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Oct 21. 2021

안전벨트

 천장에서 물이 똑똑 낙하하더니 이마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집안 내벽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몸 아래쪽에서 불편함이 느껴져 시선을 옮겼다. 발에는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른쪽 구두가 날카로운 물건에 베인 것처럼 5cm 정도 움푹 베어져 있었다. 정신이 들면서 오른쪽 발등이 아려왔다. 축축하게 젖은 양말을 벗자 무언가에 베인 건지 발등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 이게 도대체 뭐지? 신발 자국인가?”

 옆방에서 이제 막 일어난 어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문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거실을 뒤덮었을 검은 구두 자국을 상상하니 아찔했다. 어머니의 씩씩거리는 숨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안 장수!”

 벌컥 열린 문 사이로 어머니의 실루엣이 비쳤다. 그러더니 이내 코를 막으며 뒷걸음치셨다.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술 냄새에, 썩은 내에 너 어제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

 “그게. 사실.... 회식을”

 어머니의 오른쪽 눈썹이 성난 고양이 털처럼 쭈뼛해졌다. 

 “회식? 아이고, 누가 보면 어디 대기업 들어가서 프로젝트 하나 기가 막히게 끝내고 술 마시다 들어온 줄 알겠네. 구멍가게 같은 회사 다니면서 유별은...”

 어머니는 방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젖은 옷을 빠르게 수거해 나가셨다. 그러다가 구두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건 왜 그래? 어디 찢겼어? 이거 새 구두 아니야?”

 “응. 기억은 안 나는데 찢겼나 봐. 발등도...”

 나는 잔소리를 끝낼 유일한 희망을 기대해보며 조심스럽게 오른쪽 발등을 내밀었다. 발등에는 옅은 핏물이 칠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피를 흘리는 발등과 찢어진 구두를 번갈아 보시더니 다시 포문을 열었다.

 “아이고, 새 구두를 사서 얼마나 신었다고 저리 만들어. 아까워 죽겠네. 아들 하나 있는 게 도대체 도움이 안 돼요. 제 어미는 나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가 빠지게 일하고 들어오는데…. 쯧쯧.” 

 포문이 닫힘과 동시에 방문도 닫혔다. 깊은 침묵이 찾아왔고 그 긴 침묵속에서 자꾸 울컥했다. 발등의 피비린내가 온 방 안에 진동하고 있는데도, 어찌 저리 무심할까? 생각했다.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같이 양복을 입고 PC방, 술집으로 출근했다. 발등의 상처 위로 딱지가 지고 새살이 돋아날 때쯤, 괴이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내용인즉슨 정부에서 실시하는 제1회 안락사 지원자 모집 선발에 통과되었으니 다음 달부터 약 1달간 있을 테스트를 위해 합숙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제 지원서를 넣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았다. 지원서를 열어보니 여기저기 오타투성이에 맞춤법도 맞지 않았다. 마치 술에 취해서 휘갈겨 놓은 형편없는 문장들이었다. 오히려 삶을 끊고자 하는 절박함을 읽었으려나? 싶었다. 

 가슴이 종일 콩닥거렸다. 알 수 없는 설렘이 가슴을 덥혔다. 죽고 싶었는데,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죽음의 문턱에 스스로 다가설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잃으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테스트를 보겠노라는 문자를 남긴 후 중고 사이트에서 구매한 너덜거리는 소파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엄마? 별일 없지? 다름이 아니라….”

 “뭔데? 빨리 얘기해! 지금 손님들 많아서 바빠.”

 “음... 다음달에 한 달간 출장을 가게 생겨서….”

 “그러든지 말든지! 바빠죽겠는데 전화질이여. 알았고! 출장을 가서 확 그냥 안 돌아와도 좋고!”

 어머니는 날이 선 목소리로 쏘아붙이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나는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잘된 일이다. 어머니는 늘 날이 서 있었다. 특히 가세가 기울면서 날이 선 칼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조금만 삐끗해도 베어져 버릴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내가 없으면 어머니도 조금은 짐을 덜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다 쓰러져 가는 집에 빌붙어 밥만 축내는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만사형통일 것 같았다. 이번 일생일대의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달간 쓸 물건들을 챙기다가 오른손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선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놓여 있던, 유일하게 액자에 담긴 가족사진이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가족의 흔적이 묻어있는 사진이다. 깨진 유리 조각은 저 멀리까지 튀어 나가버렸다. 유리조각과 부러진 액자 틀을 쓰레기통에 쓸어버렸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간신히 모든 짐을 부랴부랴 챙겨 나왔다. 시간조차 0으로 만들어 버리는 죽음을 얻기 위해 제시간에 정부가 지정한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나는 새 삶을 살기위해? 아니 끝내기 위해 시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목적지 까지는 5시간 정도 남았다. 그렇게 나는 정부가 죽고 싶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그곳! 전라남도 영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까만 레이번 선글라스를 쓴 버스 기사가 입가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버스는 이미 만차 상태였다.

 “아니,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겨? 영암에 무슨 쏠로 축제라도 한대요? 남녀노소 전부 혼자들 타셨네. 허허.”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버스 기사는 조금 무안했는지, 다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승객 여러분 모두 안전벨트 꼭 메주셔야 합니다. 혹시나 고속도로에서 사고 나면 바로 황천길입니다. 큰일납이다잉~ 자 그럼 행복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며 출발합니다!” 

 그렇게 아무도 안전벨트를 메지 않은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 04화 불량품의 말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