냈지만, 한때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에게 ‘소속감’이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한 공간에서 나만 이방인이라면, 그것만큼 쓸쓸한 게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안다. 이 생각을 크고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차피 누구도 평생 인연으로 남는 건 아니니, 무리하게 섞일 필요도, 그렇다고 멀어질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인정하면 된다.
그렇게 가볍게 넘기고 나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기억한다. 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공간이 있다는 걸 이젠 안다. 그 방에 들어와 좋아하는 소리를 만져본다. 새로운 것들과도 인사하고, 다른 사람의 연주도 들어본다. 아, 새롭다. 재밌다. 무거웠던 마음이 여러 말들 속에서 잊힌다. 높게, 높게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상념도 젖혀진다. 산책이 중요한 이유다. 조금 빠르게, 숨이 차오르게 걷다 보면 나를 귀찮게 하던 알 수 없는 ‘그것’이 색을 바꿔 입는다. 숨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느라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줄어든다. 그 틈에 나는 현의 소리를 끼워 넣는다.
귀는 구름에 동동 떠올라 말갛게 피어나고, 심장은 쿵쿵거리며 나를 압도한다. 그게 참 좋다. 클래식은 그 순간에 꼭 필요한 단짝 친구다.
생각해 보니, 당신도 클래식과 그렇게 친해지면 좋겠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을 공부했던 것처럼 만나면 된다. 다들 알겠지만, 이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구성된다. 필기는 결국 실기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실기부터 익혀 두면, 필기는 아는 내용을 확인받는 수준이 된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작곡가나 유명한 곡을 공부한 뒤에 들어보겠다 하지 말고, 먼저 공연장으로 뛰어들어가자.
“왜 다들 이렇게 많이 듣나요? 왜 높은 연령층의 사람들이 이 장르를 사랑하나요? 나보다 어린 당신은 어쩌다 여기에 마음을 빼앗겨 평생을 몰입하는 길을 택했나요?”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형태로. 세상은 이미 충분히 아프다. 관심을 가져보자. 타인을 이해하면 그 안에서 내가 보인다. 누군가를 빛내면, 나 또한 환해진다.
나도 빛나는 걸 좋아한다. 빛나는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빛내고 싶은 순간이 많아진다. 내 마음이 늘 작은 빗방울 하나에도, 벚꽃잎 하나에도 일렁이길 바란다. (물론 겉으론 티는 안 내겠지만.)
이래나저래나, 내가 이런 뜻을 품었을 때 기꺼이 도와주는 건 클래식이다. 워낙 감수성 많은 친구가 아니던가. 인간과 자연을 닮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아마 이 생에서 느낄 감정들은 책장을 넘기듯, 거기서 하나씩 꺼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삶을 통째로 돌아볼 시기가 금방 찾아오지 않을까.
오늘의 나는 마음껏 빗방울을 튕겨보았나? 응, 튕겼다. 내 발이 아닌 마음으로, 내 방 안에서, 힘껏 빗방울을 건드렸다. 오늘은 피아노가 굴려와 주었고, 나는 그저 두드렸을 뿐이다. 가볍게,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