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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Oct 21. 2021

안락사 프로젝트


 전라남도 영암은 목가적 풍경으로 둘러싸인 동네인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굉장히 커다란 현대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이곳이 안락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설이자 숙소인 듯 보였다. 

 저 멀리서 검정색 SUV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두 명의 검정 모자를 쓴 사람이 내렸다. 무표정한 얼굴에 검정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이 시설의 교관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락사 프로젝트에 찾아오신 여러분을 도와줄 교관입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각지에서 오는 버스가 줄이어 들어왔고, 수백 명의 사람이 오리 새끼처럼 줄을 지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물은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2층은 활동관, 3~5층은 생활관 즉, 숙소로 사용된다고 했다. 시설 도면에는 지하 1층에도 대강당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보였다. 나는 가장 꼭대기 층에 배정받았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창문이 모두 조그마했고, 벽 위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공기 순환용으로만 사용되는 느낌이었다. 곧 죽어가는 수감자들이 밤에 별 정도만 볼 수 있게 설계된 일부 감옥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여기에 온 모두는 죽으러 왔다. 곧 죽음을 앞둔 수감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호기심으로 뭉쳐진 인간이기에 나는 좀 더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2층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마침 요리가 한창이었다. 식당 구석에서 조용히 요리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는 한 중년여성이 있었다. 다시 한번 호기심이 발동되어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다 흠칫 놀랐다. 내가 아는 여성이었다. 분명, 그녀였다. 

 중년여성은 다가오는 내 모습을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은 눈으로 멍하니 밥이 지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때린 사람은 기억 못 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하는 법이다. 

 작년 겨울, 추위에 얼어가는 손을 호호 불어대며 고등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던 내게 “공부 안 하면 저 형처럼 된다!”라고 말하던 한 학생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무슨 이유로 여기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그녀도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속으로는 적잖이 불이나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 달려들어 머리채를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분이 넘쳤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 어떻게 서든 저 중년 여성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각 숙소는 방 2개에 거실 1개로 꽤 큰 편이었다. 각 방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옷장이 가지런히 있었다. 에어컨은 있었지만, TV 따위는 없었다. 한 달 동안 굳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생긴 배려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것은 각 방에 비치된 전신 거울의 크기였다. 전신 거울 크기의 3배는 되어 보였다. 한쪽 벽면을 다 채울 정도로 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 노인이 들어왔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은 중절모를 썼고, 흰색 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청색 면바지에는 갈색 흙덩이가 중간중간 보기 싫게 묻어져 있었다. 노인은 인사 한마디만 할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은 채 내가 자리를 잡은 방 맞은편으로 몸을 옮겼다. 아마 이 노인이 내 마지막 가는 길동무이자 룸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 가지 꺼림칙한 것은 노인의 표정이었다. 잘못 본 거일 수 있겠으나 노인은 분명 웃고 있었다. 그것도 환하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마 미치광이 노인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의 나래를 잘라버리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 오는 피로감에 몸이 노곤 노곤하여 잠을 청하려 하는 순간 방송이 들려왔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이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안락사 프로젝터에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인사 말씀을 드리며, 저녁을 먹기 전 몇 가지 규칙 및 시설 이용 정보를 드리고자 하오니, 모든 지원자분들은 지하 1층 대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대강당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이 열을 지어 앉아있었다. 맨 앞줄부터 자리 경쟁이 치열했는데,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집중해서 듣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졌다. 죽기 위해 이리도 열심히 사는구나 싶어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중간에 자리 잡았다. 내 룸메이트이자 노인은 내 앞줄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여전히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역시, 미친게 분명해.”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미치광이 노인을 제외한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소설 ‘아몬드’에서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과 같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안락한 죽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답답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머무시는 시설 총 책임자이자 자살 방지 NGO 단체 대표 햇님입니다.”

 방송에서 들리던 젊은 여성의 밝은 목소리가 칙칙한 강당을 환하게 가득 메웠다. 

 “지금부터, 이곳의 생활에 대한 간단한 규칙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헤쳐나갈 테스트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처음으로 강당에 앉은 사람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먼저 2인 1조로 지내게 될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 일부 방은 남, 녀가 같이 사용하게 될 수 있으니 샤워나 화장실 이용 시 상의해서 불미스러운 일이 없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당연한 얘기지만, 범죄를 저지르거나 민폐를 계속 끼치는 분은 바로 퇴소 및 법적인 조치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는 출입 금지 구역을 말씀드립니다. 강당에 들어오시기 전에 왼쪽으로 작은 문이 하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창고이자 작은 연구실로 관련자 외에는 절대로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문밖을 기웃거리거나 침입을 시도하는 분은 바로 퇴소 조치 및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사오니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취해 강당 옆 철문 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감히 예상해보면,  알약은 그 안에서 제조되고 보관될 것이다.” 

 강사는 장밋빛 입술을 나풀거리며 숙소 시설이라든지 식사 시간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조곤조곤 설명해나갔다.

 “자! 그럼 정말 중요한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테스트입니다.”

 강당에 적막이 찾아왔다.

 “총 4개의 테스트가 진행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4개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분만 알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테스트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실 분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1층 데스크에 가셔서 의사만 밝히시면, 퇴소 조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테스트를 통해 보든 참가자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목표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집으로 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시겠지요. 과연 결과는 어떨지 저도 궁금합니다. 자 그럼 총 1달 간 4개의 테스트! 그 끝에 여러분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빨간 알약이 기다립니다. ”

 강사의 어조가 빨라졌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달 동안 4개의 테스트만 통과하면 이 지긋지긋한 인생도 안녕이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신가요?”

 모두가 무표정의 늪에 잠겨서 꼼짝하지 않았다. 강사는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없으시군요. 자 그럼 다들 지루하실 텐데, 바로 첫 번째 테스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당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진행에 놀란 까닭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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