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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페이지 앞에서 우리는

글쓰기도, 음악도, 준비 운동은 필요하다.

by 유진

'글쓰기' 버튼을 누른 뒤 매번 되돌아오는 하얀색 페이지는 도화지와 같다. 가장 순수한 형태라 칭해보자. 다들 글자를 하나하나 뱉어낼 때 어떤 기분이 드시는가? 고개의 각도는 어떠신가. 받침대를 쓰지 않는 나로서는 노트북이 시선 아래에 놓여 있다. 순백의 도화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당장 써내려야 하는 강력한 영감이 있는 것 아닌 이상, 막막해지는 감정이 앞설 것 같다. 나도 이 단어들을 내려놓으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도 무작정 관객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첫 곡은 우리가 아는 긴 교향곡이나 협주곡에 비해 가벼운 시작이 많다. 10분 내외였던 것 같기도 하고, 6분 남짓의 짧은 흐름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 모든 시작에는 예열이 필요한 법이다. 하다못해 오븐도 준비 시간을 달라는데 우리라고 왜 필요가 없겠나. 서서히 마음이 달궈지기 시작할 때쯤 하고 싶은 말을 꺼내면, 노릇노릇 익혀지는 게 문장이겠다.


하얀 페이지, 순백의 도화지 말고 밑바탕의 종류는 또 무엇이 있을까? 허공이다. 그려내는 시선은 아래일 때도, 상층일 때도 있다. 정면을 마주하거나 고개를 들어 긴 도화지를 넘실거리며 활용한다. 보이지 않는 형태를 그리는 기분은 어떨까? 허공을 붙잡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잡히는 것이 있을까? 갑자기 글만 토닥이다가 손을 위로 들어 까딱여본다. 손가락 마디 사이로 내 체온보다 낮은 온도의 바람이 스친다. 여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인가? 손을 흔들었을 뿐인데, 보이지 않던 게 만져진다. 물감은 어디에나 숨어 있겠구나.


이래서 음악가들이 관련 이론을 공부하는 걸까 싶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반인이 생각하는 음악적 요소보다 뭔가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내용을 배우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형체. 음악도 철저히 구조화된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난 못해) 가만 보면 오케스트라보다 실내악에서 그 구조가 더 명확히 드러나는 것 같다. 다인원이 아니니 각 인물의 악기 소리가 꽤 정확히 드러나지 않던가. 구조물이 정교할수록 화음은 강렬해지고, 음악은 다채로워진다. (공부해야겠네)


그들은 화가일 수도 있겠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던가. 물론 무작정 창의성에만 기대는 건 아니겠다. 정확한 주요 지시 사항은 작곡가들이 만들어 놓았다. 세밀한 표현과 색 정도를 더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꽤 재밌다. 진짜 주인이 사라진 자리엔 낭만 있는 자들이 앉아 있다. 순수한 열망이 아니고서야 이 길을 어떻게 택할 수 있는가. 그 덕에 나는 ‘공연’이라는 명목으로 연주가라는 화가들이 그림을 시연하는 광경을 생경하게 마주한다.


녹음본도 좋다. 이미 완성된 그림이 펼쳐지는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특히 클래식 음반에는 (Live) 버전이 꽤 있어서 좋다. (레전드 연주가들도 관객의 기침 소리는 피해 가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연주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당장 현실적인 결과물이나 인류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또 자본을 즉시 불러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 내가 이런 예술을 향유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언제든지 지금만큼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 기쁜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충실히 애쓰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길고, 멀리 보면 짧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곧장 닿을 수 있는 판타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이 돌아가는 길목이다. 직선 주로로 단번에 향한다고 해서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야 함을 잊지 말자. 생의 끝자락에는 내가 어떤 길로 향했던 오늘이 어여뻐 보이지 않겠는가. 인생의 전반은 기분 관리가 대부분이라 했다. 그 복잡한 것을 다루려 이렇게 끊임없이 취향을 찾고, 파고들고, 곁에 있으려 하는 거 아니겠는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자연히 잊혔던 초심도 찾아진다. 초심이라는 건 별게 아니다. 그냥 ‘기쁨’의 영역이 아니겠나. 순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여유 공간이 있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또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굴레에서는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지가 마음 위로 둥둥 떠오른다.


시험 보는 건 싫지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시험지도 시험 응시 버튼을 눌러야 주어지는 것처럼, 일단 매사에 응하는 쪽으로 움직여봐야 하는 게 우리의 매일이겠다. 그렇게 지켜지고 형성된 이름 모를 ‘원형’은 타인에게도 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만 해도 인연의 끝이 보이는 관계에서는 굳이 힘을 써서 친해지지 않으려 했다. 질문할 수 있고, 분위기를 풀 수도 있지만,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그런데 내가 가진 원형에 빛을 자꾸만 내려쬐다 보면, 순수하게 누군가를 향한 궁금증이 떠오른다. 스몰토크란 무엇인가. 서로의 취미와 일상을 나누는 일 아니던가.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처럼, 분명 당신도 무언가를 좋아할 것이다.


어째서 그것을 사랑하고 아끼는가? 왜 굳이 시간을 들여 행하는가?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신기하다. 소리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습관이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이유를 찾아보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탐구하는 재미가 즐겁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몰랐던 세계가 선명해지는 느낌은 언제든 재미가 있다.


원래 나는 내 눈에 걸린 것은 잘 놓아주지 않는다. 뭐든 기억하려는 욕심 덕에 내게 걸린 형태감들은 꼭 내 글과 기억 안에 풀어진다. 어쩌겠나, 누가 내 취향이래!


Songs Without Words, Op. 62: No. 1 / Vilde Frang · José Gall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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