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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Sep 05. 2020

싱글맘에게 산다는 건.

버티는 삶에 대해서.

나는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메모를 했다.

매년 1월이면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1월엔 빼곡하게 적었지만 12월까지 적어 본 적이 없다.

반쯤 사용한 다이어리는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안 보이는 수납장에 모두 넣어두었다.  

때로는 블로그에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몇 자씩 적었다.


짧게,  때론 길게.


2013.5.29

2013년 5월 29일 아침 7시 51분. 서른 살의 나는

산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적었다.


아침부터 나는 왜 이렇게 적었을까.

그 날이 주말이었을까, 찾아보니 수요일이다.

시간으로 보아 아침 출근길에 적었을 것이다.

유니폼을 입고 걸어서 내려오는 내가 생각났다.

휴대폰을 열어서 블로그에 글을 적었겠지.

그 날은 다른 날과 달랐나 보다. 아침 일찍 글을 적은 거 보니

나는 버티자는 필사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날 하루는 저 다짐으로 견디며 보냈겠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서 버텼을까.
무엇을 위해서 다짐을 했을까.






딸은 태어난 지 5개월부터 여섯 살 때까지 어린이집에 다녔다.

어느 날 내가 딸을 데리러 간 날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놀이터에 나와서 놀고 있었다.

딸이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야"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엄마 있네?"라며 말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항상 할머니가 데려다줬었고 데리고 집에 왔다. 나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 딸은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가 없는 아이였다.


일곱 살에 유치원을 보냈다.

친정 엄마는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내 욕심에 유치원을 보냈다.

학부모 참여수업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참여하질 못했다. 그래도 나와 같이 못 가는 엄마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딸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서 연필로 무엇인가 적는 것을 보았다.

무엇을 적니?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회사 가서 못 오니까 못 온다에 동그라미를 쳤어.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딸에게 너무 당연하게 돼버린 엄마의 빈자리였다.





아니야 엄마 갈 거야
엄마한테 종이 줘봐 다시 적자




내가 일을 하고 버티는 것은 '나와 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일하는 엄마였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적도 없었다.

유치원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엄마는 딸을 위해서 손녀딸을 데리고 다녔다.

친정엄마는 '회사에 군소리 말고 일해, 돈을 열심히 벌어야 너희 둘이 먹고살지.'라고 말했다.






유치원 참관수업에 간 날을 기억한다.

잠깐 외출을 쓰고 유니폼을 입은 채 갔다 왔다.

한 시간 남짓이었다.

아이들이 쪼르륵 앉아있었고 먼저 온 학부모들이 자리를 맞춰서 빼곡히 앉아 있었다.

나는 늦어서 뒷문 출구에 서서 찾아봤다. 저 멀리 딸이 보였다.

손을 흔들어서 인사했더니,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야~"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몇 번이나 가리켰다.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꾹 참았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참관수업이 몇 번이나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오지 못했었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 틈에서 항상 혼자 있었을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수업하는 동안도 몇 번이나 뒤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확인했다.


그 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버티며 사는 것은 무엇인가.

나와 딸을 위해서다.

나는 회사에서 군소리 없이 일했다. 안된다,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않았다. 아파도 회사를 나왔다. 그래야 월급을 받을 수 있고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나의 일하는 목적은 생계이기도 하지만 나와 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목적을 알고 나를 바꾸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놨던 틀을 하루아침에 바꾸긴 쉽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나와 딸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를 생각한다. 그것이 순서가 맞다.






2013년의 그때처럼 나는 지금도 산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면서 버텨야 한다.


2020년의 산다는 것은 버티 돼 똑똑하게 버티자.

그리고 버텨왔으니 이기자. 이제는 이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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