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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갈 때 소리가 들리겠다

쇼팽이랑 스트라빈스키가 도와줄테니

by 유진

이제 현이 들린다. 어제보다 훨씬 나아진 오늘이라는 게 느껴진다. 지난 3일간 알게 된 사실 하나—바이올린은 내게 기쁨이고, 피아노는 위로다. 일부러 그렇게 정한 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현악 4중주나 바이올린·피아노 소나타를 반복해 들어온 탓일까. 기분이 바닥에 붙어 있을 때 바이올린 곡을 들으면 어딘가 이질감이 생겼다. 그럴 때, 축축 처진 마음을 조용히 채워준 건 늘 피아노 건반이었다.


피아노라고 뭉뚱그리기엔 너무 넓다. 굳이 좁히자면, 검지 하나로 건반 하나를 눌러 ‘통’ 하고 울려 나오는 개별 음들의 모음집 같은 곡들이 내게 힘이 됐다. 이를테면, 어제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오늘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


신기하다. 피아노 소리가 이렇게 좋게 들릴 줄은 몰랐다. 첫 클래식 입문 악기가 피아노였음에도 말이다. 과거 모두가 열광하던 연주자의 결선 영상을 보고는 러시아 작곡가의 세계관에 빠져든 적이 있다. 빠르고 압도적인 텐션 속에서. 그땐 클래식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애매했다. 화려한 협주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은 막연하고 멍하게만 들렸다.


예를 들어,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작년 12월쯤 실연으로 들었다. 그 무렵 나는 막 바이올린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예습도 없이 그냥 ‘음미해보자’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앉았다. 그런데 음악이 흐르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연주자는 유명했고, 연주는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공중에 붕 떠 있었던 탓일까. 그날 처음 실감했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도, 내가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들리지 않는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명성에 기대어 음악을 듣는 태도를 조금씩 버리기 시작한 게.


생각해보면, 남들이 좋아하는 곡을 따라 듣는 건 실패 확률은 줄이지만, 취향을 넓히기엔 제한적이다. 만약 지금도 화려한 협주곡만 들었다면? 유명 연주가만 쫓아다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클래식은, 적어도 나에겐 ‘소리’의 음악이다. 내면을 둥글게 비춰주는 거울. 그 생생한 음파를 가장 가까이서 마주한 순간은 오케스트라도, 독주도 아닌 ‘실내악’이었다.


현악 4중주를 아는가? 어쩌면 낯설고, 교양 있어 보이는 이름일지 모른다. 나도 그랬고, 내 주변도 아직 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클래식이 감추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영역은 꼭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작은 집단이 들려주는 다층적 이야기, 그것이 4중주의 매력이다. 보다 내밀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도 좋다. 내가 추천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지만, 결국 당신도 인생 어느 시점에는 이 장르와 인사하게 될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책을 즐겨 읽고, 인디밴드의 결을 좋아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하는 사람이라면—언젠가는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클래식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감각의 옆에서, 한 발 물러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클래식 작곡가들을 ‘노래를 만든 사람’이 아닌 ‘저자’로 본다. 음악을 만든 이유는 늘 개인적이고, 고백적이며, 절절하다.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던 거겠지.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본 밈이 떠오른다. 지친 사람은 어느 순간 대중가요의 가사조차 듣기 싫어져 클래식을 찾게 된다고 했다. 처음엔 그게 이해됐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이제 클래식에 가사를 붙인다. 수일 동안 선율마다 단어를 붙이다 보니, 소리들이 이름을 달라며 여기저기서 뛰어다닌다. 덕분에 공부할 때 클래식을 못 듣게 됐다. 아쉽지만 즐거운 일이다.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주는 고전 소설은 언제나 재미있으니까. 이 장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타인의 일면을, 내가 해석하며 바라보는 일—그게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책은 덜 읽히고, 산책은 길어진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이어폰을 끼고 1악장에서 3악장, 혹은 5악장까지 나아가는 일이 더 즐겁다.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3분의 반복보다 30분의 밀도 있는 여정을.


어제 늦게 잠들었지만, 일찍 일어났다. 평소보다 하나 빠른 지하철을 타고, 10분 일찍 도착했다. 덕분에 멀리 돌아 걸을 수 있었다. 뭘 들었더라. 아마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 에튀드. 유독 통-통- 세 갈래로 튀어 오르는 곡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오랜만에 하이페츠 버전의 생상 소나타도 들었다. 이제 이 곡이 마음에 닿는 걸 보니, 내가 바라던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안다.


7월이 오는 게 반갑고도 아쉽다. 다가온다는 건, 멀어지는 시간도 함께 온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충실히 행복해야 한다. 이것 봐라. 조금만 일찍 눈을 떴을 뿐인데, 바닥에 하얀빛을 새기며 멀리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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