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
최은영 작가의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뿌리가 자라는 시기라고 생각해. 어떤 땅에서 자라났는지, 그때의 기후가 어떠했는지에 따라서 뿌리의 생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씨앗으로서는 아무리 자기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토양이 척박해서 양분이 부족하면 그 뿌리가 어떻게 굵고 단단하게 땅 아래로 뻗어나갈 수 있겠어."
글을 읽으며, 나의 토양이었을 우리 집을 떠올린다. 어렸을 적 살았던 좁은 연립주택. 오래된 단독주택의 1층집과 옥탑방 같던 2층집. 성인이 되어 이사한 서울 변두리의 새 아파트. 우리 가족은 팍팍한 시기를 거쳐가며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살았고 내가 독립을 하기 전까지 약속한 것처럼 정해진 자리에 모여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밥상에는 항상 보리차가 놓여 있었다. 먹을 것이 풍요로운 때에도 빈곤한 때에도 식탁 위에서 변하지 않던 한 가지. 나는 아이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그 물을 마시면서 가난과 불화와 좌절을 골고루 맛보았고, 그러면서 무사히 보통의 어른이 되었다.
이제 주전자가 막 끓인 보리차로 가득 차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부모님 집에 갈 때면 현관 앞에 나온 부모님보다 나를 먼저 반기는 건 진하고 구수한 보리차 냄새다. 물 끓였네, 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다.
은이 온다고 해서 많이 끓였지.
어쩌면 그런 정성이야말로 한 사람의 생장에 가장 필요한 양분일지 모른다. 메마른 땅 저 아래까지, 굵고 단단히 뿌리내리게 해 준 무언가가 있었다면 한결같았던 내리사랑일 거라 짐작한다.
매 끼니를 함께할 새로운 식구가 생기고 생활의 터전이 바뀌었어도 보리차를 마시던 오랜 습관은 그대로다. 여름이면 이틀에 한 번씩 4리터의 보리차를 끓여 둔다. 요즘은 깊은 맛이 좋아서 보리에 옥수수도 섞어 넣는다. 깨끗한 주전자에 물을 가득 받고 보리 알곡 반컵, 옥수수 알곡 반컵을 넣으면 보기 좋게 그을려진 곡식이 그림처럼 자리 잡는다.
중강불로 놓고 20분 정도.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보리와 옥수수 물이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10분 정도 기다린다. 집 안에 진하고 구수한 보리차 냄새가 충분히 퍼져 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은은한 곡식의 내음을 들이마시면서, 신록의 계절을 지나 진초록으로 뒤덮인 창 밖의 여름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끔은 생각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우리 가족의 고단했던 시절을. 때로는 서로를 상처 주고 먹고살기 위해 사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던 그 척박함을. 한 잔의 따뜻한 보리차를 후후 불어 마시는 동안, 그러나 저녁이면 함께 둘러앉았던 작은 밥상 위의 평범한 기억들이 내 인생 대부분에 걸쳐 있음을 떠올린다. 그런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일상들이, 결국은 등을 떠밀고 손을 이끌어 앞으로 걸어 나가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평범한 일상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보리차를 끓이는 일, 소중한 사람에게 보리차 한 잔을 건네는 일, 함께 보리 알곡을 사러 다니는 일과 같은 사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온대도, 나를 그리고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되어 줄, 아주 작은 일상의 조각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