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말이국수
혼자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 여름이다. 화이트칼라였던 남편이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육체 노동자로 전향한 이후부터, 우리는 줄곧 저녁밥을 함께 먹었다. 남편은 언제나 6시 전에 집에 도착했고 남는 시간에 청소기를 돌리거나 보리차를 끓이면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 부부는 한동안 저녁 있는 삶을 공유하며 이런 게 행복 아니겠냐는 말을 많이 했더랬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휴지공장의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잔업이 불가피해졌다. 그 많은 휴지가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수당을 챙겨 주고 구내식당에서 석식까지 제공해 주니 사실상 일한 시간만큼 돈이 되는 입장에서 손해는 아니었다. 남편은 잔업을 할 수 있냐는 물음에 거의 항상 그렇다고 대답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고정 멤버가 되어 2~3시간 정도 추가 노동을 하고 온다. 그렇게 우리는 저녁밥을 따로 먹는 여름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밥 사진을 들춰 보면 식탁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반찬 하나라도 더 내는 건 혼자일 때 대부분 생략되는 일이다. 더운 계절이기도 해서 뜨거운 요리는 피하고 그릇은 딱 한 개만 내어 쓰는 원 플레이트(one plate) 요리를 자주 한다. 오늘은 맛과 간편함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초간단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1. 끓는 물에 삶아낸 소면을 찬물에 여러 번 헹구어 내고 그릇에 담는다.
2. 시판용 냉면 육수에 열무김치 국물을 섞어준다.
3. 국수 위에 국물을 붓고 열무김치와 계란으로 장식한다.
후루룩 먹어 보니 레시피는 간단해도 맛이 제대로다. 배고픔은 부드럽게 달래 주고, 기름지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개운한 감칠맛이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을 돋워준다. 그런데 왜일까? 어쩐지 마음이 마냥 즐겁지는 않다. 저녁밥을 혼자 먹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은, 신나지도 울적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어딘가쯤에 내 기분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잔업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고요한 저녁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나는 원체 혼자여도 쓸쓸함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만을 위해 차린 밥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해서 먹을 수 있는 시간 또한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밥이 정말 맛있던 때는 둘이 함께 먹는 순간이었다. 요리할 맛이 나고 의욕도 샘솟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재잘거리면서 먹다 보면 밥이 술술 잘 들어갔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구나, 밥을 먹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면 안심이 되었다.
남편이 종종 즐겨 부르던 노래에는 "외로움을 반찬으로 혼자 먹는 밥은 지겨워"라고 말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나는 지금 노래 속 화자가 되어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외로워지려고 할 때면 공장 안에서 포장된 휴지를 거대한 랩으로 휘감고 있을 남편을 떠올린다. 구내식당에서 받은 간식을 먹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전해주는 남편을.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쉬는 시간을 다 써버리는 남편을. 퇴근했을 때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의자를 당겨 앉아 두 번째 식사를 함께 해주는 남편을. 나만 아는 순수한 애정을 생각하면 헛헛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진다.
그래, 저녁 나절 잠시 잠깐 혼자이면 어떠랴. 사랑을 느끼는 마음만 있다면 기다림도 행복임을 알려주는 이가 곁에 있는데. 그런 따뜻함이 있기에,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외로움도 지겨움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 제목과 본문에 언급된 가사는 다이나믹 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