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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마음이 향해 있었음을 스스로 들켜버렸으니

오전 9시 30분부터 울었다고 말못해

by 유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나? 이 물음 안에는 두 가지의 갈래가 있다. 하나는 ‘내가 이토록 이곳을 사랑할 수 있었던가?’ 두 번째는 ‘한 사람이 이토록 자신의 반려를 사랑할 수 있는가?’였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자.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 3악장이다. 이 악장 때문에 오전 9시 30분부터 51분까지 울었다. 울기 싫었는데… 방구석에 있으니 아무도 지켜보는 시선은 없지만, 괜히 음표 하나, 소리 두 개에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향해 있었음을 스스로 들켜버렸으니 더 숨기고 싶은데, 이상하게 잘 조절이 안 된다. 어떻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 방금의 순간을 외면한다. 이 곡은 작곡가이자 화학자였던 보로딘이 자신의 아내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악장의 품 안에 갇혀 있다 보면, 아래의 생각이 자연히 떠오른다. 얼마나 사랑한 거야,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어떤 마음인 거야?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 사랑이라면, 귀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어찌 다루지 못해 벌벌 떨며 모아 놓아 감히 양손바닥 위에 얹어 내지도 못하는 것이라면, 차마 닿지 못해 가장 높고 낮은 곳에서 맴돌며 시선을 주는 것이 저것이라면, 사랑이 또 하나의 말씨라면, 순백의 것이겠다. 사람들이 하나씩은 자신만의 이상형을 가지고 있는데, 나도 어쩌면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귀한 마음의 실마리를 한 가닥 찾아낸 것 같다.


내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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