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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휘 Jun 04. 2024

스님처럼 살기로 했다

들깨미역국


요즘 머릿속은 '어제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로 가득하다. 6년 여 전부터 나는 줄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왔다. 정신과 육체는 반드시 낡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아주 천천히 퇴보하는 방향을 찾고 싶었다.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반(反)출생주의에 힘이 실리는 시대이지만, 어찌됐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최대한 행복을 누리자고 마음 먹었다.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건강이기 때문에 나는 그간 정신을 수양하고 체력을 단련하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속하는 노력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저급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다. 나는 원체 거창한 목표를 가지는 사람은 아니다.


딱히 시간이 드는 노력은 아니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여가 시간이 꽤 있는 편이다. 요근래엔 책을 자주 읽고 SNS 활동을 한다. 관심사에 부합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일도 종종 즐겨 하는 취미 중 하나인데, 가끔은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뜨는 관심 밖의 영역을 만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나는 어느 스님이 국수를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레시피랄 것도 없이 간장 조금과 참기름에 버무린 소면을 준비하고 신선한 텃밭 채소에는 소금과 효소만으로 약한 간을 한 간장국수였다. 소면 위에 한가득 올라간 채소를 슥삭슥삭 비벼서 PD가 아주 맛있게 먹으며 별미라고 하자 스님이 말씀하신다. 요즘은 양념을 많이 넣어야 맛있는 줄 알지만, 맑은 음식은 맑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내가 평생을 짭짤하고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에 길들여진 중생이라는 사실이 그 순간 묵직하게 가슴을 강타했다.


스님처럼 살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원체 거창한 목표를 가지는 사람은 아니라서,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놀라워하다 막상 본론에 들어가면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9시부터 6시까지 근로하는 직장인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초저녁에 잠드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육식을 하지 않으면 구내식당에서 뭐랑 밥을 먹을 건지에 대한 의문들을 나는 해소해 줄 수 없다. 내가 체득하고자 하는 건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과 음식을 대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간을 덜고, 양을 덜고, 맛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내가 행하기로 마음 먹은 스님처럼 살기의 전부다.


주말에는 스님의 레시피를 따라 표고버섯과 들깨가루를 넣은 미역국을 만들었다.



1. 불린 미역에 국간장과 들기름으로 밑간을 해둔다.

2. 밑간을 해둔 미역에 표고버섯 불린 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3. 끓기 시작하면 물을 넉넉히 부어주고 불린 표고버섯과 국간장을 넣어 한소끔 끓인다.

4. 마지막에 들깨가루를 취향껏 넣는다.


다진마늘이나 다시다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들깨미역국이 완성되었다. 심심한 듯 편안한 국물맛에 들기름과 들깨가루의 풍미가 가미되어 건강한 영양식을 먹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수향미로 밥을 안쳤더니 구수한 밥 내음까지 일품이다. 국물 한 입, 밥 한 입, 번갈아 떠 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해본다. 재료 본연이 가지고 있는 맛이 무엇이었는지 탐색하는 시간이다. 손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면 미역의 검푸르고 짙은 색깔과 쌀알의 반지르르한 윤기가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숟가락질을 조금만 천천히 한다면 입 안에서 음식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가볍고 심심하게 먹었는데, 아쉬움보다는 배가 비어 있는 적당한 허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건 낯설고 신기한 일이다.



스님처럼 살기로 한 나의 다짐이 언제 스리슬쩍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나의 매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괄목할 만한 성과나 자랑거리가 없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행복했다면 자신감을 얻는다. 혹은 덜 행복했더라도 당분간은 스님의 레시피에서 위로받을 수도 있다. 완두콩주먹밥과 톳밥, 제비꽃비빔밥을 만드는 상상을 한다. 아주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로부터 회복되는 그 순간을.


* 본문에 언급된 스님의 레시피는 유튜브 채널 ‘정위스님의 채소한끼’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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