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과 20 사이, 라벨을 기다리며
18과 20 사이, 라벨
18과 20 사이, 라벨
첫눈과 끝눈, 하얀 것과 여러 갈래의 상관관계
라벨의 하프 소리(피아노)를 들으며,
3월 18일의 마음을 정리해보자.
끝눈
쟈박자박
하늘하늘
하얀것이
내려온다
작년부터 공연을 보는 날이면 눈이 왔다. (3월 18일) 천안에서 첫눈을 맞이했고, 명동성당 땐 한파가 밀려왔다. 음원 발매일, 챔버홀에서도, 그리고 오늘도. 꼭 시린 바람이 예고되거나 하늘에서 눈이 송송 떨어진다. 나만 아는, 나만 즐거운 약소하고 귀여운 이 상관관계가 또 하나의 미소다. (누가 겨울바람을 불어오나 보다~) 눈이 오면 기분이 좋다.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공명감처럼, 눈이 오면 피부로 닿아오는 공기가 싸늘하면서도 사위에 내려오는 것에 뭔지 모를 온기를 느낀다. 오늘은 라벨의 곡을 처음 만나는 날이다. (아니다, 나는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었었다. 바보. - 3.20) 피아노 협주곡을 가볍게 들어봤는데, 이보다 새롭고 즉흥적일 수가 없다. 지브리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흐름이 1악장부터 깊게 높은 고저로 느껴진다면 믿겠는가? (믿어야지, 진짜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무슨 기분일까? 머지않은 미래가 기다려지는 오전 9시 47분. 공연을 보고 나면 뭔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소복하게 적고 싶다. 오늘 마음에 남아 있는 단어들을 미리 남겨보자.
김밥과 토마토
평생 동안 먹을 수 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중 하나로 꼽힐 음식은 바로 김밥.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는다. 오독오독한 단무지가 있어서 좋다. 요새 자주 사 먹는 김밥엔 김치가 있어서 또 좋다. (그렇다. 난 상큼파다. 피클 사랑해!) 거기다 양념된 감칠맛까지. 너무 좋지 않은가? 기분 좋은 날로 만들고 싶으니 점심에 매점에서 김밥을 사왔다. 11시쯤 들어왔는지 나름 온기가 소소하게 있어서 좋았다. 요새 거의 매일 먹는 건 또 있다. 빨간색 방울토마토. 스테비아 토마토가 맛있는 것 같다. 간식을 먹고 싶을 때 하나씩 딱 주워 먹으면 터져오는 과즙 사이의 인공적이지만 (설탕이 아니여서 기쁨을 주는) 맛있는 그 단맛이 좋다. 무엇보다 스테비아라서 살이 안 찐다 생각하면 저작 운동이 즐거워진다.
카메라
친구가 카메라를 빌려줬다. (난 복이 많다. 친구가 안 쓰는 공기계도 빌려줬었고, 이번엔 다른 친구가 카메라를 빌려줬다.) 한 3월 말에! 아직 반납을 못했다. 이 카메라 덕에 나 포함 몇 명이 즐거웠다. 기록하면 좋은 순간들은 언제나 있다. 예쁜 미소. 자연스러운 몸짓. 연주 자세. 그 순간의 기분이 담긴 모습. 그래서 담고 싶었다. 난 음식 사진은 못 찍어도 사람은 나름 잘 담는 것 같다. 잘 담는다는 것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그냥 내 눈 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뜻한다. 나의 시선 안에 당신들은 그런 모습을 띠고 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까까머리
라벨이 누굴까? 이 물음표 하나로 생각의 흐름이 쭉 이어진다. 누구였더라.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전곡 앨범을 이 음악가의 곡으로 했다고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라벨은 내가 이미 들어본 곡의 작곡가였다. 그렇다. 20일에 이 문구를 쓸 때쯤에 깨달았다.) 왜 이렇게 소리가 또로롱... 이쁠까? 왜 이렇게 예쁜 소리들이 주체 없이 빠르게 음을 당기고 풀어낼까? 그렇다면 그날 가장 마음에 남는 곡은 뭐였을까?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이랑 Introduction et Allegro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나열해보자. 눈맞춤. 손가락. 피아노 앞판에 비친 손가락의 모습. 옆모습. 옆사람. 까까머리의 아기. (이봐, 내 앞엔 항상 아기들이 있다. 이젠 반갑다. 지난번에 봤던 아기보다 더 어린 연령대 같았다. 결국 아이가 짜증을 내서 밖으로 나갔는데 기분이 좀 그랬다. 왜냐하면 타이밍이 첫 번째 곡이었던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연탄곡 Ma mère l’Oye (어미 거위, 4손 피아노)이 막 끝난 참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기도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답답한 공간에서 말도 못 하게 막는 어른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도 또 하나의 고통이다.
https://youtu.be/N_ENSdLOblk?si=YeZuUmsG-qavb6dX
배고파
아기를 진정시키려 뜯는 사탕 껍질 소리. 왼쪽 그리고 오른쪽. 피아노. 기본적인 건 왜 재미가 없을까.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것과 옆으로 흘러가는 실타래. 빛을 내던 옷자락. 신발. 하프를 닮은 소리. 아주 거칠고 무서운 숨소리. (라 발스 때) 누가 숨을 깊게 내쉬면서 자는 줄 알았어. (알고보니 연주가의 깊은 숨소리였다. 거의 박효신의 옛날 발성만큼 소몰이 창법이었다.) 다시금 깨닫지만, 연주보다 사람이 보이면 몰입이 잘 안 된다. 연주한다는 행위와 누군가가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시키는 소리가 나를 압도해야만 그제서야 몰입된다. 존재와의 이별. 음과의 인사. 음이 웅— 떠오르면, 사람과 공기는 바닥으로 착— 가라앉는 실체적인 경험. 고요했던 공간. 소리만 존재한다는 느낌. 배고파! (배고팠나 보다!) 기다리는 마음들. (이를테면, 제자들이 교수님의 음을 기다리는) 무협 고수 교수님 2분. (그렇게 체격이 크신 두 분이 유려하게 협주곡을 이끌어 가시는데, 신기했다.) 피아니스트의 움직임을 따라 무릎 위에서 손가락 연주를 하던 옆쪽 아이. (어른이다.) 차분하게 음을 흐르게 만드시던 두 분. 유려하게 흐르고 돌아오는 손가락. 떠오른 바이올린 소나타. 라벨이었구나! 리드미컬하고 재즈와 블루스가 물 흐르듯 뒤섞인 그 느낌... 아침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저녁. 시끌한 로비 밖을 빠져나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나와 보니, 눈은 온데간데 없다. 정말 끝눈이었을까?
https://youtu.be/cJOW5mlhH_Y?si=6QA3558
이제는 3월 20일의 마음이다.
물방울
몰랐는데, 내가 들었던 곡들이 라벨의 대표곡들이었다. 다 듣고 나니까, 알고 나니까 특징이 보인다.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유일하게 들어본 드뷔시의 달빛을 듣고 나면 받을 수 있는, 그 아주 동떨어져 있는 손 뻗기도 어려운 빛의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그 달빛뿐만 아니라 다른 곡에서도 있었구나.
왜 라벨의 곡이 그렇게 전형적인 클래식과는 조금 더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듯 리듬을 타듯한 느낌이 있었는지. 그만의 특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건반은 현보다는 넓고, 현보다는 예민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어서, 내 아주 얇팍한 마음을 선명하게 띄워주기엔 조금은 둔탁한 느낌이 있었는데. 라벨의 곡을 소개받으니까 피아노는 현과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노래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 건반은 아주 투명하고 푸른빛의 물방울을 아래로 톡. 톡. 떨어뜨리는 것 같다. 그 투명한 것이 서로 엮이면서 음을 만들어 내고, 소리가 되어 우리의 귓가에 전달된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라벨의 곡 덕분이 아니었을까. (물론 교수님들이 너무 쉽게 하듯이 쳐버리셔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유달리 흐릿함 속에서도 분명하게 빛을 이야기하는 특징의 노래 속에서 나는 멀어졌던 피아노와 아주 살짝은 다시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딱 들으면 느껴진다. 이 곡들, 진짜 쉽지 않은 게 확실하다! 소리가 아주 자잘자잘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그 자잘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하나하나의 중요한 역할들이 만들어내는... 아, 표현하기도 어려운 수채화를 닮은 소리들이 막 펼쳐진다. 연주가의 손가락은 아주 가볍게 두둥실 건반을 건드리지만, 그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서 펼쳐지는 향연들이 정말 듣기가 좋은데, 하기가 정말 어려워 보였다. 역시 듣기 좋은 건 하기 쉽지 않다.
바이올린 소나타
아트엠콘서트에서 들었던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뭉뚱그려 그냥 ‘듣기 좋다’라고 생각했던 1~3악장의 정체가 전보다 선명하게 들려온다. C에게 질문을 던져 이 악장들에 대해 다시 한번 정의를 내렸다. 완전히 합을 맞춰도 안 되고, 어긋나서도 안 되고, 연결이 된 듯 아닌 듯해야 하고, 너무 끈적하지도 않고 딱딱 내려앉지도 않고, 그냥 뭐... 흐름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엮여가듯, 춤을 추듯 연주해야 한다. 진짜 듣기 좋은 건 하기 어렵다!!!!!!!!!!!!! 조만간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의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를 풀어봐야겠다. 내가 조금은 귀에 익혀둔 연주가님 특유의 소리가 이런 아주 재즈풍의 보랏빛, 묘한 느낌의 곡에 어떻게 녹아져 있을지 타닥이며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방금 막 들었다. (그냥 듣기만을 못하는구나!)
곡을 듣다 보면, 바이올린도 그렇지만 피아노 반주의 역할이 진짜 크다는 걸 요 근래 느꼈다. 반주의 뜻이 뭘까? 음악에서 ‘주선율을 화성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부분’이라고 한다. 뒷받침이라는 건 뭘까. 단어만 바로 마주했을 때는 그냥 ‘보조’, ‘부선율’ 이런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부’라고 볼 수 없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각자의 위치에서 불을 내뿜듯이 해석해 나간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 역할이 더 확연히 들린다. 바이올린이 흐를 때 피아노는 두드리고, 바이올린이 튕길 때 피아노는 휩쓸어 버린다. 듀오 리사이틀 때 그 흐름의 합이 유달리 선명하게 들리면서, 잊었던 피아노 소리를 다시 만났었다.
이런 참치
쓰다가 문의가 들어와서 호다닥 다녀왔는데, 스몰토크를 아주 물 흐르듯(?) 이어가셨다. 노년의 신사셨는데, 핑크색 후드집업을 입고 목에는 핑크 계열의 스카프를 두르고 계셨다. 두 번째 주제가 도쿄 여행을 갔던 때, 스시집에서 골든벨을 울렸던 것을 말씀하시며 참치를 말씀하셨는데, 연핑크색 옷차림으로 말씀하시니까 뭔가 귀여우셨다. 오래 사세요, 교수님.~!@ (갑자기?) 흐름도 끊겼겠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21일의 공연을 보고 적어야겠다. 그날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실연으로 듣게 될 텐데 기대된다.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으로 못 들어서 아쉽지만 ~! 그래도 기대가 된다. 라인업이 모두 교수님이기 때문에... 기약해보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