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이번 추석에 집에 안 갈 거야."
가부장의 권위를 중시하는 집안 분위기는 결혼을 기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명절마다 차려지던 두 개의 밥상이 특히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음식이 푸짐히 올라간 커다란 상과 그렇지 않았던 작은 상. 엄마와 작은어머니들은 부실하게 채워진 작은 상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지만 나는 그것이 여자의 밥상이라고 배웠다. 김 씨 집안 며느리들은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배분하는 주체였지만 소유권이 없었다. 그러나 주방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가장 늦게 앉아 식사를 시작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 상을 물렸고, 이 역할 분담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명절에 지내는 제사와 집에 모인 어른들이 달갑지 않았다. 그것은 가사노동의 양극화를 만드는 주범이었다. 아빠와 작은아버지들은 어린 딸들이 쟁반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대견하게 여겼고, 결국은 엄마들처럼 일하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내가 명절마다 배운 것은 제기를 닦는 법, 제사 음식을 거두어 접시에 적절히 더는 법, 손님의 숫자를 헤아려 재빨리 수저를 놓는 법이었다. 커갈수록 그런 일들에 동원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안 살림이 익숙한 딸자식은 요긴한 일손이었을 것이다. 명절이 되면 누군가는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나 또한 십 수년간 그런 역할을 자처하며 살아왔다.
남편은 어땠을까. 그 또한 가부장제에 기반한 명절 문화에 질린 듯했다. 가족에 대한 절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큰어른으로 인해 명절 모임은 고함이 나지 않은 적이 없다며, 그곳에 아내 될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이 된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모르겠어. 서로 자라온 지역과 환경은 달랐지만, 우리는 친척이 모여드는 명절이 가정 불화의 온상임을 똑같이 보며 자라왔다. 물론 우애롭고 화목한 집안도 많을 것이다. 다만, 나와 남편의 집안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으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에게 결혼에 앞서 강력한 동지애를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친척 모임은 직계가족식을 선택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집안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자. 명절 당일을 피해서 추석에는 우리 집에, 설에는 시가에 가기로 했다. 미리 약속했던 일이지만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아빠는 결혼식다운 결혼식을 하지 못해 면이 서지 않는다며 추석에 오면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것이 어른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라고. 그 말이 작은 불씨로 남아 있던 반항심에 커다란 불을 지폈다. 결혼식다운 결혼식이라니. 면이 서지 않는다니. 아빠의 세상에서 우리들의 신념은 고작 그 정도였다는 말이다. 가부장제에서 남들이 다 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에게 큰 결례가 되는 일이겠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추석에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즈음 집으로 복숭아 택배가 왔다. 속사정을 알 리 없었을 텐데, 어머님은 추석 선물을 보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명절에 꼭 집에 안 와도 된다."
속상할 때마다, 어머님이 보내 주신 복숭아를 꺼내어 먹었다. 박스에서 잘 익은 황도를 두 개 꺼내 깨끗이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칼집을 낸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모르는 아빠는 한 번도 집에 복숭아를 사 들고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챙김 받는 사람과 챙겨 주는 사람의 차이다. 평생 큰 상에서 식사를 했던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작은 상에 앉아야 했던 사람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돌봄과 양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차별을. 나는 남편을 부르고 부드러운 과육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떼어, 좋아하는 그릇에 가지런히 옮겨 담는다.
“맛있겠다.”
한바탕 집안일을 마친 남편 앞에 복숭아가 담긴 접시를 놓는다. 공평하게 한 개씩. 남자 상과 여자 상이 없는 우리 집에서 부부가 식탁에 나란히 앉는다. 같은 음식을, 같은 양으로 나누어 먹는다. 어린 시절 명절마다 내가 바랐던 건 이렇듯 단순한 공유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결혼한 이래로 평등함이란 시시할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희생 대신 존중과 배려가 있다면 모든 일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휴일 같은 한가위를 보내며 되새긴다. 아들이 없는 며느리로 홀대받아도 우리 자매를 소중히 여겼던 엄마를. 부당함에 용감히 맞서고 종내에는 시가와 절연하기를 택했던 시어머니를. 끝끝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치유해 준다. 그런 사람들의 명절 풍경은 이미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는 중일 것이다. 오래도록 싫어한 명절이, 머지 않아 좋아지게 될 날이 오리라 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