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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불량품의 말로

 첫 일 주일은 나쁘지 않았다. 선배들은 “다 너 잘 크라고 그러는 거야.”라면서 자기 일 중 손이 많이 가는데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을 내게 넘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남들이 볼 때는 별거 없어 보이는 업무분담 속에서 매일 야근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배우다 보면 성장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 달을 버텼다.      

 “장수 씨? 정수기 물통 갈아야겠네.”

 내 자리가 탕비실과 가장 가깝다 보니 지나가던 직원들이 자주 말을 건다. 특히 정수기 물통 교체 업무는 업무분담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당연히 신입이 하는 일 중 하나다. 

 “네. 혜진 과장님. 요것만 마무리하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여기서 컵 들고 기다려? 뭐, 대단한 거 한다고...”

 날이 선 답변이 비수처럼 돌아왔다.

 “아... 아닙니다. 지금 갈아 놓겠습니다.”

 아침부터 쓰레기 비우기, 탕비실에 놓인 식기들 설거지, 정수기 물통 갈기, 더러워진 회의실 책상 닦기, 식물에 물 주기 등 잡다한 업무들에 기진맥진할 즈음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안 장수! 이리 와봐.”

 “네. 팀장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컹컹 소리를 치며 교육? 하는 유형의 상사가 있는데 우리 팀장님이 딱 그 유형이다.

 “기획안 편집이 이게 뭐야? 오타에 문맥도 안 맞고, 너 나 엿 먹이는 거지? 이거 들고 사장님 보고했다가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 질 거야? 신입이라 잘 모르겠으면, 어떻게든 물어봐서 제대로 해와야지! 안 그래? 그리고 여기 줄 간격이 왜 틀리지? 내 눈에만 보이는가? 어이~ 해도 대리, 와서 봐바.”

 내 사수이자 옆자리 해도 대리님이 용수철처럼 튀어왔다.

 “네. 팀장님. 제가 봐도 심하게 틀려 보입니다. 제가 교육한다고 했는데, 영 아직 못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됐어. 뭐 자네 불찰이야. 요즘 애들은 센스가 없으면 패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뭐, 대충대충 어휴...”

 팀장님의 한숨을 뒤로 받으며, 자리로 밀려 앉았다. 변명하자면, 어제 기획서를 넘겨줬고 봄맞이 체육대회네 뭐니 해서 자료를 받고 나서 오후 내내 이리저리 노동력을 제공하며 끌려다녔다. 그나마 야근이라도 해서 초안을 잡아 놓은 건데... 그걸 가지고 꾸중하는 게, 이건 뭐 시스템도 없고 베려도 없는 처분으로 생각되었다. 해도 대리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장수씨, 그냥 받아들여~ 뭐 좀 지나면 좋아 질 거야~ 아! 그리고 내가 어제 부탁한 자료 조사는 바쁠 텐데 내일 저녁까지만 해서 줘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자료만 다 찾아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꼴이다. 적당히 다 찾아달라는 모순을 이해는 하고 내뱉는지 의문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도 잡일은 끊이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대기업 등에 비해서 시스템이 갖춰있지 않다 보니 일당백을 처리할 때가 많다. 특히 회사 내 모든 잡일은 신입인 내 몫이다. 

 “장수 씨, 거래처 손님 왔네. 커피 4잔~” 

 “안 장수! 회사 차 워셔액 떨어졌다. 마트 가서 2통만 사와.”

 “장수야, 요것 들 좀 등기로 지금 보내줄 수 있을까?” 


  내가 만든 법칙이 있는데, 피타고라스 법칙처럼 확실하다. 바로 회사에서 제일 힘든 건 무조건 막내라는 ‘막내 제일 힘듬 법칙’이 그것이다. 아무리 윗사람이 일이 많더라도 육체적, 정신적, 보상의 관점 등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면 막내만큼 힘든 위치가 없다. 만약 누군가가 막내 앞에서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징징댄다면, 반성하길 바란다. 어느 조직이든지 제일 아래가 제일 힘들다. 심지어 일 하나 없을 때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불안함에 몸을 떠는 게 막내들이다. 

 어찌 되었든, 업무적이든 생활적이든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들은 그나마 하면 된다. 대부분 업무시간 내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업무시간 외에 일어난다. 요즘 대기업들은 PC-0FF 제도 및 업무시간 외 메신저 금지 등 다방면으로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쓰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전혀 그런 바람이 불 리 없어 없어 보였다. 마치 무풍지대의 적도같이 덥고 습했다. 회사 특성상 남성 직원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모든 이야기는 술로 이어졌다.      

 회식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막내들이 대체로 회식을 싫어하지만, 아예 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횟수와 정도의 차이다. 왜 1차에서 밤 9시 이전에 회식이 종료되면 안 되는지 먼저 묻고 싶다. 2차, 3차를 가면 더 돈독해지니까? 아니다. 아무리 2차, 3차를 가도 다음날 되면 서로 존대하고, 업무 영역으로 다투고, 경쟁하고 똑같다. 이거야말로 가장 시간 대비 성과가 적은, 회사에서 최대의 적으로 뽑히는 가성비 안 나오는 업무의 연장이다. 심지어 과음한 다음 날에는 정신이 온종일 멍~ 해서 일에 집중도 잘 안 된다. 과도한 회식만 줄여도 회사는 5% 이상 발전한다고 확신한다. 물론 숫자에 근거는 없다. 회식을 싫어하는 정도에 따라 10%도 되고 20%로도 되는 게다. 

 오늘 이렇게 흥분한 이유는 오늘도 역시나 회식이 잡혔기 때문이다. 다시 흥분 안 할 수 없는 게 대리가 불러서 한잔하면 그것이 내게는 회식인데, 그다음 날은 과장이, 그다음 날은 다른 팀 팀장이, 그 다음다음 날은 우리팀 전체 회식이... 매일 매일 회식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각각의 회식은 일회성이지만 나는 주 5일 내내 회식이 잡혀버리는 매직이 일어난다. 그리고 오늘은 팀 회식이 있는 날이다.

 “장수야~ 수고가 많다. 한잔해라.”

 소주잔이 짠~ 하게 부딪히는 소리에 맞춰 내 몸도 짠하게 망가져 갔다. 오장육부에 알코올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들었고, 뇌 속에 뉴런들이 활동을 서서히 멈춰가고 있었다. 첫 회식 때 주량을 물어보길래 솔직하게 1병이라고 했더니, 그때의 답변을 기억 못 하는 건지 항상 1병이 넘었어도 더 먹으란다. 나중에 알았는데, 상사들은 주량X2배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즉, 내가 주량 2배의 법칙을 몰랐던 무식의 결과값이다.

 “장수 씨는 요즘 집에 가면 뭐해요? 요즘 사람은 뭐하고 쉬는지 궁금하네.”

 40대 워킹맘 혜진 과장님이 빨개진 코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음... 요즘에는 딱히 시간이 안 나서요. 저도 자기계발을 좀 해볼까 해요.”

 “자기계발?”

 순간 분위기가 싸~ 해졌다가 이내 웃음이 번졌다. 

 “하하하. 이 친구 재밌네. 뭐, 좋은 취미이긴 한데 회사 일도 못 치고 나가는데 뭐 놈의 자기계발이야~ 일이 먼저지.”

 나는 자기계발을 한다고 얘기를 했다고 10분 동안 쓴소리를 들었다. 요지는 회사 일도 못 하는 게 자기 계발하면 머리만 커져서 더욱 회사 일은 뒷전이 될 거고, 그럼 본인들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즉, 나의 발전보다는 본인들의 자리보전이 더 중요하다는 그런 말이다. 팀장님은 내가 공부하고 발전을 해서 이 회사를 나가버리면 잘 키울 명목이 없다는 식의 말을 늘 하셨었다. 그러면서도 술 한 두잔 정도에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이 회사에 왜 있냐고, 공부해서 다른데, 대기업 같은데 갈 생각 해야지! 라며 다그치셨다. 나는 그럴 때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신입사원이 되어 근무한 지 2달이 넘었다. 사규나 정부 정책상 야근은 할 수 없었지만, 늘 야근에 시달렸다. 저녁 10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왔는데 씻고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졌다. 자기계발은커녕 좋아하는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인생의 연속이다. 오늘은 그나마 일할 맛이 나는 날이다. 월급날이기 때문이다. 텅빈 통장에도 무언가가 채워지는 날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월급은 쏜살같이 사라졌다. 유능한 빚쟁이처럼 은행이나 카드회사는 월급날만 기다렸다가 월급이 들어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합법적인 삥 뜯기를 시작한다. 심지어 아직 갚지 못한 집 담보 대출금도 매달 50씩 갚아나가야 한다. 어머니는 취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생활비 명목으로 대출금을 갚을 것을 선언하셨다. 나는 무기력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쪼그라드는 월급과 다르게 아파트값은 치솟았다.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에서 거주하는 비용은 나날이 치솟았고 더는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아보겠노라는 꿈조차 꾸지 못하게 멀어져갔다. 야근에 치이고 쥐꼬리만 한 월급에 치이다 보니 연애는 꿈도 못 꾸는 신세가 되었고 당연하지만, 결혼이나 출산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하루살이 같았다. 그나마 작은 회사라도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이 회사가 벼랑에 매달린 나를 구원해주는 동아줄이다..

 “안 장수! 대표님 방으로!”

 “네. 팀장님.”

 팀장의 부름에 곧장 대표님 방으로 들어갔다. 대표님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짧게 나마 대리, 과장 등 선배들의 얼굴이 보였다. 영 불편해 보였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어어... 자네 앉게나.”

 대표님의 얼굴에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영 별로지? 아무래도 적자가 지속되다 보니까 다들 힘이 빠지는 모양이네. 나도 요즘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라고. 허허.”

 “아... 네.”

 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풀지 않았다.

 “장수 씨는 똑똑하고 성실해서 어디 가서도 이쁨 받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그나저나... 본론을 예기하자면, 혹시 우리회사 들어올 때 수습 기간에 대해 들어봤나?”

 정규직이 되기까지 수습기간 3개월이 필요하다. 아직 1개월이 남았다. 

 “네 대표님. 알고 있습니다.”

 “그렇구만, 3개월 내에는 회사의 처분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알고 있을테니... 미안하게 되었네. 내일부터 출근 안 했으면 하네.”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대표는 언성을 조금 높였다.

 “무슨 말이라니? 그렇게 듣는 센스가 없어서 무슨 일을 하겠어? 요즘 뭐 어디 노동청에 고발하느니 어쩌느니 말이 많던데, 헛수고 하지 말고 그냥 쉽게 쉽게 했으면 좋겠어. 나가봐!” 

 등줄기에서 막 샤워한 듯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젊은 나이에 명예롭지 못한 퇴직을 당했다. 더 억울한 것은 역시나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는 현실이다. 세상은 늘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세상의 요구사항의 그 어느 것 하나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세상이 낳은 불량품일 지도 모르겠다. 

 “불량품의 말로가 어디일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뒤통수에서 편의점 출입문이 닫히는 맑은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조금 기울어진 도보 위에서 맨입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30초도 안 되어서 푸른색 소주병 밑동에 모인 투명한 액체가 얕게 찰랑거리는 게 느껴졌다. 한참을 몽롱한 정신으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펼쳐지는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허름한 건물의 2층 PC방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PC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조개가 움푹 파인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알바생이 웃음으로 취객을 맞이했다. 하지만 곧이어 풍기는 알코올 향에 코를 찡긋하였다.

 나는 마치 매일 오던 사람처럼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가장 구석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울퉁불퉁하게 생긴 푹신한 게이밍 의자 위로 엉덩이를 내 던졌다. 성인 남성의 무게를 견디기 버거웠는지 의자에서 찍- 한 신음소리가 났다. 

 혹시나 해서 휴대폰을 찾았다. 하지만 역시나 나를 찾는 문자는 아무 데도 없었다.

 “부모도 찾지 않는데, 누가 날 찾겠어? 나 같은 불량품을...”

 나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크게 한 번 내뱉었다. 몇몇 게임을 즐기던 대학생들이 쳐다봤지만, 취객의 주사 정도로 생각했는지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갑자기 눈빛을 고쳐먹고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이 열심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렸다. 약 30분 후, 나는 후련함과 멍함의 중간 표정을 지으며 PC방을 나왔다. 짧은 사이에 날씨는 변하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 따위는 들어본 적 없다는 당당한 표정으로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엉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빗속을 한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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